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카이스트 미래경고>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미래전략연구센터 지음, 김영사 펴냄.

이 책은 향후 10년을 ‘한국 경제의 골든타임’으로 규정한다. 올해부터 2030년 까지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질풍노도의 시대가 될 것인데, 이 시기에 닥칠 산업구조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한국 산업이 몰락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과학기술·산업 전문가 50인이 기획·집필한 책의 1부는 중국의 추격, 북핵 문제, 인구감소, 산업구조 재편 등의 위기요인이 어떻게 상호 연결되는지를 설명한다. 2부에서는 디지털 전환 시대 흐름에 맞는 혁신·전환·합의 시스템의 개혁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3부에는 한국의 특성을 고려한 제조업 고도화 전략과 신산업 창출 전략을 담았다. 4부에서는 공동선(善)·공동부(富)라는,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공통 가치를 토대로 사회가 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담았다.

◇ 타다, ‘제도적 준비’ 없는 혁신의 종말

승차공유 서비스 ‘타다’는 한국 모빌리티 혁신을 대표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타다 금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으로써 서비스를 멈춰야 할 위기에 처했다. 제도적 준비가 없는 상황에서 혁신이 기존 업계의 반발과 합법성 논쟁에 부딪히면 어떤 운명을 맞게 되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지금,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앞세운 4차 산업혁명은 이론 단계를 지나 본격적으로 일상에서 구현되고 있다. 디지털 자산의 핵심인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잠재력을 이해하고 사업적 가능성에 주목해야 할 시점이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규제가 혁신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혁신은 필연적으로 파괴를 동반한다. 전기차, 공유숙박 같은 신산업의 등장으로 일자리를 얻는 사람도 있지만 한쪽에선 많은 사람이 대처할 틈 없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기도 한다. 그래서 타다 사례에서 보듯 파괴적 혁신은 반대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문제는 상대를 설득하고,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점이다.

타협이 안 되는 이유는 이념의 양극화, 소득 및 자산의 양극화, 젠더 간·세대 간 갈등이 꼽힌다. 형태는 다양하지만 원인은 공통적이다. ‘성장이냐 분배냐’의 프레임으로 만들어진 제도가 양극화를 심화시켰기 때문이다. 혁신을 통해 얻은 성과의 분배가 불공정하게 이뤄진다는 불신이 팽배하며 이는 상당 부분 사실이기도 하다. 혁신의 성과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에게 기술 발전의 논리로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되며 성장과 분배가 선순환하는 제도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20세기 제도로는 21세기 문제를 풀 수 없다. 업종의 개념과 경계가 바뀌는 디지털 전환 시대에 맞게, 진입장벽으로 작용하는 규제는 철폐하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규제를 만들어야 한다. 규제가 기득권 보호 장치로 이용되지 않도록 하는 ‘소비자 후생 중심’의 규제 개혁이 필요하며, 혁신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경제 생태계 밖으로 밀려나지 않도록 하는 적극적 노동 정책이 요구된다.

◇산업의 ‘전환전략’ 필요하다

시선을 산업 전반으로 확대해 보자.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중공업은 중국 기업들과의 경쟁과 세계적 무역분쟁으로 위기에 내몰려 있다. IT 기술을 바탕으로 한 신산업 경쟁에서도 미국, 일본, 중국 등 경쟁국에 뒤처져 있다. 한국 경제를 이끈 ‘추격형 전략(패스트팔로 모델)’이 시효를 다한 가운데 새로운 성장 동력도 보이지 않는다.

중소 제조기업은 이중 노동시장 문제, 젊은 인재들의 지방기피 현상으로 점차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이는 거제 조선업의 쇠퇴, 군산 GM공장 철수 등의 사례에서 보듯 ‘지방 소멸’이라는 문제를 야기한다. 하지만 제조업은 전체 고용의 80%를 차지할 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쇠락을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앞으로 중소 제조 기업은 비정규직에 기댄 비용 절감 방식으로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사이버물리시스템·사물인터넷·스마트팩토리 등의 도입으로 공장을 스마트화하는 혁신에 과감히 도전해야 한다. 이를 통해 고급 엔지니어의 유출을 막고 여성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산업도시 기업들의 첫 번째 과제다.

정부는 인접한 산업도시들을 하나의 클러스터로 엮는 ‘초광역권 구상’을 추진하고, 근로자의 ‘학습-노동-재진입’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상품을 빠르게, 잘 만들면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생산성 향상’이 중요한 경쟁력이었다. 그러나 수요보다 공급이 많은 오늘날에는 제품을 잘 만드는 것보다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데이터를 활용해 고객의 필요를 정교하게 예측하고 이를 토대로 고객 맞춤형 제품·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경쟁력이다.

한국형 신산업 전략으로 두 가지를 제안한다. 하나는 패스트팔로 전략을 지칭하는 ‘카피캣’ 모델에서 벗어나 ‘카피타이거’ 모델을 추구하라는 것이다. 카피타이거는 다른 기업의 모델을 모방해 자신의 사업 모델을 접목시키는 전략이다. 또 다른 하나는 ‘흥(興) 산업’으로서 게임·방송·음악 콘텐츠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제품 소비와 연결시키는 것을 말한다.

◇산업전략에 공동선·공동부 정신 담아라

산업 전략을 논할 때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산업 발전이 우리의 궁극적 목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는 재원을 얻는 데만 몰두했을 뿐 재원을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는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 산업과 제도는 모두의 공유지다. 사익만을 추구하다 모두가 파국을 맞는 ‘공유지의 비극’이 일어나는 일이 없도록 모두를 위한 가치를 고민할 때이다. 바로 공동선(common good)과 공동부(common wealth)이다.

공동선은 사회구성원 모두가 실질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의 정치적 기본 자원이고, 공동부는 공동체 모두의 이익을 고려하는 경제적 기본 자원이다. 이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는 모두의 합의가 있을 때에야 비로소 개인과 공동체의 상충되는 이해관계가 조화를 이루어나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