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해지며 글로벌 경제에 경고등이 들어왔다.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15일(현지시간) 긴급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어 연방기금금리(FFR)를 1.00~1.25%에서 0.00~0.25%로 1.00%포인트 인하하는 파격적인 조치에 들어갔고 적극적인 양적완화에 돌입했다. 이 외에도 각 국은 사실상 총력전을 벌이며 경제 하강 국면에 대응하고 있다.

한국도 현재 국회를 중심으로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논의되는 등 속도전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능력을 자랑한 방역 시스템과는 별도로, 경제적 측면의 행보는 사실상 낙제점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협동과 중앙 권력의 균형 및 현실감각이 필요한 순간이다.

▲ 삼전도의 굴욕을 새긴 비. 출처=갈무리

두 '난'의 차이
500년 전 이 땅으로 돌아가 보자.

조선사(史)에서 임진왜란과 정묘호란이 가지는 의미는 상당히 크다. 특히 외세의 침략에 따른 국난의 극복이라는 점에서 두 '난'이 시사하는 점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커다란 영감을 준다.

먼저 임진왜란.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허황된 세계정복 야망과, 전국시대가 종결된 후 전쟁터라는 직장을 잃어버린 무사들의 불만을 돌리기 위해 조선을 침공한다.

전쟁 초기 왜군은 파죽지세로 한양까지 정복하며 승승장구한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의 눈부신 전과로 바닷길이 막히고 명나라의 참전으로 육지에서도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전의를 상실하게 된다. 

여기에 결정타를 날린 것이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들이다. 당시 조선도 서인과 동인으로 갈라진 당파싸움이 심각해 국론이 분열되는 등 어려움이 많았으나 이들은 초유의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협력에 나섰고 이에 호응한 민초들의 의병전쟁으로 왜군은 결국 철수하고 만다. 조선에 있어 그 피해는 실로 막심했으나 왜군의 목표가 조선의 정복이고 이러한 목표가 달성되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임진왜란, 즉 임진전쟁의 승자는 조선으로 볼 수 있다.

의미심장한 대목은 임진전쟁이 끝나고 불과 몇 십년후에 벌어진 정묘호란의 전개다. 당시도 외세에 의한 침입이라는 점은 임진전쟁과 비슷했으나 결론적으로 조선은 패배하고 인조는 삼전도의 굴욕을 겪게 된다.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명나라의 쇠퇴와 조선군의 전략적 실패 등 여러가지 요인이 있으나, 정묘호란의 패배를 부른 결정적 요인은 바로 민초들의 외면이다. 실제로 임진전쟁 당시 민초들은 자발적으로 의병을 일으켜 힘차게 싸웠으나 정묘호란 당시에는 그런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인조는 남한산성에 틀어 박히며 각지에서 몰려드는 근왕군에 큰 기대를 걸었으나, 이들은 적의 별동군에 일격을 당한 후 아예 뿔뿔이 흩어져 왕을 버리고 말았다. 의병같은 건 아예 없었다.

임진전쟁과 달리 정묘호란, 병자호란에는 왜 민초들이 들고 일어서지 않았을까. 임진전쟁 당시 조선 조정은 동인과 서인으로 구분되었고 서로 대립했으나 초유의 국난 과정에서는 힘을 합쳤다. 이러한 모습을 본 민초들도 각 지역의 유생들과 의기투합해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임진전쟁이 끝나자 당파싸움은 더욱 심해졌고, 이 과정에서 왕인 선조가 도망만 치던 자기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명나라의 구원군을 떠받들고 의병들을 처단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국난을 극복하기 위한 민관합동작전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망상이다.

결국 조선사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두 '난'을 살펴보면 하나의 답을 얻을 수 있다. 위기의 순간을 돌파하는 저력은 협동에서 나오며, 협동을 끌어내는 힘은 적재적소에 필요한 중앙 권력의 균형감각과 현실감각이다.

코로나19...방역은 최고, 경제는 낙제
코로나19 사태가 세계적으로 기승을 부리며 각 국의 대응 전략이 속속 나오는 가운데,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를 반면교사할 필요가 있다.

