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라스베이거스, 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CES 2020은 세계 최대의 가전제품 박람회를 넘어, ICT 및 전자의 실질적인 트렌드를 체감할 수 있는 혁신의 장소로 변신하고 있다. 다만 혁신의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 것처럼, CES 2020이 추구하는 다양한 로드맵의 스펙트럼도 상당히 넓은 편이다. 그 결정적인 순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 현대차의 모빌리티 전략이 보인다. 사진=최진홍 기자 (1)

모빌리티를 넘어, 스마트 시티로

지난해 CES 2019까지 많은 기업들은 자율주행차 중심의 모빌리티 전략을 공개한 바 있다. 실제로 전시장에는 자율주행과 관련된 센서 기술과 반도체, 나아가 소프트웨어 기술을 자랑하는 업체들이 다수 포진했었다. 핵심은 ‘얼마나 자율주행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할 수 있는가’로 좁혀진다.

올해 CES 2020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지난해까지는 자율주행 기술이 곧 모빌리티의 진화라는 분위기가 역력했으나, 이번에는 차세대 모빌리티 전략이 대거 등장했기 때문이다. 2019년 많은 기업들이 자율주행차 기술을 공개하며 모빌리티의 1차 관문을 넘었을 당시, 일본의 토요타가 이팔렛트를 공개하며 공유 모빌리티 플랫폼 바람을 일으켰던 불씨가 CES 2020에서 들불처럼 번지는 분위기다.

현대차의 행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대차는 CES 2020을 통해 ‘당연한 것처럼 여기던’ 자율주행차 기술을 부스에 전시하지 않고 새로운 개념의 모빌리티 전략을 보여줬다. PAV(Personal Air Vehicle: 개인용 비행체)를 기반으로 한 UAM(Urban Air Mobility: 도심 항공 모빌리티), 나아가 Hub 전략이다.

입체적인 모빌리티 로드맵이다.

UAM은 하늘을 정조준한 모빌리티 전략이며 PBV는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이 수용 가능한 개인화 설계 기반 도심형 친환경 모빌리티로 정의된다. 또 Hub는 하늘의 UAM과 지상의 PBV를 연결하는 구심점이자 새로운 커뮤니티다. UAM과 PBV가 각각 하늘과 땅을 의미한다면, Hub는 이를 연결하는 플랫폼이 되는 셈이다.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은 “우리는 도시와 인류의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깊이 생각했다"며 "UAM과 PBV, Hub의 긴밀한 연결을 통해 끊김 없는 이동의 자유를 제공하는 현대자동차의 새로운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은 사회에 활기를 불어넣고 '인류를 위한 진보'를 이어 나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차는 우버와 협력해 UAM 전략을 동시에 구현할 방침이다. 우버 엘리베이트와 만나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한다는 각오다. 우버 엘리베이트를 총괄하는 에릭 앨리슨(Eric Allison)은 <이코노믹리뷰>와의 현장 인터뷰에서 “자동차 업계가 점점 커넥티드카 트렌드로 변하며, 제조사들의 생각도 많이 달라지는 것 같다”면서 “더 많은 자동차 제조사들이 하늘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무엇보다 현대차는 세계 최고 수준의 자동차 제조사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 현대차의 모빌리티 전략이 보인다. 사진=최진홍 기자

우버와 협력한 현대차의 모빌리티 전략은, 자율주행차의 한계에 묶인 기타 모빌리티 전략과는 차원이 다른 확장성을 가지고 있다. 물리적으로도 하늘을 포함하면서 다양한 이동수단을 통해 도시 인프라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에 나서기 때문이다. 정구민 국민대학교 교수는 이를 두고 “모빌리티의 미래가 곧 도시의 변화를 가져온다”고 정의했다. 모빌리티라는 플랫폼이 도시 전체를 바꾸는, 스마트 시티 혁명으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이러한 시도에는 현대차만 나서는 것이 아니다. 이팔렛트를 공개하며 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던 토요타는 올해 스마트 시티 ‘우븐시티’를 전격 공개했다. 우븐시티는 토요타 퇴직자와 기타 관계인들을 모아 만들 새로운 개념의 스마트 시티다. 토요타를 도로 인프라를 디지털로 제어하는 한편 다양한 초연결 실험의 테스트 베드로 우븐시티를 운영하겠다는 방침이다. 2021년 도시가 처음 공개될 예정이다. 스마트 시티 전략의 연장선이다.

