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코로나19가 심상치않은 흐름을 보이는 가운데 각 국은 전사적인 태세로 전환, 방역작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집단감염 우려가 커지며 공공장소가 폐쇄되는 한편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대형행사가 속속 금지되고 있다.

주요 스포츠 이벤트도 줄줄이 멈춰선 가운데, 그럼에도 자국 프로 축구리그를 진행하고 있는 국가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바로 중앙아시아의 타지키스탄과 동유럽의 벨라루스, 북중미의 니카라과, 아프리카의 부룬디다.

이들 나라에는 코로나19가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다. 이들 나라는 대통령 재임 기간이 22년인 장기독재국가며, 독재자의 의지에 따라 프로 축구리그가 강행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AP는 이러한 사실을 보도하며 코로나19로 민주적 국가와 독재적 국가의 차이가 선명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 이후로 펼쳐질 정치적 변화의 중요한 단서다.

위기는 힘의 응축을 끌어낸다

유명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 예루살렘히브리대학 교수는 지난 3월 2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즈 기고를 통해 코로나19로 인한 정치변화의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그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 경우 정부는 불확실성의 적과 싸우기 위해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국민의 희생을 강요하게 되고, 국민은 이에 복종하며 스스로의 자유를 포기하는 수순을 밟을 것이라 봤다. 

이미 관련 기술, 즉 도구는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유발 하라리 교수는 “현대사회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기술을 통해 모든 사람들을 24시간 감시하는 사회"라면서 "중국의 경우 시민들의 스마트폰을 감시하고 다수의 CCTV를 동원하는 한편 의심환자들의 체온을 측정하고 건강상황을 보고하도록 강제한 바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위기상황이 끝나도 계속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는 “시민에 대한 생체감시(국가의 빅브라더화)와 같은 기술이 긴급한 상황에만 일시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면서 모국인 이스라엘이 독립전쟁 당시 취했던 임시적인 조치들이 최근까지 이어졌던 사례를 설명했다. 즉 코로나19로 인해 정부가 시민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완벽한 빅브라더로 변신할 경우 당장의 위기는 극복할 수 있겠지만, 한 번 빅브라더가 된 국가 권력은 지속적으로 시민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일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다.

이러한 시각은 지난 1일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의 인터뷰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중국과 같은 나라들은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사람들의 위치정보나 건강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이러한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보는가”라는 질문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며, 엄청난 위험”이라면서 “(중국의 기조를 따라) 대중에 대한 감시를 거부해온 나라들도 그와 관련한 도구를 배치하고 설치하는 게 합법적, 정상적인 상황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이러한 감시가 '사람의 몸 밖'(over the skin)에 머물렀으나 이제 '인체 내부'(under the skin)를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더 극적인 변화”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임시조치는 긴급상황을 오래 지속시키려는 나쁜 습관을 갖고 있다”면서 “신뢰를 잃어가는 사회일수록 이러한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정부는 국민에 대한 감시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며, 이는 위기가 끝나도 일상적인 시스템으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예언이다.

유발 하라리 교수의 예언은 적중할 것인가? 이 판단을 위해서는 시간을 두고 코로나19가 종식된 후의 시대를 지켜봐야 하지만, 현 상황에서도 최소한의 단서는 찾아볼 수 있다. 지금 이 시간 각 국에서 힘의 응축이 확실하게 벌어진다면, 이를 원동력으로 삼은 정부가 유발 하라리의 예언을 현실로 만들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각 국 지도자에 대한 지지도를 파악한 결과, 유발 하라리 교수의 예언을 사실로 만들어 줄 힘의 응축은 이미 벌어지고 있다. 실제로 코로나19가 강타한 가운데 최근 올림픽 연기 및 방역대책 소홀책임에 시달리고 있는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지지율이 크게 오르고 있다. 당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경우 올해 초 41%의 지지율을 기록했으나 3월 24일에는 40% 중반대의 지지율을 기록했으며 앙겔라 마르켈 독일 총리도 올해 초 39%의 지지에 머물렀으나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 현재 그의 지지도는 50%에 육박하고 있다.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는 올해 초 48%의 지지율을 기록했으나 현재 그의 지지도는 60%를 넘기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거듭하며 올해 최고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각 정부가 코로나19 방역에 효과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자국민의 믿음이 지지율 상승의 가장 큰 원인이겠으나, 이러한 힘의 응축은 곧 정부의 권력을 강화하게 만들어 ‘정부가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개인의 자유를 빼앗을 수 있다’는 당위성을 끌어낸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연장선에서 정부의 '액션'이 위기 후에도 고착화되면 유발 하라리 교수의 예언은 현실이 된다. 빅브라더의 탄생이다.

