▲ SIHH 전시장 내부 전경. 출처=SIHH

[이코노믹리뷰=김수진 기자] 해마다 1월과 3월이면 전 세계 시계 업계 관계자들이 스위스로 모인다. 1월 제네바에서 열리는 스위스고급시계박람회(SIHH)와 3월 바젤에서 개최되는 세계 최대 시계 박람회 ‘바젤월드’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2020년부터는 가방을 딱 한 번만 싸면 된다. SIHH와 바젤월드가 연달아 열리기 때문이다. 18일(현지시각) 각 박람회 주최 측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SIHH는 2020년 4월 26일부터 29일까지 제네바에서, 바젤월드는 4월 30일부터 5월 5일까지 바젤에서 개최된다.

SIHH는 리치몬트 그룹을 필두로 한 명품 시계 박람회로 까르띠에, 몽블랑, 파네라이 등 30여 브랜드가 참가하는 ‘지구상에서 가장 럭셔리한 박람회’다. 바젤월드는 완성 시계는 물론 시계와 주얼리 제조에 필요한 모든 산업이 출두하는 세계 최대 시계 박람회다. 시계 브랜드 수백 개의 신제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바젤월드를 대표하는 브랜드로는 롤렉스, 파텍필립, 태그호이어 등이 있다.

 

▲ 바젤월드의 제1전시장 입구 전경. 출처=바젤월드

최근 시계 업계에선 ‘박람회 위기론’이 대두됐다. 실제로 바젤월드는 최근 2년 동안 참가 브랜드 850여 개를 잃었다. 올해는 전년 대비 절반에 불과한 650개 브랜드만 바젤월드에 참석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바젤월드 위기의 원인으로 높은 전시 비용과 낮은 투자 효율, 주최 측의 경영 실패를 지적했다. 지난 7월엔 바젤월드의 큰 손인 스와치 그룹이 ‘2019년 바젤월드 불참’을 선언하며 위기에 불을 지폈다. 스와치 그룹은 오메가, 브레게, 블랑팡 같은 럭셔리 시계 브랜드부터 캘빈클라인 워치, 스와치 등 중저가 패션 시계 브랜드까지 20여 개 브랜드가 포함된 세계 최대 시계 제조 업체다.

지난 10월엔 리차드 밀과 오데마 피게가 2020년부터 SIHH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혀 충격을 줬다. 리차드 밀과 오데마 피게는 “제3의 소매업체와 유통 딜러를 만나는 박람회는 최종 구매 고객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지향하는 우리에게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불참 이유를 밝혔다. 프랑소와 앙리 베나미아스(François-Henry Bennahmias) 오데마 피게 CEO는 르 탕(Le Temps)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최종 구매자에게 100% 집중하고 싶다”며 “박람회는 소매상과 언론을 주요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우리의 기대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 방문객들로 가득 찬 바젤월드 전시장 입구. 출처=바젤월드

바젤월드는 운영 측 CEO 사임과 총괄 디렉터 교체 등 경영진을 쇄신하고 주변 호텔과 협약을 맺어 박람회 방문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등 재정비에 나섰지만 스와치 그룹 이후 모리스 라크로와, 레이몬드 웨일 등 참가 브랜드의 이탈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닉 하이예크(Nick Hayek) 스와치 그룹 회장은 “급격하게 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더는 박람회가 큰 의미가 없다”며 “바젤월드가 열리는 건물의 건축 비용을 대신 갚아주기 위해 박람회에 참가하는 게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결국 바젤월드와 SIHH는 손을 잡고 ‘시계 박람회 위기론’ 대응에 힘을 모으기로 결정했다. SIHH를 주최한 제네바 고급시계협회(FHH)의 파비엔 루포(Fabienne Lupo) 회장은 이에 대해 “우리 두 행사는 서로 다르지만 늘 상호보완적이었다. SIHH와 바젤월드의 이번 협약은 스위스를 시계 제조의 가장 중요한 목적지로 확충할 것이라는 점에서 환영할 만 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바젤월드 총괄 디렉터 미셸 로리 멜리코프(Michel Loris-Melikoff)는 “시계 업계에서 가장 두드러진 두 박람회의 파트너십은 시계 박람회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획기적인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SIHH 전시장 내부. 출처=SIHH

해마다 두 번 시계 박람회를 찾았던 업계 관계자들은 SIHH와 바젤월드의 파트너십으로 여행 경비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내놓고 있다. 뉴욕 시계 전문 웹진 호딩키 에디터 존 뷔(Jon Bues)는 “SIHH와 바젤월드가 연달아 열리게 되면 둘 중 하나에만 집중하기로 결정했던 유통 업체와 언론 등이 두 박람회에 모두 참석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SIHH와 바젤월드의 협약은 2020년부터 2024년까지 5년 동안 지속될 예정이다. 지난 10월 리차드 밀과 오데마 피게의 SIHH 이탈 기사를 쓰며 “해마다 1월과 3월이면 전 세계 시계 업계 종사자들이 스위스로 향하던 게 추억 속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며 마무리했는데 정말 현실이 됐다. 내년이 마지막이다. 2019년 SIHH는 1월 14일부터 17일까지, 2019년 바젤월드는 3월 21일부터 26일까지 개최된다.

▶ 지구에서 가장 매력적인 시계 집결지 [타임피스 아시아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