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회사가 부도가 나고, 2016년 말, 기업회생 종결 판결을 받았다. 그 다음 해에는 새로운 직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40이 넘은 나이였다. 고용인에서 피고용인으로 바뀐 나의 신분에 나는 감격했다. 나를 고용할 만한 회사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더욱 절실했다. 무엇보다 감사했고 행복했다. 20대 때 누리지 못했던 신입사원과 같은 마음으로 직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매달 월급날을 기다리는 직장인의 희망을, 상사의 말에 한마디 대꾸로 하지 못한 채 피가 바짝 말라가는 비애를, 그리고 몸이 아파 택시를 타고 싶지만, 버스를 타야만 하는 신세를, 즐겼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신용보증기금에서 회사로 한 통의 편지가 왔다. 

전액 7,187만원을 월급에서 차압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금액 중, 원금은 단 75만원. 거의 100배에 해당하는 그 금액을 나의 월급에서 차압하겠다는 내용이었다. 10여명의 직원으로 한국을 벗어나 세계로 뻗어나가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막 출범한 스타트업 기업에서 받는 월급에 바로 차압을 하다니. 

기업회생 종결을 한 회사가 아닌 관계사에 내가 보증을 선 것이 화근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당시 그 관계사에서 차입한 금액을 기업회생을 한 회사에 대여해주었다. 그러나 기업회생 과정에서 그 대여금은 관계사라는 명목으로 구상권을 포기해야만했다. 그것이 바로 내 직장생활에 발목을 잡은 것이다. 물론 기업회생 과정에서 그 관계사에 금액을 지불을 했고, 원금은 단 75만원이 남은 상태였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나로 인해서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의 신용도가 하락하게 되는 것이 두려웠다. 아무리 10여명의 작은 조직이지만, 그들의 가족들을 다 합하면 30-40명은 되고, 나로 인해서 투자자들로부터 사업성을 인정받고, 투자금을 받아서 운영해야 하는 회사의 신용도를 떨어트리는 행위는 용납 받을 수 없다. 

보증을 섰다는 이유로, 그 작은 원금이 불어나 거대한 이자를 받기위해 이 조직에 차압을 한 신용보증기금도 미웠지만, 무엇보다 이런 사건 하나를 해결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75만원을 7,187만원이 되도록 뭐하고 있었느냐는 자괴감이, 그리고, 이런 나를 감싸고 있는 사회 시스템이, 너무나도 미웠다. 

그냥 있을 수는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빨리 내 선에서 해결해야 했다. 갚을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내가 한 첫 번째 행동은 바로 은행대출을 알아보는 것이었다. 

“네. 고객님. 저희가 고객님의 신용도를 알아보았더니 현재 신용보증기금에서 고객님에게 압류를 한 사건이 검색되어서 현재 9등급이십니다. 죄송하지만 대출은 어렵습니다.”

뚜- 하고 끊어져버린 공허한 전화기 소리를 듣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이전부터 거래했던 은행 몇 군데를 알아본다. “안녕하세요?”라고 상냥하게 물어보지만, 그들의 대답은 마찬가지로 “노”. 

이제 ‘**저축은행’ 권으로 전화 상담을 해본다. 그들은 선심쓰듯 최대한 내가 받을 수 있는 금액은 300만원이라고 못박는다. 

이제 나는 다시 신용보증기금의 담당자에게 전화를 하고 약속을 잡아 눈물의 통사정을 한다. 

“정 이사님. 죄송하지만,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최선은 이정도입니다. 이번 달 말까지 해결이 안되면 저희도 법적인 조치가 들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상담을 위해 만났던 신용보증기금의 담당자의 손에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였다. 돌아오는 길에 왁칵- 눈물을 쏟았지만, 먼지가 눈에 들어간 것이라 흘린 눈물이라 위안해본다. 

다음 순서는 인터넷 검색 창에 “사채”라는 단어를 입력하는 것.     

당일입금, 당일대출, 저신용자 우대, 핸드폰 있는 사람들 무방문 대출, 대출 묻고 따지지 않습니다, 승인률 몇십%에 전국 최고규모, 라는 현란한 문구들이 눈을 자극한다. 

아- 몇 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끝나지 않은 채무가 휘감고 있는 나의 인생을 저주했다. 그리고 이 지긋지긋한 터널을 벗어날 수 없는 이 상황에 구토를 느꼈다. 하늘은 검고, 바람은 황사로매캐했다. 손으로 눈을 가려보지만, 가려지지 않고, 숨을 쉬어보지만, 원인을 모를 미세먼지가 나의 폐를 더 쥐고 흔든다. 눈물을 흘렸지만, 오히려 가슴이 막히는 악순환. 해결을 해보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 이제 나는 마지막으로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리기 시작한다. 

“잘 지내니..?” 라고 시작하는 나의 멘트는 결국 ‘돈을 융통해 줄 수 있겠니’라는 굴다리를 지난다. 한 결 같이 그들은 ‘미안해서 어쩌지?’라고 마무리했다. 그들을 이해한다. 나 또한 급전이 필요하다는 말에 돈 없음, 으로 마무리했으니까. 

