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미중 무역합의 1단계가 마무리된 가운데 두 수퍼파워가 벌이던 신경전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있으나, 미국 정부와 중국 화웨이의 난타전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캐나다에서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 미국 송환 여부를 가리는 재판이 열리고 있는 가운데 화웨이는 미국 통신사인 버라이즌에 특허기술 활용과 관련된 소송을 걸었으며, 미국 상원은 화웨이 5G 굴기를 막으려는 법안까지 발의한 상태다.

중국의 기술굴기 선봉장인 화웨이를 꺾으려는 미국과, 이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화웨이의 전투는 최근 "내 편 만들기"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유럽은 미국과 화웨이의 구애를 동시에 받으면서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치열한 공방전
미중 무역전쟁이 소강국면에 돌입한 가운데 업계에서는 현재 캐나다에서 벌어지고 있는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의 재판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달 20일(현지시간) 시작된 재판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며, 재판 결과에 따라 멍 부회장이 미국으로 송환되거나 중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릴 전망이다.

화웨이 창업주인 런정페이의 딸이기도 한 멍 부회장은 지난 2018년 12월 캐나다 벤쿠버에 체류하던 중 미국의 대이란 제재를 위반한 혐의로 전격 체포된 바 있다. 이후 보석으로 풀여난 멍 부회장은 전자발찌를 차고 캐나다 자택에 머물렀으며, 미국 사법당국은 그가 미국의 대 이란 제재를 어겼기 때문에 미국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중국과 화웨이는 끊임없이 멍 부회장이 중국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중이다. 화웨이는 멍 부회장 미국 송환과 관련된 재판이 시작되자 "결백을 입증할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그가 하루 속히 가족, 동료,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1단계 미중 무역합의에 미국의 화웨이 제재와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지 않은 가운데, 만약 멍 부회장이 미국으로 송환된다면 미중 무역전쟁이 다시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이 지난해 9월 1일부터 적용하던 1200억달러 상당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기존 15%에서 7.5%로 내린 상태에서 중국도 14일 13시 1분을 기점으로 지난해 9월 1일 750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제품에 부과됐던 관세를 50% 인하한다고 밝히는 등 두 수퍼파워의 전쟁은 소강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멍 부회장의 거취에 따라 향후 정국은 거칠게 요동칠 수 있다.

멍 부회장 거취를 두고 미국과 화웨이가 신경전을 벌이는 가운데 최근 영국이 화웨이의 손을 잡기로 결정하며 또 한 번 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BBC 및 가디언 등 영국 언론은 1월 28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국가안보회의(NSC)를 열어 5G 통신 네트워크 공급망에 관한 검토 결과를 확정했으며, 여기에 화웨이 장비가 들어간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민감한 네트워크 핵심 부문에서는 화웨이를 배제하고, 비핵심 파트에서도 화웨이의 점유율이 35%가 넘지 않도록 제한을 뒀으나 사실상 화웨이와 함께 5G 동행을 선택한 셈이다.

지난해 12월 영국 더 메일 온 선데이는 영국의 보안 책임자들이 보리스 존슨 총리에게 안보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화웨이가 영국의 5G 네트워크를 제공 할 수 있도록 녹색 표시를 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영국의 선임 보안 책임자는 더 메일 온 선데이에 “국가 안보와 영국에 대한 경제적 이익 사이의 균형은 우리가 관리 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 런던에 화웨이 5G 이노베이션 & 익스피리언스 센터까지 들어서고 있다. 영국과 화웨이의 만남은 이미 예고됐던 셈이다.

▲ 영국에 화웨이 5G 거점이 생긴다. 출처=화웨이

예고된 일이지만 미국의 당혹감은 상당했다. 미국은 중국 정부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화웨이 장비를 도입할 경우 소위 백도어를 통해 국가 안보 위기가 시작될 것이라 주장하는 중이며, 화웨이로 대표되는 중국 기술굴기의 확산을 차단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영국이 화웨이와 동맹을 맺자 충격은 배가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후 상호 첩보 동맹을 맺은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의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체제에 균열이 간다는 뜻이다.

영국 입장에서는 브렉시트를 통한 불확실성의 시대를 준비하며 화웨이를 통해 중국과의 협력을 다지려는 복안도 가지고 있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영국과 화웨이의 만남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7일 미국과 영국 정부 당국자 멘트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존슨 총리와 화웨이 이야기를 나누며 미친 듯이 화를 냈다"고 보도했다.

전투는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글로벌 통신장비 시장에서 화웨이가 여전히 강한 기술과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이는 가운데, 화웨이가 미국 통신사인 버라이즌에 특허 이용료를 지불하라는 소송을 냈기 때문이다. 실제로 7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화웨이는 텍사스의 연방지방법원에 제출한 소장을 통해 버라이즌이 화웨이의 특허 기술을 무료로 유용했으며, 이에 대한 특허료를 지불하라고 주장했다. 화웨이 최고법무책임자(CLO) 송류핑은 버라이즌을 겨냥하며 “화웨이가 수년간의 연구개발(R&D)을 통해 개발한 특허 기술로 혜택을 봤다”고 말했다. 버라이즌은 즉각 "쇼"라며 반박했으나 양측의 긴장감은 고조되는 중이다.

업계에서는 화웨이가 버라이즌을 상대로 소송을 건 이유를 두고 동맹국에 화웨이 장비 배제를 요구하는 미국에 대한 압박으로 해석하고 있다. 미국이 영국 및 유럽은 물론 아시아 동맹국을 대상으로 화웨이 장비 배제를 공공연하게 요구하는 가운데 이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버라이즌에 대한 소송에 나섰다는 뜻이다.

