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중국 ICT 전문가와 티타임을 하던 중 자연스럽게 중국의 ICT 기술력이 크게 발전한 이유를 두고 가벼운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대체적으로 중국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이에 따른 규제 완화가 큰 동력이 됐다는 말이 나온 가운데, 아이러니하게도 중국 생활 인프라의 열악함도 거론됐습니다.

간편결제가 단적인 사례입니다. 중국은 물론 동남아시아의 경우 사실 신용카드가 크게 힘을 쓰지 못합니다. 아직도 태국 출장 당시 백화점에서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못해 충격에 빠졌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현금문화-신용카드 문화-간편결제 문화'의 전철을 밟았다면, 중화권 나라들은 여기서 신용카드 문화를 뛰어넘어 바로 간편결제와 같은 핀테크로 나아갔기 때문에 ICT 기술 진화 속도가 빨랐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 우버가 큰 힘을 쓰지 못하지만, 주차비만 한 달 1000만원이 넘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우버가 빠르게 발전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상생활 인프라의 열악함은 곧 ICT 기술의 진화를 촉진시킬 수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지핀 원격의료 논란
중국의 경우 최근 원격의료 측면에서 많은 발전을 이뤘습니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로 사실상 전격적인 도입이 이뤄졌다고 보면 됩니다. 미국도 현재 전체 진료 6건 중 1건이 원격의료로 이뤄질 정도로 대중화된 상태입니다.

미국과 중국에서 원격의료가 발전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이 의료에 있어 지나치게 선진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나치게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보험 체계를 갖추고 있는 한국과 달리 미국과 중국은 의료 시스템 복지 자체가 미흡합니다. 괜히 오바마 케어를 두고 논란이 나온 것이 아니죠. 결국 중국과 미국은 의료 시스템의 미비로(정확히는 의료 시스템 복지의 미비로) ICT 기술을 접목한 원격의료가 발전한 셈입니다.

이런 상황은 한국 입장에서 '굳이 원격의료를 해야 하나'는 딜레마에 빠지게 합니다. 방금 언급했듯이 한국의 의료보험, 의료보장 체제를 상당히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바로 코로나19의 등장 때문입니다.

현재 코로나19가 심각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사실상 지역사회감염이 시작됐으며, 정부는 감염단계를 심각으로 격상시켰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이야 말로 원격의료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잘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한국에서 원격의료가 제대로 발전하지 못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언급했듯이 '그럴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의료 시스템이 잘 되어있기 때문'이며, 또 다른 하나는 '원격의료가 의료민영화로 이어져 훌륭한 의료 시스템을 망가트릴것'이라는 비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후자의 문제는 조금 복잡합니다.

보건의료 시민사회단체들이 주축인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와 의료민영화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는 지난해 7월 서울 광화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원격의료는 환자가 아닌 대기업 의료기업업체와 통신대기업, 대형병원의 돈벌이 정책"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들은 원격의료가 결국 의료민영화로 이어져 대기업과 대형병원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할 것이며, 원격의료가 필요해 보이는 산간지방 등에는 공공 응급의료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원격의료가 의료민영화라는 최악의 상황을 끌어낼 여지가 크다는 뜻입니다. 당시 강원도를 헬스케어특구로 지정해 원격의료 시스템 테스트 베드로 삼자는 정부 정책이 발표된 후 나온 주장입니다.

나아가 의료계에서는 원격의료 자체가 한계가 있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아무리 ICT 기술이 좋아져도 원격의료보다는 의사가 환자를 직접 진찰하는 것이 낫다는 뜻입니다.

▲ 미 휴스턴의 병원, 미국의 병원비는 살인적이다. 출처=갈무리

각자의 욕망, 충돌한다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원격의료를 둘러싼 다양한 정책이 나왔으나, 시민단체와 의료계의 반발로 무산된 바 있습니다. 시민단체는 원격의료가 의료민영화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 우려하고, 의료계는 현실성이 없다는 쪽에 무게를 둔 셈입니다. 여기에 '굳이 원격의료를 도입할 필요가 없는 한국의 우수한 의료 시스템'도 시민단체와 의료계의 주장에 힘을 실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광범위한 감염 가능성이 커지는 가운데 면대면 접촉으로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기에는 리스크가 크기 때문입니다. 당장 정부는 24일부터 한시적인 원격의료를 허용했으나 시민단체는 의료민영화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으며 의료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대한의사협회는 성명을 통해 "정부에서 발표한 전화상담과 처방을 전면 거부한다"며 "회원들의 이탈 없는 동참을 부탁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지금이라도 원격의료에 대한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원격의료가 '사악한 의료민영화'로 넘어가지 않을 수준의 대책을 마련하는 한편, 전염병 감염은 물론 편리한 의료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원격의료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합니다. 여기에는 '밥그릇 논란'을 걷어낸 차분한 의학계의 대응도 필요하고, 대기업과 대형병원 중심으로 기술적 진보를 통한 다양한 가능성 타진도 나와야 합니다. 또 묻지마 반대도 걷어내야 합니다.

결국 정부가 해야 할 일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부랴부랴 한시적 원격의료를 허용하면서 '일단 반대만 하느라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의학계'를 자극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원격의료의 기술력으로 어떤 사회적 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지 국민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나아가 공공의료시스템을 더 강하게 구축하면서 ICT 기술로 의료 인프라를 진일보할 수 있는 기회를 모색해야 합니다.

▲ 아마존 에코. 출처=갈무리

이는 사업적 측면에서도 필요합니다. 아마존은 벌써 인공지능 알렉사가 들어간 스마트 스피커 에코의 업그레이드를 실시하는 한편 헬스케어에 집중하면서 약품업계까지 진출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많은 기업들이 헬스케어 시장에 속속 진입하는 가운데, 원격의료는 일종의 시장 확장 마중물이 되어줄 수 있는 충분한 능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굳이 원격의료가 필요없는 시대를 살았으나, 코로나19의 등장으로 다른 시대를 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어떤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는 시대'기 때문입니다. 강력한 기존 의료 시스템이 있다고, 미국과 중국의 열악한 시스템과는 다르기 때문에 원격의료를 원천적으로 배제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시대'입니다. 정부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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