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진욱 부국장] 코로나19가 일상을 바꾼 요즘이다. 강력한 감염공포로 사람이 사람을 맘껏 만나지 못하는 ‘웃픈’ 현상이 지구촌 곳곳에서 연출되고 있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가 ‘코로나 앓이’로 끙끙대는 사이 각국의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의 흐름도 막혔다. 특히 경제가 심각하다. 들쑥날쑥한 증시와 불안한 유가, 기업들의 비상경영 등 세계 각지에선 동시다발적인 신음소리가 들린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 힘들다는 볼멘소리가 엄살이 아니다.

코로나 사태 초반 확진자 폭증으로 ‘혐오국가’ 리스트에 올랐던 대한민국은 이후 강력한 방역시스템 가동과 전 국민이 참여한 감염억제 캠페인이 효과를 발휘하면서 상황반전에 성공했다. 한국의 의료시스템과 바이오기업은 세계가 벤치마킹하는 모범 사례로까지 급부상했다.

‘확진자 감소’라는 대 전제를 목표로 삼고 있는 지금, 이제 정부가 챙겨야 할 것은 경제다. 문재인 정부도 위기를 체감했는지 세 차례에 걸쳐 비상경제회의를 열고 기업과 민생경제 안정을 위해 100조원의 예산을 풀기로 했다. 최근에는 ‘소득 하위 70% 가구에 4인 기준 100만원 지급’을 골자로 한 긴급재난지원금을 마련하면서 국민적 관심을 샀다.

하지만 100조원의 자금이 개별기업과 소상공인 등에 어떤 방식으로, 언제쯤 혜택이 돌아갈지 구체화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상품권(쿠폰) 방식의 재난 위로금 투입만 해도 민간경제와 국가경제를 되살리는 단초가 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무리다. 당장 급한 불을 꺼야겠다는 긴급처방보다는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근본적인 경제활성화를 이끄는 ‘불쏘시개 정책’이 필요하다.

지금 단계에서 가장 필요한 볼쏘시개는 일자리 정책이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진행되면서 소비 부진이 뚜렷해졌다. 온라인 쇼핑몰, 물류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하고는 사람과 상품의 이동이 단절되면서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타격받고 있다. 일종의 ‘돈맥경화’ 상태에 빠진 형국이다.

매출이 발생해야 수익이 남고 이득이 생겨야 사람을 쓰는 게 기업경영의 원리인데, 코로나 여파로 생존 위기감이 엄습하자 결국 기업들은 ‘인건비 절감’ 카드를 택했다.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항공·여행·유통 업계는 물론이고 정유·자동차·조선·철강 등 제조업까지 구조조정에 나섰다.

이스타항공은 전체 직원(1680여명)의 절반에 가까운 750여명을 퇴사시키기로 했다. 2월에는 직원들에게 총급여의 40%만 지급하더니 3월에는 아예 급여를 주지 못했다. 항공업계 1위인 대한항공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2년 차 이상의 객실승무원을 대상으로 단기 희망휴직을 받은 데 이어 최근 단기 휴직 신청 대상범위를 모든 승무원으로 확대했다.

대기업군도 인원감축 행렬에 동참했다. 삼성그룹의 삼성중공업은 상시 희망퇴직을 받고 있으며 현대차그룹의 현대로템도 희망퇴직을 진행 중이다. LG그룹의 LG디스플레이는 생산직·사무직을 대상으로 퇴직희망서를 받았다.

평균 연봉 1억3700만원, 근속연수 16년을 자랑하며 '신(神)의 직장’으로 불리던 에쓰오일도 창사 이래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검토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원유와 석유가격이 동시 추락하면서 정제마진 감소와 재고평가 손실을 버티기 힘든 탓이다.

코로나발 고용한파 조짐은 통계자료에서도 확인된다. 통계청이 발표한 2월 고용동향 지수에서 일시휴직자가 1년 전보다 14만 명 이상 급증했다. 고용노동청 집계 자료에서도 올 들어 3월 19일까지 실업급여 신청자가 10만3000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30% 이상 급증했다. 

코로나발 실업이 심각한 것은 비단 우리 만의 일이 아니다. 미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코로나발 경제 위기로 2분기 중 미국내 4700만 명이 실업자로 전락한다고 예측했다. 한국 인구에 육박하는 미국인이 3개월 내로 실직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 경우 미국의 실업률은 32.1%까지 치솟게 된다.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실업자가 발생한 1933년의 실업률(24.9%)을 뛰어넘는 숫자다.

‘경제 부국’ 북유럽에서도 코로나19로 인해 일시해고, 무급휴가 등 일자리를 잃은 시민이 73만5000명에 이른다는 블룸버그통신의 분석이 나왔다. 블룸버그는 최근 노르웨이·핀란드·스웨덴·덴마크·아이슬란드 당국 자료를 토대로 자체 집계한 결과, 전체 2700만 인구의 북유럽 지역에서 63만 명의 근로자가 최근 몇주 일시 해고되거나 무급휴가를 갔으며 10만5000명 가량은 해고됐다고 밝혔다.

코로나19의 진원지가 된 중국과 관련해서는 일본계 금융회사 노무라증권이 보고서를 통해 “중국의 수출관련 기업 노동자 1800만 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코로나발 경제위기’ 국면에서 실업의 파장은 1930년대 세계 대공황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 강력하다. 지금 일자리를 잃으면 새 일자리 찾기란 꿈도 꾸지 못한다. 개인적 실업은 가정경제의 파탄으로 이어지고 소비가 돌지않아 기업이 힘들어지면 결국 국가경제가 흔들린다. 

정부가 두 차례 비상경제회의를 통해 언급한 ‘100조원’은 명목상 긴급 기업 구호자금이다. 기업살리는데 써야 하는 국민혈세인 만큼 자금 사용과정에서 고용 안정화를 절대 간과해서는 안된다. 현행 1000억원 규모인 고용유지 지원 예산을 5000억원으로 늘리겠다고 한 정부의 방침에도 전적으로 공감하지만 현실적인 수준의 대책이 될 수 있을지는 '팩트체크'가 필수다. 

미국과 유럽의 상반된 정부 대책이 낳은 결과만 봐도 그렇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가 일자리 정책으로 실업수당의 기간과 범위를 '확대'하는 바람에 고용주가 맘놓고(?) 직원들을 해고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반면 유럽은 사업장 폐쇄 등의 조치에 각국 정부가 해당 근로자의 임금을 보전해 주는 방식으로 '일자리 지켜주기'를 실행하고 있다.      

한국의 일자리 정책도 '집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상황을 ‘일을 하지 말라’는 결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