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네이버 영화

[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정치 누아르 영화 ‘내부자들’로 국내 영화계에 큰 획을 그은 우민호 감독이 이번에는 우리 근현대사 역사 속 가장 큰 소용돌이인 이라는 무거운 소재로 관객들을 찾아왔다. 바로 10·26을 소재로 한 영화 ‘남산의 부장들’이다. 

10·26은 우리나라 근현대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흐름을 만들어낸 사건이었기에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다양한 관점으로 많이 다뤄진 소재다. ‘남산의 부장들’ 이전까지 이 사건을 중심 소재로 다뤘던 영화는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 사람들’(2004) 정도가 있었다. 

‘그때 그 사람들’이 역사의 실화에 블랙코미디를 적절하게 조합시킨 수작으로 호평을 받았다면 ‘남산의 부장들’은 그보다 조금 더 어둡고 묵직한 누아르의 느낌을 더 강조했다. 우선 장면의 톤이 전반적으로 다운돼있어 마치 70년대 말~ 80년대 초의 사진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긴다. 여기에 거의 모든 장면도 어두운 색채가 강조된다. 영화의 장면으로 보여주는 색감에서부터 어떤 느낌을 강조하고자 하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작품의 예고편이 공개되자 어떤 이는 “연기의 신들이 대결을 펼친다”라는 표현을 써가며 배우들의 연기를 극찬했다. 우민호 감독 특유의 누아르 감성이 한껏 반영된 배경에 그 어두움을 완성시킨 것은 주연과 조연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다. 대통령을 암살한 중앙정보부장 김규평(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역을 맡은 배우 이병헌은 김재규 부장이 당시에 ‘실제로 저런 고뇌를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설득력이 있다. 

▲ 출처= 네이버 영화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권력구도 서열에서 서서히 밀려나는 것에 대한 불안감과 권력 유지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지도자에 대한 실망감 등 복잡한 감정들을 한 얼굴로 담아내는 배우 이병헌의 역량은 이번 작품에서 가히 반짝반짝 빛난다. 

주연배우이기에 어쨌든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이병헌의 연기지만 화면에 등장하는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역량으로는 그 외 조연들의 연기도 만만치 않다. 능청스러운 악역 연기의 대가 곽도원, 무소불위의 권력 유지에 눈이 먼 독재자를 능숙하게 표현한 배우 이성민, 이병헌과 멋진 대립각을 세우는 경호실장을 표현한 이희준의 연기도 가히 숨이 막힌다. 

‘역사가 곧 스포일러’인 작품이기에 결말이 정해져 있지만 그럼에도 작품에서는 긴장감이 흘러넘친다. 아마도 이러한 긴장감을 만든 것은 곧 배우들의 역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다만, 한 가지의 단점이 있다면 아무래도 결말이 정해져 있는 작품이기에 후반부에 펼쳐지는 감정의 폭발이 그렇게 강렬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자칫 영화의 내용이나 작품성과 별개로 보는 이들에게 자칫 지루함을 선사할 수 있는 요소가 될 수도 있을 듯 하다. 

한 가지 덧붙이면 우민호 감독이 직접 밝힌 영화의 본래 의도와는 다르게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도 분명 있다. 이런 요소가 있는 많은 영화들은 작품의 가치를 충분하게 평가받지 못하는 일들이 있었기에 다소 우려스러운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기에 작품 자체의 가치와 큰 관계는 없다고 본다.   

우리 근현대 역사의 많은 것들을 바꾼 소용돌이의 시작은 우민호 감독 특유의 누아르 스타일을 만나 색다른 시선의 접근이 됐다. 애써 정치적 관점으로 해부해서 보는 것 보다는 역사의 큰 흐름을 마주한 이들의 눈물겨운 고뇌를 표현한 한 편의 휴먼드라마로 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