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텍사스의 소도시 에드나(Edna)는 휴스턴에서 100마일 떨어진 인구 5700여명의 시골 마을이다.   출처= Dreamstime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2018년 6월 20일 이른 아침, 텍사스의 소도시 에드나(Edna)의 조 헤르메스 시장은 월마트 본사의 한 임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나쁜 소식을 전했다. 36년 동안 영업해 온 월마트 에드나 매장 문을 닫는 다는 것이다.

월마트가 이 마을에서 영업을 해 온 기간 만큼이나 이 작은 도시의 시장을 맡아 온 헤르메스 시장은 "마치 폭탄으로 한 대 맞은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월마트는 에드나의 엔진이었다. 에드나의 가장 큰 고용주였으며 가장 큰 납세자였고, 논과 목장과 초원으로 둘러싸인 인구 5700명의 작은 지역 사회에서 24시간 사교 중심지였다. 수 십년동안 월마트에 충성을 다 해온 많은 손님들과 종업원들에 따르면, 월마트 에드나점은 꽤 잘 되는 것 같았기 때문에 매장 문을 닫는다는 소식은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아마도 월마트는 에드나시와 그 지역 경제에 대해 그곳 주민들이 알지 못했던 것을 알고 있었을 지 모른다.

많은 사례 연구들은 어느 지역에 월마트가 들어서면 지역사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 막강한 힘을 바탕으로 가격을 낮추고 지역 경쟁자들을 어떻게 몰아내는 지에 대해 자세히 말하고 있다. 하지만 월마트가 갑자기 짐을 싸서 떠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 말해주는 연구는 거의 없다.

그러나 뉴욕타임스(NYT)는 도시를 더 튼튼하게 만들지도 모르는 방식으로 이 곤경을 헤쳐나간 시골 도시 에드나시의 자구 노력을 소개했다.

인구 5700명의 작은 도시 에드나

에드나 월마트의 폐쇄는 전자상거래 혁명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소매업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월마트는 지난해 전국적으로 수 년 만에 최고의 판매 성장을 달성하며 회사를 디지털 소매 메카로 변신시켰다. 선반을 검색하는 로봇들이 통로를 배회하고 주차장에서는 쇼핑객들이 휴대폰으로 아보카도를 주문해 자동차로 배달시킨다.

그러나 1982년에 지어진 비교적 규모가 작은 에드나 매장에는 월마트가 자랑하는 그런 서비스들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약 25마일(40km) 이내의 거리에 몇 개의 매장을 갖고 있는 가진 월마트에게 에드나점은 더 이상 필요 없는 매장이었다(그러나 월마트는 에드나를 떠난 이유를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다만 회사는 에드나 매장의 직원 90명 상당수는 다른 매장으로 전보시키겠다고 제안했다.

에드나는 자랑스러운 곳이다. 도심의 극장에는 무지개 불빛이 반짝거리고, 극장 건물 꼭대기의 탑 높은 곳에 도시의 이름을 씌어 있다. 이 극장은 몇 년 동안 영화를 상영하지 않았지만, 최근 이 건물을 사들인 새 주인은 주민들에게 곧 영화를 다시 상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거리 중심가에는 미국 성조기가 펄럭이고 있는데, 헤르메스 시장은 “미국 정부가 베트남 전쟁 당시, ‘명예로운 평화가 달성될 때까지 우리는 당신들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던 것을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하지만 월마트가 떠나면서 에드나 주민들은 어디서 약을 살 것인지, 매장에서 일하던 직원들은 어떻게 될지, 세수 손실은 어떻게 메울 지에 대해 걱정했다. 폐쇄가 발표되자, 이 도시의 리디메어 루터교회(Redeemer Lutheran Church) 앤드류 슈뢰어 목사는 텍사스의 여러 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 설교에서 신도들을 위로하려고 노력했다.

2003년, 여러 교회로부터의 청빙을 거절하고 마이애미에서 에드나로 온 슈뢰어 목사는 "월마트가 문을 닫아도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칼럼에 썼다.

“하나님이 여러분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할 방법을 찾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난관을 능히 이겨낼 것입니다.”

