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2017년 1월 미국 연방거래소(FTC)가 퀄컴을 전격 제소하는 일이 벌어졌다. 연구개발을 통해 기술을 확보, 이를 라이센스 비즈니스 모델로 활용하는 퀄컴이 '과도한 시장 지배력 남용'에 나서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문제가 됐던 부분은 퀄컴이 파트너들에게 독점 공급을 강제한 대목이며, 이러한 비즈니스는 공정한 시장 경쟁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미 FTC의 주장이었다.

지난 5월 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미 FTC의 승리다. 캘리포니아주 산호세 연방지방법원은 미 FTC의 주장을 받아들여 퀄컴의 특허 라이센스 비즈니스에 철퇴를 내렸다. 퀄컴이 특정 업체와의 독점 공급 계약도 맺지 못하도록 했으며 향후 7년간 모니터링 결과를 법원에 제출하도록 하는 한편 법원의 명령을 이행할 수 있는 별도의 자료도 요구했다.

재미있는 것은 미 법무부의 행보다. 미 법무부는 연방지방법원의 판결이 나온 직후 '퀄컴을 무조건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는 전제로 미국의 5G 경쟁력을 위해 신중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비합리적으로 높은 로열티가 반독점을 의미하지 않으며 오히려 로열티 시스템은 리스크를 감수하고 혁신에 투자함으로써 기업과 산업 성장을 견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지난 8월 미 법무부의 의견을 경청한 제9 연방순회항소법원은 항소심이 끝날 때까지 특허 라이센스 관행 시정 명령 집행을 유예해달라는 퀄컴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정부 기관인 미 법무부가 퀄컴 도우미로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특허 라이센스에 대한 일부 부정적인 주장도 있지만 기술혁신으로 ICT 경제를 이끄는 퀄컴의 역할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미중 무역전쟁, 기술전쟁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말 그대로 국가 경제적 차원의 대승적인 결단을 내렸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어떤가. 지난한 적폐청산의 원흉으로 기업을 몰아세우고 핍박할 뿐 이 과정에서 대승적 결단은 커녕 감정적 이데올로기로만 기업의 경영환경을 재단하는 일만 속출한다. 경제를 살린다는 취지로 기업들을 무한경쟁의 레이스에 밀어넣고는, 두 발을 묶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만 되풀이하고 있다. 뛰라는 건가, 넘어지라는 건가.

최근 애플은 신형 맥프로 제조 라인을 미국 텍사스에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그 과정이 흥미롭다. 미중 무역전쟁이 시작되며 미국 정부가 중국산 수입품에 고율관세를 준비하자 중국에 제조거점을 가진 팀 쿡 애플 CEO는 “부당하다”는 목소리를 냈고, 이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팀 쿡 CEO와의 의견을 받아들여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일부 면세를 결정, 여기에 애플의 부품을 포함시켰다. 직후 애플은 타 지역으로 옮기려던 신형 맥프로 제조 라인을 미국에 유지하는 성의를 보였다는 평가다. 텍사스의 일자리 창출도 가능해지는, 일종의 윈윈이다.

경제 활력을 살리기 위해 미 법무부가 직접 뛰고, ‘독불장군’ 트럼프 대통령이 기업인의 애로사항을 접수해 전격적인 판단을 내리는 사례들을 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특히 애플 사례를 보면 더 그렇다. 한국의 어떤 경영인이 정부의 방침에 “부당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이를 관철시킬까. 한국이었다면 정치인과 기업인의 부적절한 관계로 묘사되며 한바탕 홍역을 치르지 않았을까.

퀄컴이 부럽고, 애플이 부럽다. 미국이, 아니 미국의 경영환경이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