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오랜만에 모임에서 만난 한 스타트업 대표가 “최소한 정부가 가지 말아야 할 곳이 어딘지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하소연했다. 사연을 들어보니 이렇다. 그는 오랫동안 투자전문회사에 근무하다 스타트업을 창업했고, 최근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발견해 매진하고 있다.

문제는 너무 새로운 영역이라 전례도 없고 어디까지 사업을 해야 합법인지, 어디서부터 불법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는 것. 답답한 마음에 당국에 문의를 해도 ‘묵묵부답’이라고 한다. 그는 “요즘 규제가 너무 강해 신사업 활력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규제 혁파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면서 “최소한 무엇이 불법이며 합법인지는 정부가 정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최근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인기협 엔스페이스에서 2019 굿인터넷클럽 5차 행사를 통해 끌어낸 문제의식과 동일하다. 당시 행사는 국내 모빌리티 사업에 대한 논의였으며, 패널 참가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새로운 로드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규제 혁파 자체는 물론, 모호한 정부의 가이드 라인을 성토하는 분위기도 연출되며 눈길을 끌었다. 정수영 매스아시아 대표는 공유 자전거를 예로 들며 “법적 가이드 라인이 모호하다”면서 “관련 부처만 5개로 소관부서마다 기준이 달라 부처별 이견으로 합의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카카오 모빌리티와 택시 4단체의 플랫폼 택시 로드맵 과정에서도 비슷한 불만이 감지된다. 카카오 모빌리티와 택시 4단체는 지난 5월 성명서를 통해 “사회적 대타협 기구 합의 이후, 현재까지 정부와 여당 그 어느 누구도 이를 이행하기 위한 후속조치를 전혀 이행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면서 “정부는 플랫폼 택시 출시와 관련하여 어떠한 회의도 공식적으로 소집한 바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현재의 갈등과 불신을 화해와 상생으로 전환하고, 택시업계와 모빌리티업계가 서로 윈윈 할 수 있도록 정부와 여당에 규제 혁신형 플랫폼 택시의 출시를 위한 여건 조성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쉽게 말해, 신사업을 할테니 규제 혁파와 더불어 최소한의 가이드 라인이라도 달라는 뜻이다. 무엇이 합법이고 불법인지는 알아야 사업을 하지 않겠느냐는 성토다.

생각해보면 정부는 늘 이런 식이었다. 암호화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검증되지 않은 거래소들이 우후죽순 들어서는 한편 이와 관련된 폰지 사기 등이 기승을 부려도 정부는 이를 두고 합법이나 불법의 판단을 내리지 않은 일종의 ‘무법’으로 일관했다. 법, 즉 가이드 라인이 없으니 시장은 대혼란에 빠진다. 한 쪽에서는 사각지대를 노려 시장의 그림자를 키우고 있으며, 한 쪽에서는 기회가 있으니 사업을 해 보려고 해도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심해지면 범법자들이 대거 양산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신사업에 대한 가이드 라인을 마련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시장의 요구만 받아들여 무조건 규제를 풀어줄 수 없고, 그렇다고 심하게 억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과정에서 고민에 빠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필요 이상 손 놓고 침묵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최소한 노력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신사업과 관련된 가이드 라인 구성 권한을 많은 부처에 쪼개지 말고 최대한 일원화시키거나, 문제가 생기면 허가를 내어 준 공무원에게 가혹한 수준의 책임을 묻기 보다 상황에 맞는 가치판단을 시도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미 비슷한 정책이 준비되고 있지만 속도가 느리다. 지금 우리 상황이 그렇게 태평한가.

몇 년 전 정부 과제를 받은 기업의 대표가 한 말이 생각난다. 그는 정부 과제를 받아 투자를 받은 후 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더 확장하는 새로운 로드맵을 제시했다고 한다. 국내외 어디서도 시도되지 않은 방식이었다. 원래 그런 취지의 정부 과제였으니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돌아온 공무원의 말이 “이 사업을 하려면 무조건 해외 사례를 모아오시오” 였다니,그야말로 걸작이다. 전혀 새로운 시도인데 어떻게 해외사례를 찾을까. 결국 해당 대표는 사업을 접었다고 한다.

어렵고 새로운 일이라고 몸만 사리고 있으면 곤란하다. 최소한의 가이드 라인을 주기 위한 노력을 정부가 해야 한다. 정부는 시장에 가지 말아야 할 곳, 가야할 곳이라도 분명히 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