▲ 에드나 도심 극장 건물 탑에 도시의 이름을 씌어 있다.    출처= Texas Escape

에드나는 휴스턴에서 남쪽으로 약 100마일(160km) 떨어져 있다. 시내 중심가에는 네일 숍, 꽃가게, 보석가게 핫 본즈(Hot Bonds), 몇 몇 빈 점포도 있고 카운티 감옥도 눈에 띈다. 불과 몇 주 전에 이 길을 따라 크리스마스 퍼레이드가 열리기도 했다.

이 마을은 1882년에 설립되었다. 멕시코에서 뉴욕까지 잇는 철도를 건설하기 위해 텍사스로 온 이탈리아 백작의 딸의 이름을 따서 마을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백작은 수 백 명의 이탈리아 노동자들 이주시켰고 그들은 주로 마카로니를 먹었기 때문에 이 철도에 마카로니선(線)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러나 이탈리아 백작은 약 90마일의 선로만을 깔아 놓고 떠났다.

쌍발기를 타고 온 샘 월튼

100년 후에 또 다른 기업가가, 이번에는 프로펠러기를 타고 왔다.

그 남자는 키가 크고 작업화와 청색 데님 재킷을 입고 에드나 공항에서 쌍발 엔진인 세스나에 기대어 자신을 샘 월튼이라고 소개하며 월마트라는 할인점 체인점을 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월마트의 창업자 샘 월튼이 에드나에 매장을 짓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온 것이다.

당시 에드나의 시장이었던 올해 85세인 리차드 브라우닝은 이렇게 회상했다.

“나는 그가 소 키우는 목장주인 줄 알았지요”

월마트의 474호점에드나 월마트는 그렇게 해서 고속도로 출구 옆 넓은 공터에 문을 열었다.

월마트는 머지않아 에드나의 명소가 되었다. 사람들은 가전제품, 의류, 어린이 신발, 크리스마스 트리를 이곳에서 구매했다. 나중에는 약과 식료품이 추가됐다. 1990년 무렵에는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도시의 많은 옷가게, 식료품점들은 월마트의 낮은 가격과 경쟁하는데 어려움을 겪다 문을 닫았다.

월마트에서 일했던 사람들에게 월마트는 희비가 교차하는 경험이었다. 대부분은 정규직 직원이었지만 파트타임 직원들도 있었다. 그들에게는 일부 혜택이 제한적이었지만, 당시 이 지역의 가장 큰 고용주였던 플라스틱 공장에서 일하는 것보다 보수도 좋았고 육체적으로도 덜 힘들었다.

매장의 자동차 부품 판매 코너에서 일하다가 남편을 만난 서머 웹스터는 하루의 많은 시간을 고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보냈다고 회상했다.

"나는 그 시절이 너무 좋았습니다.”

에드나의 모든 사람들이 월마트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있다. 어느 어머니는 아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높은 열병에 시달리자 해열제 이부프로펜을 사러 월마트로 달려갔는데 정작 자신의 아들을 낫게 해 준 것은 해열제가 아니라 꼬마 기관차 토마스와 친구들(Thomas The Tank Engine)이라는 장난감이었다.

신장 이식을 한 젊은 여성은 약 파는 곳이 집 근처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얻었다. 한 시의원이 점심시간이 되면 쇼핑하러라기 보다는 마을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기 위해 매장 통로를 거닐곤 했다. 죽은 사람들을 위해 관을 맞추는 일을 했던 마을 목공소 주인은 한 밤중에도 관에 붙일 장식품을 사러 매장에 오곤 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

그런데 이제 매장이 없어진 것이다.

에드나의 주간 신문 <잭슨 카운티 헤럴드 트리뷴>(Jackson County Herald-Tribune)의 편집자 겸 발행인 크리스 런드스트롬은 월마트가 매장 문을 닫는다고 전화했던 날 아침에 그녀의 뉴스룸이 얼마나 침울했었는지를 회상했다.

"나는 큰 숨을 내쉬었습니다. 마치 누군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처럼 말이지요."

병상이 25개인 이 마을 병원의 최고재무책임자이자 에드나의 현 시장인 랜스 스미가는 동료에게 이렇게 물었다.

"월마트도 없는데 의사들을 채용하면 오기나 할까?"

플라스틱 공장에서 일하는 55세의 빌리 스토즈는 월마트에 전화를 걸어 매장 문을 닫는 것이 이 지역 사회에 어떤 피해를 줄 것인지 설명했다.