삼성전자도 비슷한 전략을 보여준 바 있다. 삼성 넥스트의 에밀리 베커(Emily Becher) 전무는 기조연설에서 삼성전자가 반포 ‘래미안 퍼스티지’에 적용할 홈 사물인터넷 사례를 언급하면서 V2X(Vehicle-to-Everything)의 구현도 강조했다. 이동의 모빌리티와, 사물인터넷과 사람의 연결성을 통해 스마트 시티의 로드맵을 적극적으로 펼치겠다는 의지다.

물론 CES 2020에 자율주행차를 중심으로 하는 모빌리티 전략이 공개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많은 완성차 업체들이 참여해 자사의 자율주행차 기술은 물론 이와 연계된 다양한 기술 인프라를 보여줘 높은 관심을 받았다. 퀄컴은 오토메이티브 칩을 새롭게 공개했으며 아마존도 부스를 열어 자율주행기술과 인공지능 알렉사의 비전을 꾀한 바 있다. 그러나 CES 2020에서 또 다른 많은 기업들이 ‘모빌리티의 진화형’으로 스마트 시티 전략을 낙점한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CES 2020에 참여한 기업들이 일반적인 자율주행차에서 벗어난 다소 급진적인 모빌리티, 즉 스마트 시티 로드맵을 전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의 ‘메가시티’가 다양한 어려움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7일 서울시가 미국 라스베이거스 현장에서 ‘유레카’ 이벤트를 연 가운데 이원목 서울시 스마트도시정책관은 서울이 빠르게 스마트 시티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행정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서울이 메가시티로 변모하며 다양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이 정책관은 “지금의 서울은 교통 혼잡도가 심해지고, 환경은 악화되고 있으며 경제는 어렵다”면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도시 인프라 자체를 완전히 바로잡아야 하며, 그 해답은 모빌리티에서 시작되는 스마트 시티 로드맵에 있다”고 강조했다.

삼성 넥스트의 에밀리 베커도 비슷한 취지의 말을 했다. 그는 “2050년까지 인구의 70%가 도시에서 거주하게 될 것”으로 예측된다며 “이런 폭발적인 성장은 수많은 도전 과제들을 수반한다”고 말했다. 결국 스마트 시티는 우리에게 생존의 문제며, 이를 타진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CES 2020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간 셈이다.

▲ 현대차의 모빌리티 전략이 보인다. 사진=최진홍 기자 (1)

기술의 경계가 무너지다

CES 2020의 중요한 화두 중 하나는, 기술의 경계와 영역이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이런 트렌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올해 CES 2020에서는 기술이 발전 속도와는 무관하게 철저하게 수단이 되어 업의 본질을 변화시키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화장품 회사 로레알이 대표적이다. CES 2019 당시 로레알은 기본적인 사물인터넷 기반 기술만 선보였으나, 올해에는 기술을 철저히 수단으로 두고 순수하게 업의 본질을 모색하는 작업에 매진했다. 스마트폰으로 내 피부 상황을 실시간으로 체크한 후, 이에 맞는 화장품을 즉석에서 배합해 제공하는 서비스를 공개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콩카도 마찬가지다. 디스플레이 중심의 다양한 존재감을 보여준 콩카는, 전시장 한 구석에 악기인 우크렐레를 비치해 눈길을 끌었다. 기술의 발전만으로는 절대 이해될 수 없는 일이다. 이에 콩카 관계자는 “우크렐레를 쉽게 배울 수 있도록 콩카의 디스플레이 기술력을 바탕으로 코드를 잡는 방식을 알려준다”면서 “세밀한 사용자 경험이 곧 인간을 위한 길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즉, 기술의 활용이다.

