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강민성 기자] 석유화학 업계가 공급과잉 이슈와 글로벌 수요부진 이중고로 수출 전망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돼 원유를 포함해 주요 원재료 가격 변동성이 커지고 있어 올해 기업들의 매출 전망도 어두워지고 있다.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은 원유와 납사(나프타)를 통해 만들어지며 소비재와 산업재 등 제조업의 기초제품으로 사용되는 만큼 경기변동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2016년까지 호황기를 유지해 온 석유·화학업계는 글로벌 경기둔화와 공급과잉 이슈로 2018년부터 실적이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중국은 납사크래커(NCC) 증설에 나서고 있으며 북미 지역도 에탄크래커(ECC)의 가동률을 높이기 위해 대규모 준공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중국이 수년간 증설을 지속하면서 화학제품의 자급률을 높여가고 있어 과잉공급 이슈가 장기화될 조짐이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사태에 따른 충격도 화학업계의 불확실성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와 함께 사우디와 러시아간 원유전쟁으로 국제유가 변동폭도 요동치고 있어 석유·화학업계의 전망도 어두워지고 있다는 평가다.

원유가격이 하락하면 제품가격 인하로 이어질 수 있어 급격한 가격 변동은 석유화학업계 입장에서도 좋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미 지난해 석유화학기업들은 미중 무역분쟁에 따른 시황 악화, NCC가동 증가 등 공급과잉과 수요부진 영향으로 수출 및 내수 실적이 크게 떨어졌다.

◇ 석유화학 3년간 실적 하락세 뚜렷… 올해는 더 위기

석유화학업계의 영업실적은 2016~2017년까지 점차 오르는 모습을 보였다가 2018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꺾였다. 최대 수출국인 중국의 자급률이 높아지고 미국과 중국간 무역분쟁으로 지난해 시황이 크게 악화된 데다 유가 변동성도 커지고 있어서다. 국내 석유화학 제품의 수출은 중국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다. 석유·화학협회에 따르면 국내 석유·화학제품 수출액 중 중국 비중은 50% 이상으로 높지만 중국시장의 수요둔화, 자급도의 증가로 업계의 실적이 부진하다. 특히 최종 제품인 합성수지, 합성고무는 수출증가세가 둔화됐고 합성원료는 2010년 이후 수출감소세가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 빅데이터 전문 딥서치(DeepSearch)에 따르면 국내 주요 5대 석유·화학기업 가운데 LG화학, 롯데케미칼, SK이노베이션, 한화솔루션은 지난 3년간 영업이익이 50% 이상 축소된 것으로 확인됐다.

LG화학만 해도 2017년 영업이익이 2조9284억원으로 11%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지만 점차 실적이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LG화학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1조원 아래로 떨어졌다.

지난해 LG화학의 영업이익은 8956억원으로 2017년 대비 69.4% 급감했고, 영업이익률도 3%대로 떨어졌다. 이 회사는 또 지난해 전체 매출액이 전년 대비 1.6% 증가했지만 영업실적과 당기순이익은 급감했다. 특히 핵심사업인 석유화학 부문의 영업이익이 10%대 아래로 떨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2017년과 2018년 석유화학 부문 영업이익은 각각 16.4%, 12%로 두 자릿수를 유지했지만 지난해는 9.1%로 한 자릿수를 기록하면서 전체적인 실적이 감소했다. 지난해 LG화학은 아크릴로나이트릴부타디엔스티렌(ABS) 등 일부 제품 마진 반등에도 전반적으로 수요 둔화와 역내 신증설 부담이 가중됐다.

