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황대영 기자] 우리나라 디스플레이 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15년째 1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막대한 정책적 지원 아래 떠오르고 있는 중국 디스플레이 산업에 점차 잠식되고 있으며, 위태한 1위 자리를 수성 중이다. 중국은 액정표시장치(LCD) 시장에서 저가 공세로 기존 업체를 밀어내고 연구개발(R&D)을 통한 산업 고도화를 거치고 있다. 마치 과거 우리나라 디스플레이 산업이 일본을 무너뜨린 것과 같은 현상이다.

중국 디스플레이 굴기… K 디스플레이 대형 악재

지난해 우리나라 디스플레이 산업은 실적 악화에 시달렸다. 중국발 LCD 패널 공급과잉으로 수익률이 크게 저하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순수한 시장 경쟁 체제에서 LCD 패널 생산 시 손실이 발생하지만, 정부의 보조금 혜택으로 일정 부분을 메우고 오히려 수익을 냈다. 이러한 보조금이 이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로 옮겨가고 있다. 우리나라 디스플레이 기업들에 ‘대형 악재’인 셈이다.

중국은 지방정부와 금융기관이 주축이 돼 막대한 보조금을 살포하며 자국 기업의 OLED 투자를 독려하고 있다. 공장 건설 단계에서 비용의 30~50%를 보조금으로 지원하고, 생산 능력(케파, CAPA) 증설 단계에서도 국책은행을 통해 보조금이 지급된다. 또한 중국은 주요 디스플레이 생산 기업이 아닌 부품 및 소재 기업에도 보조금을 지원하면서 산업 에코시스템 형성에 가속화하고 있다.

▲ 출처=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실제 시장점유율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에 따르면 중국은 금액기준 글로벌 디스플레이 시장 점유율이 지난 2014년 12.5%에서 2019년 30.2%로 17.7%p(포인트) 성장하며 2위로 올라섰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 대만, 일본 등 기존 주요 디스플레이 생산국은 점유율이 모두 감소했다. 특히 중국은 우리나라와 격차가 2014년 30.3%p를 나타냈지만, 지난해 10.9%p로 격차를 대폭 좁혔다. 또 중국은 금액기준이 아닌 출하량 기준으로 이미 1위를 차지했다.

중국전자정보산업발전연구원에 따르면 중국 디스플레이 산업 투자금액은 1조2000억위안(약 207조원)에 달한다.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지난해 10월 기준 LCD, OLED 등 45개의 디스플레이 생산라인을 운영하고 있다. 또 추가로 6개 공장을 증설 중이다. 새롭게 투자하는 곳은 우리나라가 독점적인 시장을 형성한 OLED 분야다. 중국은 현재 건설 중이거나 계획 중인 OLED 생산라인만 18곳으로, 대부분 4.5~6세대에 집중돼 있다.

그간 중국 OLED 디스플레이 산업은 약점으로 지목된 수율(생산량 대비 양품 비율)을 점차 끌어올리고 있다. 대표적인 중국 디스플레이 기업인 BOE는 청두 공장에서 생산하는 폴더블폰 및 웨어러블 OLED 디스플레이 수율이 70%에 달한다. 시장조사업체 시그마인텔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글로벌 스마트폰 출하량은 전년 동기 대비 5.2% 감소했지만, 같은 기간 스마트폰향(向) OLED 출하량은 19% 증가했다. 이 시장에서 BOE는 OLED 패널 1000만 개를 출하해 시장 진입 교두보를 마련했다.

‘원조’ 일본 디스플레이 산업의 몰락

소형화로 글로벌 생활가전 시장을 선도한 일본은 디스플레이 시장에서도 진일보한 기업들이 다수 있었다. 하지만 LCD 시장에서 우리나라의 추격에 소니, 샤프, 도시바, 히타치 등 일본 주요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고, 지속된 실적 악화로 한순간에 몰락했다. 지난해 재팬디스플레이(JDI)까지 대만 자본에 매각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일본 디스플레이 기업은 사라졌다.

일본 디스플레이 산업은 소형화에 힘입어 1998년 글로벌 디스플레이 시장 점유율 80%를 차지했었다. 일본 산업 특유의 정적인 부분이 대량화, 대형화로 빠르게 진화하는 디스플레이 산업에 뒤늦었다는 분석이다. 일본 디스플레이 산업은 2006년 글로벌 시장 점유율 16%까지 폭락하며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우리나라의 공격적인 LCD 투자와 대만 기업들의 발호로 경쟁력이 추락했기 때문이다.

▲ 출처=트렌드포스

일본은 2012년 민관펀드인 산업혁신기구(INCJ)가 2000억엔을 출자하고 경제산업성이 주도로 소니, 도시바, 히타치 등 3개사가 디스플레이 사업부문을 떼어내 JDI를 출범했다. JDI는 일명 ‘히노마루(일장기) 액정 연합’이라고 불리며 우리나라와 대만에 빼앗긴 점유율을 차지하기 위해 분투했다. 하지만 JDI는 출범 6년 차인 지난 2017년 중국발 LCD 저가 공세에 대규모 영업손실을 내고, 2년 후인 2019년 대만 컨소시엄에 매각됐다.

또 2016년 샤프까지 대만 훙하이그룹에 팔리면서 주요 디스플레이 업체가 사라졌다.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남은 일본 업체는 교세라와 파나소닉에 불과하며, 이 마저도 소규모 생산라인만 유지되고 있어 글로벌 시장 경쟁력이 미비한 수준이다. 이 같은 일본 디스플레이 산업의 몰락은 변화에 느렸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디스플레이 기업들도 현재 실적 악화에 시달리지만, LCD에서 OLED로 빠르게 전환한 덕분에 중국발 저가 공세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글로벌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OLED 점유율은 우리나라가 아직까지 압도적인 상태다. IHS마킷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스마트폰향 OLED 시장 점유율은 삼성디스플레이가 85.33%, LG디스플레이가 8.9%로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다. 또 TV향 대형 OLED 패널은 LG디스플레이가 양산화에 성공하면서 주도권을 잡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고무적인 지표도 LCD에서 나타난 일본의 몰락과 중국의 굴기를 비춰보면 낙관할 수 없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