일본의 소니가 공개한 전기차인 비전-S도 마찬가지다. 소니는 일본의 전자제품 회사로 활동하며 다양한 성과를 거뒀지만, 올해 CES 2020에서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전기자동차 시장에 본격 뛰어들어 눈길을 끈다. 요시다 켄이치로 소니 사장 겸 CEO는 “지난 10년 동안 모바일이 우리 생활을 송두리째 변화시켰다면 앞으로의 메가트렌드(Mega-trend)는 모빌리티가 될 것”이라며 “소니는 ‘창의력과 기술의 힘을 통해 세상을 감동으로 채우는 것’을 목표로, 사람들과 공감하고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제품, 콘텐츠 및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 소니의 비전-S가 공개되고 있다. 사진=최진홍 기자

비전-S는 소니의 이미징 및 센싱 기술을 탑재했으며 엔터테인먼트를 통한 사용자 경험 강화의 연장선에 있다. 결국 소니의 전기차 시장 진출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소니가 비전-S를 통해 이동하는 모든 것에 집중하며 업의 본질인 엔터테인먼트에 더 확실히 다가서려는 장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기술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현상은, 당연히 자유로운 상상력과 과감함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국내 기업에서는 이러한 분위기가 많이 보이지 않는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훌륭한 기술력을 보여줬으나 말 그대로 기술 로드맵 자체에만 집중했고, 그나마 현대차 정도가 파격적인 꿈의 확장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컴의 경우 이미 존재하고 있는 기술의 로드맵을 현실적으로 잘 보여줬으나 그 이상의 전략은 보이지 않았다.

두산도 야심차게 CES 2020에 진출했으나 미래형 기기 모형만 마련했을 뿐이다. 수소연료전지 기반의 드론이 눈길을 끌지만 이에 대한 별다른 설명은 없다. 물류부터 농업 등 산업현장 일반에서 활용되는 드론이라는 것에 그쳤다. 부스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드론은 10여가지 용도로 사용할 수 있으며 두산은 수소연료전지 기술을 전담한다. 그 외 몸체와 날개 등은 외부 파트너와 협력한다는 설명이다.

▲ 두산의 차세대 중장비가 보인다. 사진=최진홍 기자

‘더 똑똑해지다’

CES 2020을 기점으로 사물인터넷의 정의가 달라질 전망이다. IoT의 명칭은 Internet of Things지만, 이제 intelligent of Things로 바꿔야 할 순간이 왔다. 단순한 인터넷, 즉 연결이 아니라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더 똑똑하게 연결해 작동하는 시대가 오기 때문이다.

CES 2020 곳곳에 배치된 다양한 로봇, 드론이 이를 증명한다. 중국의 DJI는 인공지능 기술이 탑재된 드론을 공개했고, 현장에는 인텔리전트 개념으로 무장한 다양한 로봇이 눈길을 끌었다.

특히 네온의 개념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제온은 삼성전자와 협력하고 있으며, 인공인간 업체를 표방한다. 인공인간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아바타 형상으로 끌어낸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인공지능이 음성 인터페이스 기반의 플랫폼이라면, 네온은 인공인간 형태로 디스플레이로 구현되어 ‘우리에게 말을 거는 것’이 새롭다.

▲ 네온의 인공인간이 보인다. 사진=최진홍 기자

삼성전자의 미국 연구조직인 삼성리서치아메리카(SRA)의 산하 연구소인 스타랩스가 네온의 핵심 동력이다. 스타랩스는 천재 공학자로 알려진 인도 출신의 프라나브 미스트리며, 그는 2014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최연소 전무로 활동하고 있다. 사실 SRA의 네온 런칭은 이미 예견된 일이다. 현재 미국 특허청에는 SRA가 특허신청한 '코어 R3' 파일이 올라와 있기 때문이다. 그 연장선에서 삼성전자는 새로운 인공지능 인터페이스의 진화를 염두에 두고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는 분위기다.

일본의 샤프는 스마트라이프를 현실로 구현하겠다는 비전을 분명히 했다.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의 합성어인 AIoT를 전면에 걸고 2020년형 8KTV에도 집중하는 분위기다. 여기에 캐논과 니콘 등 전통의 카메라 제조사들이 기술 혁신을 이어가는 하는 등 인상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제 인공지능은 초연결 시대를 넘어, 연결 자체를 재정의하는 더 똑똑한 플랫폼 서비스로 거듭날 전망이다. 그런 이유로 인공지능 기술력, 즉 컴퓨팅 파워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공지능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