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봉준호 영화감독의 <기생충>이 지난해 황금종려상 수상에 이어 10일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무려 4관왕에 올랐습니다. 백인과 남성 중심의 아카데미 역사를 단숨에 바꿔버린 혁명에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고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뛰어난 성과와 더불어 그의 조력자들도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봉 감독의 든든한 후원자인 이미경 CJ 부회장과 더불어 통역사 최성재(샤론 최·Sharon Choi)씨에 대한 관심도 뜨겁습니다. 시상식 내내 봉 감독과 <기생충> 배우들의 곁을 지킨 그는 봉 감독이 "내 언어의 아바타"라 부를 정도로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샤론 최는 시상식 전에도 봉 감독의 영어권 매체 인터뷰에도 동행해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봉 감독이 말하는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그 의도를 정확하게 짚어내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봉 감독이 인터뷰를 통해 <기생충>을 홍보하며 "스토리를 모르고 봐야 더 재미있다"고 말하자 "the film is the best when you go into it cold(당신이 준비되지 않았을 때 영화를 보는 것이 좋다 - 여기서 cold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를 뜻함)"로 번역한 대목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유튜브에는 그녀의 통역장면을 찍은 영상이 100만 재생을 넘겼고, 영화매체 인디와이어는 샤론 최에게“오스카 시즌의 MVP(Most valuable player)"라는 찬사를 남겼습니다. 뉴욕타임즈는 시상식 당일 아예 샤론 최만 집중 조명한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샤론 최 열풍을 보고있으니 두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칩니다. 하나는 '봉준호 감독이 훌륭한 언어 전문가와 일하고 있다'입니다.

현재 샤론 최 열풍이 뜨겁지만, 지난해 황금종려상 시상식에서 <기생충>의 영어번역을 맡았던 달시 파켓에 대한 관심도 상당히 높았습니다. 그는 영화에 나오는 '짜파구리'를 '라면 플러스 우동'으로 바꾸는 등 기발한 번역기술로 <기생충>의 황금종려상 수상에 큰 역할을 해냈습니다. 달시 파켓은 미국에서 태어나 영국 영화전문지 스크린인터내셔널과 미국 연예전문지 버라이어티 기자를 거쳐 지금은 들꽃영화상 집행위원장과 부산아시아영화학교 교수로 일하며 한국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흥미가 생겨 이력을 찾아보니 국내 영화의 단역으로도 출연한 적이 있네요. 영화 <돈의 맛>에서 사악한 외국인 경영자로 잠깐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영화에서는 사악했지만, 그의 언어 연금술은 봉 감독의 든든한 무기가 됐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2017년 한국을 찾은 마이크 슈스터(Mike Schuster) 구글 번역 최고 담당자의 말입니다. 그는 당시 스마트클라우드쇼 기조연설을 통해 "어쩌면 번역기가 인간을 완전 대체하는 시점은 오지 않을 수 있다"는 충격적인 말을 남겨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지금부터 우리가 논의할 진짜 이야기의 시작입니다.

21세기 바벨탑
성경에 등장하는 바벨탑은 인류가 신의 권위에 도전하기 위해 쌓은 거대한 탑입니다. 그러나 이를 용납할 수 없었던 신은 바벨탑을 무너트렸고 하나의 언어로 일사분란하게 활동하는 인류를 찢어놓기 위해 여러 개의 언어를 쓰게 만듭니다. 언어는 곧 교류와 동맹의 근간이기 때문에, 실로 적절한 조치로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언어학자들에 따르면 전 세계의 언어 종류가 최대 7000개라고 하니, 신의 분노는 상당히 매서웠나봅니다.

신의 분노로 바벨탑이 무너졌으나, 1950년대 인류는 다시 신에게 도전하기 시작합니다.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이 기계번역을 통해 언어의 법칙을 풀려는 시도를 계속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노력은 전통의 기술기업 IBM이 1980년대 통계에 기반한 언어번역 기술을 공개하는 성과로 이어지고, 2000년대 이르러 구글이 방대한 텍스트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공지능 통번역 기술에서 두각을 보이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인공지능과 클라우드, 빅데이터로 대표되는 '삼위일체'라는 인류가 만든 새로운 신의 신대가 펼쳐지는 순간입니다.

지금은 구글을 비롯해 국내에서도 네이버 클로바 파파고, 카카오의 카카오i 번역 등 많은 기술들이 전혀 다른 통번역 시대를 펼치고 있습니다. 특히 네이버의 성과가 상당합니다. 유럽 최대의 인공지능 거점 확보에 이어 다양한 플랫폼에 이를 활용하는 놀라운 실적을 내고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일본의 메이지 대학은 후지쯔 인공지능 번역 서비스를 도입해 약 1000명의 직원이 사용할 정도로 높은 성과를 냈으며, 한컴과 SK텔레콤은 인공지능 기반 통번역 서비스를 가동하는 지니톡 서비스에도 돌입했습니다.