화웨이는 한 발 더 나아가 자국 기업인 샤오미, 화웨이, 오포와 연합해 공동 앱스토어를 만들겠다는 발표도 했다. 더버지의 보도에 따르면 공동 앱스토어는 글로벌 개발자 서비스 얼라이언스(GDSA)’라는 통합 플랫폼이며 오는 3월 인도와 러시아 시장에서 서비스를 시작할 방침이다. 사실상 구글 앱 스토어를 겨냥한 전략적 포석이다. 현재 구글은 미국 정부의 정책에 따라 화웨이에 정상적으로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제공하지 않고 있으며, 화웨이는 독자 운영체제를 발표하는 한편 자국 기업들과 손잡아 구글 앱 스토어에 도전장을 냈다.

유럽에 5G 장비 공장을 건설하겠다는 깜짝 발표도 했다. 화웨이는 4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신년회를 통해 유럽공장 설립 계획을 발표했다. 에이브러햄 류 유럽 화웨이 CEO는 "우리는 유럽에 집중하고 있다"면서 "유럽에 공장을 건설할 것으로 이미 내부에서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유럽연합에서 회원국이 5G 장비 구축에 돌입할 때 적용해야 하는 가이드 라인을 발표한 직후라 특히 의미심장하다. 유럽연합은 회원국이 5G 장비 구축을 할 때 고위험 공급업체(high risk vendors)와 협력하지 말아야 한다고 발표했으나, 중국이나 화웨이를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다. 일각에서 화웨이의 유럽공장 건설 발표가 가이드 라인에 화웨이를 배제하지 않은 유럽연합에 대한 '성의'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화웨이는 유럽연합의 가이드 라인이 발표된 직후 "유럽 내 5G 네트워크 구축에 있어 화웨이가 계속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한 이번 유럽의 결정을 환영한다"면서 "5G 보안과 관련해 이처럼 편향되지 않고 사실에 근거한 접근방식은 유럽이 보다 안전하고 빠른 5G 네트워크를 가질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화웨이가 미국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심지어 미국과의 협력 가능성을 거론하거나 버라이즌에 대한 고소까지 진행하는 등 맞불을 놓자 미국도 재차 압박의 강도를 올리고 있다. 지난 1월 미 상원에서 화웨이 5G 굴기를 막고 자국 인터넷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펀드 조성 법안을 통과시킨 상태에서, 동맹국의 화웨이 장비 배제를 종용하면서 화웨이로 돌아서고 있는 유럽의 마음을 되돌리려 노력하고 있다.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은 4일 WSJ와의 인터뷰에서 "에릭슨, 노키아와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으며 윌리엄 바 미국 법무장관은 6일 미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가 개최한 콘퍼런스에서 아예 에릭슨 및 노키아와 동맹을 맺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금지원까지 염두에 두고 미국과 유럽 공동 통신 컨소시엄을 만들자는 제안이다.

▲ 말레이시아에 화웨이 테크시티가 건설된다. 출처=화웨이

행복한 고민, 그리고 일말의 불안
미국은 1차 무역협상에서 화웨이 이슈를 의도적으로 배제했으며, 이는 멍 부회장 송환 문제와 연결되어 2차 협상의 주요 아젠다가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당분간 화웨이에 대한 압박을 최대로 끌어올려 2차 협상의 유리한 고지에 오르려 시도할 전망이다. 그러나 화웨이에 대한 무조건적인 압박은 미국 경제에도 큰 타격을 주기 때문에, 올해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언제까지 압박전술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구글 등 미국 기업들은 지속적으로 미국 정부에 화웨이 제재를 풀어 정상적인 거래를 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으며, 심지어 미 행정부 내에서도 비슷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24일 WSJ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자국 기업이 해외 시설을 통해 화웨이에 부품을 파는 걸 어렵게 하는 규정을 만들려고 했으나, 다른 부처들의 반대에 직면한 상태다. 화웨이와의 거래가 제한될 경우 핵심 수입원을 잃는 상황이 올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한 가운데 미 예산관리국(OMB)이 관련 정책에 대한 생각을 물은 결과 국방부, 재무부가 반대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보호 무역주의를 통해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운다는 불만이 동맹국들 사이에서 팽배한 가운데, 동맹국들이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화웨이의 손을 잡는 점도 부담이다. 영국은 물론 네덜란드, 스위스, 포르투갈 등 많은 유럽 국가들이 화웨이의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 신흥시장인 동남아시아도 마찬가지다. 화웨이는 지난달 8일 말레이시아 이동통신사 맥시스(Maxis)와 만나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르에 테크시티(TechCity)  프로그램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테크시티는 프로그램은 신서비스 인큐베이팅, 최적의 사용자 경험 제공 등을 통해 5G 네트워크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화웨이는 지난해 10월 맥시스와 말레이시아 푸트라자야의 프라임 리더십 재단에서 말레이시아 5G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협약을 맺은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강력한 기술력을 가진 화웨이와, 어떻게든 화웨이를 밀어내려는 미국의 공방전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특히 '동맹군 포섭'이 공방전의 핵심이기 때문에, 미국과 화웨이의 충돌이 가장 극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유럽은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다. 서로가 "우리에게 오라"며 손짓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업계에서는 미국과 화웨이의 공방전이 치열해지며 유럽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강대강 대결이 펼쳐질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다른 글로벌 경제 현안에 충돌의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영국이 화웨이의 손을 잡자, 브렉시트 후 미국과 무역협상을 진행하려는 영국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는 가디언의 보도가 나온 상태다. 또 미중 무역전쟁도 언제든 사태의 추이에 따라 요동칠 수 있기 때문에, 업계의 긴장감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