"그저 내 목소리를 들려주길 원했을 뿐입니다. 이 마을 사람들이 모든 월마트에 전화를 했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러나 떠난다는 결정은 이미 내려져 있었습니다.”

지난 12월, 샌안토니오에 본사를 둔 목재와 철물 제품을 판매하는 가족 소유 체인 알라모 럼버(Alamo Lumber)가 월마트 자리에 문을 열었다. 출처= Alamo Lumber

에드나의 변신

그러나 에드나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계획했다. 판매세(sales tax) 수입의 감소에 대비해 시 지도자들은 도로 보수를 줄이고 ‘지역 제품 구매’ 캠페인을 시작했다.

에드나 오토 서플라이(Edna Auto Supply)라는 가게는 월마트가 팔던 탄약, 토스터, 크리스마스 트리 같은 물건들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런드스트롬은 빅토리아시에 있는 월마트 슈퍼센터에서 공책과 펜을 구입해 신문사 사무실들에 재판매하는 일을 부업으로 겸하고 있다. 달러 제네럴(Dollar General) 건너편에 패밀리 달러(Family Dollar)가 새롭게 문을 열었다. 지난 4월 새로 문을 연 에드나 약국은 에티오피아 전통 커피와 스낵을 제공하며 그랜드 오프닝 기념식을 가졌다.

지난 12월에는 샌안토니오에 본사를 둔 목재와 철물 제품을 판매하는 가족 소유 체인 알라모 럼버(Alamo Lumber)가 월마트 자리에 문을 열었다. 이곳의 매장의 불빛 밝은 선반에는 PVC 파이프와 체인 톱 같은 건물 자재가 빼곡하게 쌓여 있고, 갓 잘라낸 나무 냄새가 신선한 느낌을 준다. 여기에서는 11명의 직원이 일한다.

런드스트롬은 "그들이 우리 마을에 들어온 것은 정말 좋은 일이다. 월마트와는 또 다른 느낌"이라고 말했다.

월마트 에드나에서 일했던 직원 90명 중 절반 가량은 다른 지역 매장으로 옮겼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회사에 남지는 않았다.

35세의 에릭 웨이드는 에드나에서 40마일 떨어진 지역의 매장으로 옮겨 트럭 하역 일을 했지만 몇 달 만에 그만뒀다. 그는 그 매장이 종업원들 사이의 동료애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는 현재 중장비 회사 캐터필러(Caterpillar) 굴착기 생산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에드나에서 옮겨간 사람들 중 일부는 새 직장으로 매일 차를 몰고 가야하기 때문에 자동차 기름값으로 임금이 빠져나가고 있다고 걱정한다.

결국 몇몇 사람들은 에드나에서 일을 찾았다. 월마트 약품 코너에서 일하던 25세의 오버리 가르시아는 현재 에드나의 시내 꽃 가게에서 꽃 배달 일을 하고 있다. 자동차 부품 코너에서 일하던 수다쟁이 직원 웹스터 부인은 에드나 병원의 재활운동실에 환자들을 점검한다.

에드나 주민들 대부분은 월마트에서 다시는 쇼핑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인근 더 큰 도시의 월마트 매장까지 차를 몰고 가서 쇼핑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도 한다.

지난 해 가을, 에드나는 기분 좋은 놀라운 소식을 접했다. 월마트가 떠난 후에도 시 공무원들이 두려워했던 만큼 판매세가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것은 새로 생긴 에드나의 소매점들이 그 공백을 메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헤르메스 전 시장은 "사람들은 이제 집에서 쇼핑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운 것 같다”고 말했다.

에드나의 세수에는 에드나 주민들이 아마존이나 다른 대형 전자상거래 사이트에서 상품을 구매한 것도 포함될 것이다. 물론 텍사스주나 에드나시 어느 쪽에서도 에드나 주민들이 온라인 상점에서 얼마나 지출했는지 밝히지 않는다. 따라서 에드나 주민들은 월마트가 떠난 후 어디에서 그만큼의 소매 판매가 나왔는지 결코 확실히 알지 못할 것이다.

리디메어 루터교회의 슈뢰어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볼 때,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나는 진심으로 그렇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