피오누알라 니 알른 유엔(UN) 테러대응·인권보호 특별보고관은 최근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을 통해 “코로나19로 인한 정부의 억압적인 정책이 이어진다면, 전염병 팬데믹이 끝난 뒤 또 다른 ‘권위주의 팬데믹’이 올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 역시 징후는 시작됐다.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는 최근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준계엄령을 내려 사실상 독재의 길을 열었고,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봉쇄령을 내린 케냐와 우간다에서는 길을 가던 시민이 경찰의 실탄을 맞아 사망하는 사건도 벌어졌다.

어디를 택해야 하는가

미국 외교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4일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를 통해 코로나19 이후의 시대를 전망했다. 그는 “코로나19로 세계의 질서는 변할 것”이라면서 “미국은 바이러스로부터 미국인을 보호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계획하는 시급한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고 밝혔다.

그가 주목한 새로운 시대는 자유 세계의 질서가 위협받는 시대다. 헨리 키신저 전 장관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막판 총공세인 벌지 대전투를 말하며 “코로나19는 무자비하고 파괴적인 공격의 느낌이 있다”며 “효과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을 가진 정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발 하라리 교수가 코로나19로 중앙집중형 정부의 등장, 빅브라더의 일상화 시대가 열릴 것이라 예상한 가운데 헨리 키신저 전 장관은 그 파괴적 선택의 길목에서 ‘예측할 수 없는 총공세’를 벌이는 코로나19에 대해 장기적 관점의 대응을 촉구한 셈이다.

세계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유발 하라리 교수는 정부의 빅브라더 기조가 강해질 가능성이 높지만, 이런 순간일수록 글로벌 공조를 통한 연대의 힘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큰 틀에서 헨리 키신저 전 장관도 비슷한 주장을 펼치며 이른바 장기전을 대비해야 한다고 보는 셈이다.

“세계화의 시대는 끝났다”

코로나19로 정부의 빅브라더 경향이 강해질 수 있고, 이미 곳곳에서 징후가 감지되고 있다. 그러나 세계는 이러한 흐름에 분명히 반대해야 하며, 각자에 대한 신뢰를 무기로 삼아 글로벌 공조를 위한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 여기까지가 대다수의 석학들이 말하는 코로나19 이후의 시대다.

문제는, 석학들이 말하는 코로나19 이후의 시대가 지나치게 ‘깨어있는 신념’으로만 무장되어 있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코로나19 이후의 정치는, 우리의 시대는 석학들이 말하는 희망보다 석학들이 지목하는 우울한 현재의 연장선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코로나19로 세계화 시대에 대한 장밋빛 희망이 무너지고 있다.

BBC는 지난 3일 방송을 통해 코로나19 팬데믹의 원인이 세계화며, 이로 인해 세계화가 무너질 것이라는 다소 이색적인 주장을 펼쳤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하나가 되어가는 세계화 패러다임이 최악의 전염성을 가진 코로나19로 인해 ‘모두의 파멸’을 끌어내고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방송에 출연한 베아타 야보르치크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수석 경제학자는 “2003년 사스와 2019년 코로나19는 모두 중국에서 일어났으나 그 파급력은 정확히 4배”라면서 “중국에서 일어나는 일은 전 세계에 그만큼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연결된 세계가 위험하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중국의 야심찬 대외팽창계획인 일대일로(一帶一路, One belt, One road), 그리고 유럽에서 특히 엄청난 피해를 입은 이탈리아의 상황과 더불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일대일로 정책을 펴며 유라시아 대륙을 연결하려 노력했으며, 유럽에서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가 이탈리아다. 그리고 이탈리아는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19의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받았다.