7월의 어느 무더운 날 저녁, 한 청년은 거리를 방황한다. 최근에 가정교사 자리를 잃고 학비가 없어 대학도 그만 둔 청년. 수입이라고는 아버지가 남긴 연금과 가끔씩 소일거리로 들어오는 번역일로 노모를 모시고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 여동생은 가정교사를 하고 있지만, 집 주인이 그녀를 좋아해서 그만 두었다. 그 청년은 대학을 졸업하여 출세의 길로 들어서서 이 지겨운 가난을 면하고 싶다. 이 청년이 할 수 있는 선택이란 무엇일까.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보면, 지긋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그가 선택한 일은 어이없게도 전당포 노파를 살해하고 돈을 훔치는 것이었다. 자기에게 주어진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노인을 살해한다는 설정이 과연 설득력이 있는가? 이 상황이 현실적인 이야기일까? 지극히 비상식적인 일들을 왜 작가인 도스토예프스키는 만들었을까. 

이 책이 씌여진 1860년대 러시아는 사상적 혼란기에 놓여있었다. 청년들은 사상적 갈등과 도덕적 기준이 없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잃고 어두운 현실에서 방황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그에 착안하여 청년 라스콜리니코프의 인간형을 창조하게 되었으며, 삶의 극단으로 내몰린 한 청년이 저지른 ‘살인사건’을 통해 과연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에 관한 여부를 독자에게 묻는다. 
 
주인공은 살아 있을 가치가 없다고 여긴 전당포 노파를 살해할 때 자신에게 이야기한다. 

‘이성이 시키는 게 아냐. 이건 악마의 짓이다!’ 

많은 사람들은 주인공의 처지에 공감을 하면서도 그가 한 행동에 대해서는 응당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생각한다. 그리고 이 작가 또한 주인공을 통해 결국 시베리아 유형을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그러나 최근 이 소설을 최근에 다시 읽었을 때, 나는 더 이상 주인공과 동일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전당포를 운영하는 노파, 즉, 라스콜리니코프를 통해서 도끼에 죽임을 당하는 그 전당포의 노인의 입장이 된 것 같았다. 주인공이 준비한 도끼에 바로 정수리를 맞고는 즉사(卽死)하는 그 작은 노인. 

“도끼는 바로 정수리 한복판에 맞았다. 그것은 노파의 키가 작기 때문이기도 했다. 노파는 순간 악 하고 외쳤으나 몹시 가느다란 소리였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두 손을 머리 위로 가져갔지만 비실비실 마루 위에 주저앉았다. 한 손에는 아직 저당물을 쥔 채로였다. 그(주인공)는 있는 힘을 다해서 다시 도끼 등으로 정수리를 두어 번 내리쳤다. 피는 컵을 엎어놓은 듯이 솟구쳐 나왔다. 그리고 몸은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노파는 죽어있었다. 눈은 금방 튀어나 나올 듯이 부릅떠져 있고, 이마와 얼굴 전체는 경련으로 말미암아 무섭게 일그러져 있었다.” 

미래를 꿈꾸며 스타트 업에서 일하는 한 소시민은 신용보증기금이라는 주인공이 휘두른 도끼에 맞아 마치 노파처럼 악- 하는 소리를 제대로 내지도 못하고 그저 가느다란 소리만 내고 비실비실 마루 위에 주저앉는다. 그 소시민의 손에는 ‘원금 72만원, 이자 7200만원 가압류’ 라는 통지서가 쥐어있다. 그러자 신용보증기금이라는 거대한 주인공은 있는 힘을 다해서 다시 도끼 등으로 정수리를 두어 번 내리 친다. 그 소시민의 피는 컵을 엎어놓은 듯이 솟구쳐 나올 것이다. 그의 피는 공황장애, 우울증, 그리고 자살충동이라는 헤모글로빈이 포함되어있는 듯, 젤리마냥 끈적거린다. 그의 몸은 뒤로 벌렁 나자빠진다. 

나에게 미래가 있는가. 도끼로 파괴된 두개골 사이로 흐르는 피에 젖은 이 대지위에 과연 꽃은 피어날 수 있을 것인가. 그 피를 먹고 자란 수선화는 붉다 못해 검은 색으로 피어날 것이고, 그마저 거대한 조직의 도끼로 뿌리까지 뽑히지 않을까. 2013년부터 시작된 나의 보증문제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정재엽 (주)아이메디신 이사. 금수저로 살아온 그에게 갑자기 닥쳐온 가족 기업의 부도는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남다른 감수성으로 일과 생활의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자 한다. 칼럼 <낭만적 기업회생 이야기>은 경영일선에서 만난 일과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문학과 함께 공존하고자 하는 그의 행보이다. 저서로 <파산수업> <구본형의 마지막 수업>이 있음. j.chu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