현재 대선 정국이 진행되는 가운데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 때 우크라이나 게이트 등을 이유로 야당인 민주당의 탄핵 위협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경제적 조치에 있어서는, 여야가 따로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83억달러의 코로나19 긴급 예산안에 서명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 의회에 25억달러를 코로나19 긴급 예산안으로 편성해달라 요청했으나, 한 때 탄핵 정국을 이끌었던 민주당이 절대 다수인 미 하원은 물론 미 상원은 오히려 기존 예산안과 비교해 3배나 많은 83억달러로 증액해 지난 4일(현지시간)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25억을 요청했는데 83억을 얻었다. 받겠다"며 "우리는 잘하고 있다"며 만족감을 감추지 않았다.

미 하원은 14일(현지시간) 코로나19 대응 지원 패지키 법안도 찬성 363명, 반대 40명이라는 압도적인 동의로 통과시켰다. 코로나19 무료 검사와 실업수당 확대 등 기본적인 경기부양책이 통과되는 장면은 말 그대로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13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가운데 대규모 경기부양책 발표에 미온적이던 민주당도 코로나19 사태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아 일치단결한 모습을 보인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 탄핵을 이끌었던 낸시 펠로시 민주당 의장은 "정부와 미해결 난제를 해결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우리는 위기를 극복할 것이고 이전보다 더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낸시 펠로시 민주당 의장은 지난 2월 국정연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본인의 악수를 거부하자 바로 뒤에서 연설문을 찢으며 극한대립을 거듭했으나, 코로나19에 대비하기 위한 대비에 있어서는 초당적인 협력을 선언, 위기 극복을 위한 마중물을 자임한 셈이다.

반면 국내의 사정은 처참하다. 최고의 방역 시스템을 자랑하며 질병관리본부는 온 세계의 찬사를 받고 있으나, 경제 정책적 측면에서는 뚜렷한 행보가 보이지 않는다.

국회에서 추경이 논의되고 있으나 여당 일각은 물론 야당에서도 4.15 총선을 의식한 정치적 행보만 나오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과정에서 추경 증액을 두고 당정이 한 때 대립하는 모양새도 연출됐고, 추경 자체에 대한 논의도 이런저런 문제에 발목이 잡혀 운신의 폭이 좁아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장은 16일 국회에서 열린 회의에서 "외환위기보다 지금이 훨씬 더 아플 수 있다. 숨이 넘어갈 것 같은 현장을 국회가 외면하지 말길 바란다"면서 "추경을 17일까지 처리해달라"고 요청했으나 현 상황에서 추경이 처리되어도 정치적 잡음이 일어날 것은 뻔하다는 말이 나온다.

추경을 앞두고 여야는 물론 당정의 불협화음이 나오는 가운데 중앙 권력, 즉 행정부의 균형감각과 현실감각도 낙제다. 정당을 중심으로 국론이 합쳐지지 않는다면 행정부의 명확하고 빠른 정책적 결단이 나와야 하지만 아직은 아쉬운 행보만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추경 증액, 재난기본소득 등 다양한 정책적 상상력을 펼치지 못하는 점은 차치해도 한국은행의 지지부진함에는 큰 비판이 나오고 있다.

미 연준이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제로금리를 선언한 가운데 조만간 한은도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더 적극적인 액션플랜에는 선을 긋고 있다는 평가다. 연준의 금리인하가 국내 시장에서 위력을 발휘하려면 한은도 빠른 정책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현 상황에서 한은은 요지부동이다.

국난 극복에는 '적과 동지' 없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한 한국은 임진전쟁이 끝나고 병자호란을 앞 둔 조선의 상황과 닮았다. 책임있는 위정자들은 정치적인 이유로 국가의 미래를 저당잡아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중앙 권력은 이런저런 이유로 부화뇌동만 하고 있다.

그러나 국난 극복에는 적과 동지가 없고, 중앙 권력의 비현실적인 균형감각은 최악의 '독'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신음하고 있는 민초들이 힘을 얻고 희망을 품어 국난 극복에 나설 명분을 만들어줘야 한다. 지금 이대로 간다면, 대한민국 모두가 대군을 이끌고 남한산성 코 앞으로 쳐들어온 '코로나19 경제 쇼크 황제'를 맞아 삼두고배(세번 절하고 아홉번 고개를 조아리는 군신의 예)할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