즉 세계화를 위한 각 국의 연결본능이 오히려 전염병 창궐과 같은 피해를 크게 키웠으며, 이는 곧 세계화 패러다임의 종말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이언 골딘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이를 두고 “세계화로 인류의 리스크는 커졌다”면서 “(전염병의 위험이 점점 커지기 때문에 세계화의)가장 큰 취약점이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주장은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벌써부터 유럽의 각 나라들이 서로의 국경을 닫으며 하나된 유럽연합의 기조는 흔들리고 있고, 셍겐조약(유럽 각국이 공통의 출입국 관리 정책을 사용, 국경시스템을 최소화해 국가 간의 통행 제한을 철폐한 국경개방조약)은 무력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끝에는 성곽시대의 회귀만 남았다는 극단적인 주장도 나온다. 제러드 베이커 전 WSJ 편집장은 기고를 통해 “코로나19로 세계화는 허상이 될 수 있다”면서 “각 나라는 생존을 위해 더욱 강력한 폐쇄를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세계화의 흐름에 제동이 걸리는 한편, 각 국가들이 각자도생의 길로 접어든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어떻게 변할까? 우선 트럼프 대통령 시대를 맞이한 미국이 야경국가의 지위를 포기한 상태에서 코로나19로 인한 리더십의 공백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각 나라는 각자도생을 취하며 생존을 위한 싸움에 내몰리며, 세계 리더의 자리를 강력한 중앙집중형 권력으로 무장된 새로운 국가가 차지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바로 중국을 위시한 아시아다. 

실제로 스테판 월트 하버드대 국제관계학 교수는 포린폴리시 기고를 통해 “미국과 유럽은 코로나19 대응에 있어 속도와 질 모두 엉망이었다”면서 “서구의 오만이 코로나19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뒤를 이어 부상하는 쪽은 코로나19 사태 초반부터 강력한 방역 시스템을 가동한 아시아 국가라는 주장이 나온다. 특히 중국은 코로나19 사태를 표면적으로 극복한 뒤 각 국에 마스크를 대량으로 공급하는 등 적극적인 리더의 이미지를 투영시키는 중이다.

다만 중국 및 아시아 모두가 한국과 같은 민주주의 방식+강력한 방역 시스템을 내세운 것이 아니라, 신속하고 강력하며 일치된 동력을 바탕으로 개인의 희생을 감수하는 전략을 가동한 점은 불안요소다. 세계화 시대가 무너지며 자유를 대표하는 서구권이 한 발 뒤로 물러난 상태에서 정부를 중심으로 뭉치는 아시아가 전면에 나서는 장면은, 유발 하라리 교수와 헨리 키신저 전 장관이 우려하는 ‘정부의 빅브라더’ 시대가 세상을 뒤엎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코로나19라는 최악의 전염병이 도래하며 2차 세계대전 이후 만들어지기 시작한 세계화 바람은 물러가고, 아시아로 대표되는 중앙집중형 국가가 새로운 세계의 리더로 부상하고 있다. 유발 하라리 교수와 헨리 키신저 장관은 이 대목에서 아시아로 대표되는 빅브라더의 중앙집중형 국가가 온 세계의 획인화된 틀이 되어서는 곤란하며, 신뢰를 바탕으로 글로벌 공조가 적극적으로 이뤄지는 세계화의 연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현 상황에서 가능성이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세계는, 시대는 이제 자유의 가치보다 생존을 위한 빅브라더의 눈을 선택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의 정치 상황을 이해할 중요한 키워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