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황대영 기자] 1980년대를 떠올리는 세대에게 디스플레이를 묻는다면 브라운관 TV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당시에 TV는 고가 가전 중 하나였으며, 부피가 큰 대형 TV는 부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런 TV에만 국한된 디스플레이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액정표시장치(LCD),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으로 진화돼 스마트폰, 자동차, 생활가전 등에서도 활용된다.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는 디스플레이는 우리나라가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며 반도체와 함께 국가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 음극선관. 출처=삼성디스플레이

우리나라 디스플레이 산업의 수출 규모는 지난 2006년 처음으로 100억달러를 돌파했다. 3년 뒤인 2009년에는 200억달러를 넘어섰다. 또 2010년에는 300억달러를 돌파하며 우리나라 대표적인 주력산업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중소형 OLED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 점유율 96%를 차지하며 ‘디스플레이=대한민국’ 등식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다. 기존 일본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던 LCD 시장에서 우리나라가 1위를 차지한 시기는 약 15여 년에 불과하다.

디스플레이 시장의 후발주자에서 개척자로

우리나라 디스플레이 산업이 본격적인 발전을 시작한 시기는 불과 20년 전이다. 반도체와 함께 고속 성장한 디스플레이 산업은 선제적인 연구개발(R&D) 투자가 주효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가격 경쟁력과 함께 품질까지 갖춘 디스플레이는 협소한 내수시장보다 글로벌 시장을 덮었고, 일본 제품을 밀어내고 1위를 차지하는 배경이 됐다.

우리나라가 LCD 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년도는 1995년이다. 당시 글로벌 LCD 시장은 기술적으로 소형화에 진일보한 샤프, NEC, 도시바 등 10여 개의 일본 업체가 주도했다. 국내 디스플레이 산업은 브라운관 시장을 평정하고 새로운 먹거리로 LCD를 바라봤다. 브라운관도 점차 평면으로 진화하고 있었지만, 태생적인 한계에 평판 디스플레이로는 LCD가 최적의 제품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 TFT-LCD 구조. 출처=삼성디스플레이

전략산업으로 낙점된 LCD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R&D 투자가 동반됐다. 일본 기업들이 11.3인치 생산에 유리한 2.5세대 라인에 투자할 때, 우리나라 기업들은 12.1인치 패널 생산이 가능한 3세대 라인에 투자하며 승부수를 던졌다. 글로벌 소비자들은 더 큰 화면을 원했고, 3세대 LCD가 대세화에 성공했다. 이때부터 LCD 분야에서도 우리나라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을 주도했다. 기업들의 과감한 R&D 투자가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LCD 산업에 뛰어들고 3년 만인 1998년, 삼성은 TFT-LCD 시장 1위를 차지했다. 그 다음해인 1998년에는 삼성과 LG가 나란히 1, 2위를 차지하며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지위를 더욱 공고히 다졌다. 또 2001년 2분기 우리나라는 10.4인치 이상 대형 LCD 시장에서 일본을 제치고 국가점유율 41%를 차지하며 확고한 1위로 올라섰다. 글로벌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는 제품과 가격 경쟁력까지 갖춰 시장을 지배했다.

LCD·OLED의 영광, 차세대 디스플레이서도 잇는다

현재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OLED는 고품질 화질과 함께 소형화에도 유리해 TV, 스마트폰, 전장, 생활가전 등 다양한 곳에서 쓰인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LCD로 글로벌 시장을 장악함과 동시에 OLED 상용화에 집중했다.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브라운관이 LCD에 잠식됐듯이 LCD 다음을 대비한 것이다.

OLED는 비교적 최신 기술이 아닌 1980년대 초에 발견됐다. OLED에 대한 연구는 1980년대 초 미국 코닥사의 칭탕 박사가 발광 효율이 높은 녹색 OLED 소자를 개발하면서 발전했다. 이후 소니, 앱손, 산요 등 일본 전자업체들이 제품 개발에 접근했지만, 높은 기술장벽과 대량의 투자비용 앞에 손사래를 쳤다. 특히 아직까지도 제품화 과정에서 수율(생산량 대비 양품 비율)이 포인트로 자리 잡고 있으며, 비교적 수율이 낮은 대형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OLED 가격은 천정부지로 솟아오른다.

▲ 출처=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오래 전부터 삼성과 LG는 LCD를 이을 다음 디스플레이로 OLED를 낙점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2007년 세계 최초 OLED 양산에 성공했고, 2012년부터 대형 OLED 양산을 시작하며 디스플레이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글로벌 OLED 시장에서 우리나라의 점유율은 96%에 달했다. 과거 브라운관 LCD 시절에 일본 업체들을 뒤따라간 우리나라 기업들은 이제 새로운 시장을 선도하는 개척자가 된 셈이다.

하지만 최근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의 저가 공세에 국내 디스플레이 업체들의 실적이 악화되고 있다. 이 때문에 삼성, LG 등 대표적인 기업들이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LCD 생산을 중단하고 OLED의 일종인 QD(퀀텀닷) 디스플레이 양산에 힘을 싣는다. 반면 LG디스플레이는 LCD 생산을 점진적으로 줄여나가면서 OLED 기술 고도화 및 생산량 증대에 초점을 맞췄다.

디스플레이 업계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디스플레이 산업은 과거 LCD와 OLED 초기처럼 과감하고 신속한 투자를 진행한다면 중국에 빼앗긴 대형 디스플레이 시장 주도권을 다시 되찾을 것으로 보인다”라며 “막대한 보조금을 바탕으로 성장한 중국 디스플레이 시장은 점차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단지 가격이 아닌 기술과 품질 경쟁력을 갖추면 글로벌 소비자들의 트렌드를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