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픽사베이

[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23일 정부는 이례적으로 여러 보건·의료 기관의 의견을 일치시켜 액상형 전자담배의 ‘사용 중지 강력 권고’ 조치를 내렸다. 궐련형 전자담배 첫 출시 때에도 논란은 있었지만 이 정도로 정부가 강한 의견을 내놓지는 않았다. 정부 부처가 쓴 표현들은 불안감으로 확산됐고, 액상형 전자담배 흡연자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불안감은 사실 필요 이상으로 부풀려진 면들이 있다. 현 상황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 몇 가지 사실들을 정리해봤다. 

1. 액상을 사용한다고 다 액상형 전자담배가 아니다

흡연 시에 액상을 활용하는 전자담배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첫 번째는 ‘연초 고형물’ 혹은 ‘하이브리드(Hybrid)’로 불리는 전자담배들이다. 이 제품들은 기본적으로 궐련형 전자담배 전용 담배와 가향(加香) 액상이 들어있는 카트리지를 함께 사용하는데, 이 카트리지에 들어있는 액상에는 니코틴 성분이 들어가 있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즉, 액상 자체는 담배가 아니다. 주요 제품으로는 KT&G의 릴 하이브리드, JTI의 플룸테크 등이 있다. 

▲ 국내 유통 중인 대표적인 CSV형 담배 KT&G의 릴베이퍼(왼쪽)와 쥴랩스의 쥴. 출처= 각 사

두 번째는 국내 담배업계에 액상형 열풍을 일으킨 쥴 랩스의 쥴(JULL) 그리고 KT&G의 릴 베이퍼(lil Vapor)와 같은 CSV(폐쇄형 액상 전자담배·Closed System Vaporizer: 소비자가 니코틴 등 용액량을 조절할 수 없는)가 있다. 이 담배들은 액상에 담배의 주성분인 니코틴이 들어있어 별도의 기기를 통한 작용으로 액상 속에 포함된 니코틴 흡입이 가능한 제품으로 곧, 액상 자체가 담배인 제품이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전자담배는 바로 CSV를 말한다. 
  
2. 정부의 조치는 담배 제조사들에 대한 규제가 아니다 

정부의 강한 발언은 국내 담배 제조 기업들에 대한 규제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추지하려는 내용을 보면 그렇지 않다.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정부 기관들이 액상형 전자담배에 대한 ‘사용중지 강력 권고’를 표방하며 추진하고 있는 내용은 액상형 담배에 대한 유해성 검증과 담배의 범위 확장이다. 지난 10월 2일 액상형 전자담배 흡연자의 폐손상 의심사례 1건이 국내에서 최초로 보고됐다. 이에 우리나라 보건·의료 기구들도 조사단을 꾸려 국내 시판 중인 액상형 전자담배의 정확한 유해성 검증을 시작했다. 아울러 정부는 모든 담배의 주된 원료인 담배의 ‘잎’이 아닌 ‘줄기’나 ‘뿌리’에서 추출한 니코틴 성분을 활용한 제품을 담배로 정의하지 않는 현행 기준을 바꿔 담배로 정의되는 범위를 지금보다 넓히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일련의 내용들에는 어디까지나 지금껏 확실하게 어떤 질병과의 연계가 증명되지 않는 액상형 담배에 대한 검증과 담배 고유의 유해성을 다시 강조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액체든 고체든 그 형태를 막론하고 모든 담배는 기본적으로 유해성이 있다. 액상형 전자담배의 유해성이 발견된다고 해도 일반 궐련 담배나 궐련형 전자담배보다 훨씬 더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큰 의미는 없다. 정부가 각 담배 업체들의 액상형 전자담배 생산이나 유통 자체에 대해 규제를 하지 않고 흡연자들의 사용 자제를 ‘권고’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 출처= 보건복지부

3. 현재의 분위기로 담배 업체들은 큰 손해를 본다.

일부분 맞는 말이다. 그러나 액상형 전자담배가 주력 상품인 업체가 아니면 그 외 업체들은 실질적으로 큰 손해를 보거나 기업 경영에 위기를 마주할 정도는 아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7월 31일 발표한 ‘2019년 상반기 국내 담배시장 동향’에 따르면 상반기를 기준으로 액상형 전자담배는 전체 담배시장의 약 0.7%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판매량으로 비교하면 올 상반기 전체의 담배 판매량 16억7000만갑 중 일반 궐련 담배는 14억7000만갑(약 88%), 궐련형 전자담배는 1억9000만갑(약 11.3%)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액상형 전자담배의 팟(Pod·1개가 곧 일반 담배 한 갑)은 약 600만개(약 0.7%)가 판매됐다.

국내 전체 담배 시장에서 액상형 전자담배가 차지하는 비중은 1%가 채 되지 않으며, 주요 업체들의 주력 제품군도 아니다. 한국필립모리스는 23일 열린 아이코스 신제품 출시 기자간담회에서 “액상형 전자담배 제품의 국내 출시 계획이 없다”고 공식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쥴 랩스처럼 자사 주력 제품이 액상형 전자담배인 업체들은 확실히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유통업체들이 액상형 담배 제품 판매를 중단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 편의점 업계 2위인 GS25는 “정부의 권고에 따라 24일부터 쥴의 트로피칼·딜라이트·크리스프 3종 그리고 KT&G 릴 베이퍼의 시트툰드라 1종 등 액상 전자담배의 판매를 전면 중단한다”라고 밝혔다. 

4. 미국의 쥴과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쥴은 다른 제품이다.

쥴 랩스는 현재의 분위기로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업체다. 주력 제품이 액상형 전자담배이기도 하고, 일반 궐련이나 궐련형 전자담배 제품군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현재까지는 액상형 전자담배의 유해성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쥴 랩스 입장에서는 정부가 이후 발표한 연구 결과에 한국 사업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 전자담배 니코팀 함량에 따른 단계 구분. 빨강색 네모는 국내 판매 쥴 수준, 파랑색 네모는 미국 쥴 수준. 출처= Ecigclopedia

쥴의 흡연을 계속하든, 중단하든 선택은 담배 자체가 보유한 유해성을 이미 인지하고 있는 흡연자 본인의 몫이다. 다만 여기에서 참고해야 할 사실이 한 가지 있다. 쥴 랩스에 따르면 국내에서 판매되는 쥴의 액상에는 미국에서 폐질환의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는 테트라하이드로카나비놀(THC), 비타민 E 화합물 등 성분이 들어있지 않다. 특히 THC는 대마초에서 추출되는 성분인데, 우리나라는 현행법상 대마초(혹은 성분)의 유통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이 성분이 들어간 제품은 국내에서 판매가 되어서도 안 된다. 

정부는 현재 담배의 범주에 들어가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국내에 유통되는 모든 형태의 액상형 담배의 조사를 추진하고 있다. 국내 주요 업체들은 모두 자사 제품에 해당 성분이 들어가 있지 않다고 공표해 놓은 상태다.  

또 미국의 쥴과 우리나라의 쥴은 니코틴 함량부터도 다르다. 액상에 포함된 니코틴 함량이 약 3%(액상 1ml 당 35mg)에서 5%(액상 1ml 당 59mg)에 이르는 미국의 쥴과 달리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쥴 액상의 니코틴 함량은 1.8%(액상 1ml 당 18mg) 정도다.  

5. 궐련이든 전자담배든 모든 담배는 몸에 해롭다 

전 세계 모든 담배 회사들 중에서 이 사실을 부정하는 회사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