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키아의 변신> 리스토 실라스마·캐서린 프레드먼 지음, 김홍옥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

1865년 핀란드 탐페레시에 작은 펄프공장이 생겼다. 3년 뒤 회사명을 노키아(Nokia Ab)로 바꿨다. 인근 강 이름에서 따왔다. 1910년대 말 노키아가 부실해지자 핀란드고무회사가 사들였다. 고무회사는 사업 확장과 변신을 거듭했다. 1967년 모든 계열사를 묶어 노키아(Nokia Corporation) 브랜드를 출범시켰다.

노키아의 성장은 파죽지세였다. 1982년 세계 최초로 카폰을 출시했고, 1984년 휴대용 전화를 선보였다. 1998년 모토로라를 제치고 전 세계 휴대전화 판매량 1위 자리에 올랐고, 2007년 전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41% 점유율을 차지했다. 인도에서는 시장 점유율이 무려 80%가 넘었다. `규모의 경제`가 이뤄지자 2007년 영업이익률은 16%나 됐다.

1998~2011년 13년간 휴대전화 시장의 왕좌는 오로지 노키아 몫이었다. 1998~2007년 핀란드 수출액의 20%를 차지하며 ‘핀란드 국민기업’으로 존경받았다. 노키아의 이익규모는 핀란드 기업 전체가 거두는 총 이익의 80%에 달할 정도였다.

그러나 위기는 절정의 순간에 찾아왔다. 애플이 2007년 6월 터치스크린 아이폰을 세상에 내놓았다. 구글은 2008년 말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출시했다. 노키아는 이처럼 스마트폰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는 모바일 시장의 흐름을 간과했다. 처음부터 실패 가능성을 안고 있었지만 자체 스마트폰 운영체제 ‘심비안’ 개발에 매달렸다.

결국 2012년 노키아 휴대전화 사업은 수직하락했다. 주가는 90% 이상 추락했다. 언론은 노키아의 파산을 기정사실로 여기면서 남은 것은 경영진의 파산신고 시점이라고 보도하고 있었다.

2012년 5월 IT 전문가 리스토 실라스마(Risto Siilasmaa)가 이사회 회장으로 전격 발탁됐다. 4년 전 이사회에 합류했던 실라스마는 보안회사 F-시큐어(F-Secure)의 창업자이자 CEO였다. 46세 구원투수는 통신장비 산업에서 재도약의 기회를 발견하고는 곧바로 공격적인 인수·합병에 나섰다.

2013년 9월 디바이스 사업을 마이크로소프트에 매각했다. 2001년 시가총액 300조원이던 노키아 휴대폰 사업이 불과 8조원(약 72억달러)에 처분된 것이다. 하지만 주식시장에서 노키아 주가는 급반등했다. 실라스마는 노키아 지멘스 네트웍스(NSN)와 알카텔-루슨트(ALU)를 인수하는데도 성공했다. 대변신의 토대를 확보한 것이었다. 실라스마가 주도했던 매각과 인수는 결과적으로, 기업 역사상 가장 성공적이며 전설적인 거래로 불리고 있다.

2016년말 노키아는 완전히 다른 회사가 됐다. 쪼그라든 일개 휴대폰 제조업체에서 무선, 유선, 케이블, 라우팅, 광케이블, 자립형 소프트웨어, 서비스, 디지털 헬스케어, 가상 현실, 브랜드 테크놀로지 등의 라이선싱 까지, 완벽한 포트폴리오를 갖춘 세계 3대 통신장비 업체가 되었다.

◇대화의 황금룰=노키아는 성공의 달콤함에 취해 열린 기업문화를 잃어버렸다. 이사회를 포함한 리더들은 현실 안주와 무사안일에 빠져들었다. 실패의 징후를 알아차리지 못했고, 알아차리고도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다. 내부에서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나쁜 소식을 보고하는 사람은 무능력자로 매도됐다. 경영진은 이사회의 눈치를 보느라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지 못했다. 아이폰과 안드로이드 출시에 따른 시장 변화와 위협의 심각성에 대한 토론마저 제한됐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 실린 한 연구논문에 의하면, 실라스마는 이사회와 경영진 사이에 ‘정직한’ 대화와 소통이 가능하도록 황금룰(golden rules)을 정했다. 자기 의견과 다르다는 이유로 적대적인 태도를 드러낸 임원은 다음 회의에서 반드시 사과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다양한 의견과 대안이 원활하게 제시될 수 있었다. 기존 전략에 대한 감정적인 집착을 줄이기 위해선 데이터를 최대한 활용하도록 했다. 운영체제 ‘심비안’의 경우 데이터를 근거로 존폐를 결정하라고 지시했다.

◇편집증적 낙관주의

실라스마는 자신의 저서 ‘노키아의 변신’에서 재도약의 비결로 편집증적 낙관주의, 기업가적 리더십 등을 제시한다. ‘편집증적 낙관주의(Paranoid Optimism)’는 철저하게 현실을 기반으로 한 낙관주의다. 긍정적·부정적 시나리오를 만들어 편집증적일 정도로 샅샅이 검토하고 그에 대비하면 미래에 대해 낙관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기업가적 리더십’을 갖추면 온갖 도전과 문제점, 위기, 나쁜 소식도 배움과 개선을 위한 기회로 삼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 해도 그것을 감당 가능한 요소들로 분해하고 그 요소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다 보면 결국에는 그 문제 전체를 풀 수 있다고 설명한다. 집요함을 발휘하면 누구나 도전을 이겨낼 수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