2018년까지는 전지부문에서 실적이 하락해도 석유화학 부문에서 실적을 떠받쳐 줬지만 올해는 석유화학 부문 실적도 하락해 전체 영업실적이 위축된 모습이다. 지난해 말 기준 LG화학의 석유화학 부문 영업이익은 1조4178억원으로 2017년 26조830억원 대비 47% 감소했다. 석유·화학 부문의 매출도 15조5000억원으로 2017년 16조4000억원 대비 5.4% 줄었다. 올해 LG화학은 1분기부터 글로벌 신규 생산능력(Capa) 확대에 따른 가동률 증가, 불확실성 확대로 화학부문보다 전지부문의 성장을 기대했으나 이마저도 어려워지고 있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19가 유럽까지 빠르게 퍼져나가면서 해외 현지법인 가동에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테슬라, 포드, 크라이슬러, GM(제너럴모터스)등 미국 완성차 업체에 이어 벤츠, 폴크스바겐 등 유럽 완성차까지 최근 가동이 제한되고 있어 위기 국면이다.

SK이노베이션도 글로벌 경기침체에 따른 수요 축소로 석유·화학부문의 실적이 전반적으로 부진하다.

지난해 이 회사는 올레핀, 아로마틱 제품 스프레드가 낮아졌고 신규 설비 가동에 따른 공급 증가로 영업이익이 감소했다. SK이노베이션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조2692억원으로 2017년 3조2217억원 대비 60.6% 축소됐다. 전체 영업이익률은 3%로 3년 전인 2017년 7% 대비 4% 포인트 하락했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영업이익률은 주요 석유·화학업체들 가운데서도 유독 낮은 수치다. 올해 1분기 SK이노베이션의 석유사업은 고도화 설비인 중질유분해시설(RFCC)의 정기보수로 기대보다 실적이 부진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화학부문의 영업이익은 PE·PP, PX, 벤젠 등 제품의 마진 부진과 인천석유의 정기보수 영향으로 실적 하락이 예상된다. 지난해 SK이노베이션은 실적 하락 영향으로 당기순이익도 1년새 96.1% 급감한 657억원을 기록했다. 중간배당을 매년 주당 1600원씩 지급하던 SK이노베이션은 대표적인 배당주로 꼽힐 만큼 주주환원이 높은 기업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급감하면서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간 1주당 6400원 지급된 기말 배당금은 올해 상반기 1400원까지 감소했다. 지난해 SK이노베이션의 1주당 배당금은 3000원으로 2018년 대비 62.5% 급감했다.

LG화학, SK이노베이션에 이어 롯데케미칼도 지난해 영업이익이 2017년 대비 62.2% 축소됐다. 지난해 롯데케미칼의 영업이익은 1조1072억원을 기록했고, 영업이익률은 7%대로 한 자릿수로 낮아졌다. 롯데케미칼의 2017년 영업이익률은 18%로 화학업계서 가장 높았지만 매년 5%포인트 이상 급락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의 지난해 매출액은 15조1234억원으로 2018년 16조0730억원 대비 5.9% 감소했다. 같은 기간 순이익은 7566억원으로 2018년 1조6419억원 대비 95% 급감하는 등 실적이 부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와 함께 롯데케미칼은 올해 3월초에 발생한 대산공장 화재사고로 생산에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자세한 피해상황은 조사중이지만 나프타분해공정 중 압축공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공장 가동까지 6개월이상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산 납사분해 공정에서 생산되는 에틸렌의 생산능력은 연간 110만 톤으로 전체 생산능력의 26.7% 수준에 달한다. 업계에 따르면 대산공장의 하부공장인 다운스트림의 경우 외부 조달을 통해 정상적으로 가동중에 있으며 에틸렌과 프로필렌 유도품도 정상가동 하고 있다. 백영찬 KB증권 애널리스트는 롯데케미칼에 대해 “가능한 제품 범위내에서 지속 생산을 통해 고정비 부담을 최소화하고 있다”면서 “3월 손실금액은 1분기 실적에 전액 반영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현재 롯데케미칼은 인수합병(M&A) 전담팀을 구성해 인수 대상기업을 탐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가 변동성이 높은 석유화학부문에 실적이 위축될 것으로 판단, 성장동력 사업을 추진 중인 것으로 보인다. 국내 석유화학 주요 기업들도 중국 자급률 상승과 전방산업 위축으로 실적이 하락하면서 고부가 스페셜티 제품의 포트폴리오 확대를 꾀하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이 금호석유화학이다. 금호석유화학은 의료용 장갑의 원재료인 NB라텍스 판매 증가로 타 화학기업과는 반대로 실적 전망이 양호하다.