이들은 인공신경망을 통해 언어나 텍스트를 취합해 다양한 환경에서 발생되는 언어를 실시간으로 취합하며 사실상 '통번역가가 필요없는 시대'를 꿈꾸게 만들고 있습니다. 다른 뜻으로 하면 '지긋지긋한 영어공부를 할 필요가 없는 시대'입니다.

▲ 바벨탑. 출처=위키디피아

바벨탑이 건설될까?
재미있는 대목은 이러한 ICT 기술의 진화, 즉 새로운 바벨탑 건설 가능성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는 사람들입니다.

재작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AWS 공공부문 서밋 행사에서 전문 통번역사와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그는 인공지능 기술이 인간의 통번역 능력을 뛰어넘을 수 없다고 단언하면서 "언어의 미묘함은 인간만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예를 들어 봉준호 감독이 "스토리를 모르고 봐야 더 재미있다"라고 말했을 때 구글 번역기는 "More fun to see without knowing the story"로 번역하는 수준에 머물지만 샤론 최는 "the film is the best when you go into it cold"로 의역해 번역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짜파구리를 번역할 때도 구글 번역기는 이해할 수 없지만, 달시 파켓은 "라면 플러스 우동"으로 번역할 수 있는 것도 같은 연장선에 있습니다.

인공지능 기술, 인공신경망 기술이 발달하고 있으나 언어가 가진 미묘한 구조는 결국 인간만 이해할 수 있고, 여기에는 폭넓은 문화적 맥락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기생충>으로 돌아가 보면, 샤론 최와 달시 파켓 모두 영화인이라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히 언어를 번역하는 것을 넘어, '업'을 이해하는 인물이 통번역이라는 언어의 제조술에 더 특화된 존재감을 보인다는 것은 결국 많은 시사점을 남깁니다.

그런 이유로 AWS 서밋 현장에서 만난 전문 통번역사는 "인공지능은 통번역사를 대체할 수 없다"고 말한 셈입니다. 마이크 슈스터 구글 번역 최고 담당자의 '고백'도 이러한 인식에서 출발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AWS 서밋 현장에서 만난 전문 통번역가의 말에도 불구하고, 마이크 슈스터 구글 번역 최고 담당자의 고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심쩍은 대목이 있습니다. 먼저 전문 통번역가는 아무래도 직업적 특성에 따른 편파적인 입장이 강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저에게 '인공지능이 기자를 대체할 것'이라 말한다면, 쉽게 동의할 수 있을까요? 약간 거리를 두고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이크 슈스터의 고백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이야 '약' 인공지능 시대기 때문에 기술이 통번역 단계에서 위력적인 퍼포먼스를 보이기 어렵겠지만, 인공 신경망 기술을 나날이 발전하고 있으며 이제는 인공지능이 소설까지 쓰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인공지능 기술이 날로 발전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오픈AI의 GPT-2는 약간의 콘텐츠가 있으면 순식간에 이와 관련된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내며 소설은 물론 과제, 심지어 신문기사도 단숨에 써내려갈 수 있습니다. 창작자의 고민을 덜어주는 인공지능이지만, 해당 인공지능의 API가 공개라도 될 경우 소위 가짜뉴스 공장이 설립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는 수준입니다. 오픈AI는 이를 우려해 GPT-2의 API를 공개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또 인공지능 사진 사이트인 Thispersondoesnotexist(이사람은존재하지않는다)은 GAN(Style GAN, 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 기술을 활용해 가짜 이미지를 만드는 쪽과 이를 검증하는 쪽이 연속적으로 데이터를 제출, 검증하며 현실에 없는 사람의 이미지를 만드는 수준까지 이르렀습니다.

▲ 가짜 사람 이미지. 출처=갈무리

결국 아직 먼 미래의 일이지만, 바벨탑은 건설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이야 기술은 언어의 미묘함을 이해하지 못하며, 당분간은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수준의 통번역만 가능하겠으나 언젠가는 '강' 인공지능의 시대가 오기 때문입니다.

그 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지만 숙제 하나가 남아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인공지능이 기어이 모든 것을 처리할 때 인간은 무엇을 할 것인가' 그 전까지는 샤론 최와 달시 파켓의 시대를 즐기며 숙제를 푸는 것에 집중할 필요가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