다만 금호석유화학의 지난해 실적(영업이익)은 3677억원으로, 2018년 5546억원과 비교하면 1년새 33%나 감소했다. 지난해 말 수요약세와 가격 경쟁 심화로 특수고무 수익성이 축소됐고 원료(SM/BD) 가격 하락으로 합성수지 제품에도 수익성이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솔루션도 화학부문의 시황 악화로 전체 실적이 하락했다.

지난해 결산 기준 한화솔루션의 영업이익은 3783억원으로 2017년(7564억원) 대비 50% 감소했다. 한화솔루션의 영업이익률은 2017년 8% 수준을 유지했지만 2018년부터 2년 연속 4%대로 성장이 정체됐다.

한화솔루션은 올초 실적 발표에서 “케미칼 부문 비수기 지속과 신종코로나바이러스에 따른 수요위축 영향으로 화학부분의 1분기 실적 개선폭은 제한적일 전망”이라고 밝혔다. 

한편 석유·화학업계의 성장 정체는 글로벌 수급 불안정에 따른 것으로 해당 이슈가 장기화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2017년까지 저유가 환경으로 마진이 양호했으나 2018년 하반기부터 유가상승, 수요둔화 등으로 제품 마진이 감소하고 있는 점이 뚜렷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정홍석 KDB미래전략 연구소 산업기술 리서치센터 선임연구원은 "석유화학 제품 최대 수입국인 중국의 경기가 주요국 보호무역기조 등으로 인해 둔화될 것으로 예상되며 한국 수출역시 감소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전망했다. 중국의 자급률이 매년 상승하고 있는 점과 중국 경제성장률 하락이 향후에도 계속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경제전망에서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둔화될 것으로 예측했고, 2018년 전망보다 하향 조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5.82%로 지난해 6.14% 대비 0.32%포인트 하락했다.

◇ 국제 신평사, 국내 석유화학 실적 주목… 이유는?

국제신평사들도 시황 악화로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의 신용도에 주목하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올해 2월 SK이노베이션과 SK종합화학의 등급전망을 부정적으로 하향한데 이어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도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내렸다. S&P는 SK이노베이션에 대해 “정유·석유화학 시장의 높은 불확실성에도 올해 투자규모를 확대하고 전기차 배터리 설비증설에 나서면서 앞으로 2년 동안 차입금 비율이 높아질 것"이라며 등급 전망 하향조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S&P는 SK이노베이션의 조정 차입금이 올해 10조4000억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또한 S&P는 "험난한 영업환경으로 실적회복도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올해 실적이 다소 반등하겠지만 이는 기저효과로 인한 측면이 크다"고 설명했다.

LG화학은 지난해 말 무디스로부터 기업 신용등급이 A3을 유지한 채 신용등급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조정했고 올해 2월에는 A3에서 Baa1으로 하향조정했다. 무디스는 “석유화학 스프레드(제품과 원료의 가격 차)의 지속적인 약세와 높은 수준의 설비투자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재무 레버리지 비율이 향후 1∼2년간 의미있게 개선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판단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올 3월 무디스는 한화그룹 화학 계열사인 한화토탈의 신용도에도 ‘부정적’ 전망을 붙였다. 등급 전망이 부정적이면 1~2년 내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 한화토탈의 장기신용등급은 Baa1 수준이다. 무디스는 한화토탈에 대해 “장기적인 화학 업황 침체와 회사의 부채 수준 증가로 회사의 재무구조가 악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무디스 측은 한화토탈 수익성 전망에 대해 “올해 수익성이 다소 개선된다 해도 이익 규모는 2016~2018년 한화토탈이 달성한 기록적인 수준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며”이는 전방산업의 수요감소와 과잉공급이 맞물린 화학 업계의 상황 때문“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