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황진중 기자] 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진이 암세포만 선택해 죽이는 나노입자를 개발했다. 강남세브란스병원ㆍ셀바스 인공지능(AI) 연구팀이 전립선암 치료반응 및 생존율을 예측하는 AI 모델을 만들었다.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안과 연구진이 눈만 봐도 나이와 성별을 알 수 있는 딥러닝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나노입자 덩어리로 ‘암세포’ 죽인다

기존 항암치료는 암세포 뿐 아니라 정상세포도 공격한다. 때문에 암세포만 골라 제거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하다.

19일 연구업계에 따르면 IBS 첨단연성물질 연구단 바르토슈 그쥐보프스키 그룹리더와 연구진은 전하를 띠는 리간드를 부착한 금속 나노입자를 이용해 암세포를 선택적으로 파괴하는 데 성공했다. 나노입자는 정상세포와 암세포가 공통으로 갖는 ‘리소좀(Lysosome)’ 내부로 침투하는데 이 나노입자는 암세포 내에서만 덩어리를 이뤄 리소좀을 망가뜨리고 세포를 죽이는 원리다.

리소좀은 세포 내에서 ‘재활용 쓰레기통’ 역할을 하는 주머니 형태의 기관이다. 세포에서 못 쓰게 된 다른 기관을 분해해 다시 단백질로 만들거나, 바이러스와 같은 외부 물질을 파괴하는 활동도 모두 여기서 일어난다. 이 리소좀 주머니의 벽이 파괴되면 안에 있던 ‘쓰레기’들이 새어나오면서 세포가 죽는다. 이 현상을 암세포에서만 나타나게 하는 항암제 연구가 시도됐으나, 아직은 정상적인 세포에도 영향을 주는 문제가 있었다. 

연구진은 암세포 주변이 산성이라는 점에 착안해, 산성 환경에서 결정화 현상이 달라지는 나노입자를 설계했다. 암세포에서만 결정이 커지는 나노입자가 있다면 암세포 속 리소좀을 파괴하고 세포 사멸까지 이끌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연구진은 금 나노입자 표면에 양전하와 음전하를 각각 띠는 꼬리 모양 분자인 리간드를 특정 비율로 붙였다. 설계한 나노입자는 산성에서 결정이 점점 더 커지는 특성을 가져, 정상세포와 암세포에 주입하자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사멸됐다.

▲ 정상세포와 암세포에서 세포 내 섭취작용을 통해 흡수된 금속 나노입자의 거동비교. 출처=IBS

공동교신저자인 크리스티아나 칸델-그쥐보프스카 연구위원은 “암세포는 산성을 띠므로 나노입자가 잘 뭉치고, 암세포는 그 기능이 비정상적이라 큰 결정으로 자란 나노입자를 배출하기 힘들어 결국 사멸한다”며 “암세포 선택성을 극대화하려면 나노입자가 리조좀으로 잘 운반돼야 하는데, 나노입자 표면의 양이온과 음이온 비가 8:2일 때 덩어리 크기가 적당해 잘 운반됐고 사멸 효과도 높았다”고 설명했다.

▲ 암시야현미경으로 관찰한 세포 내에서 나노입자 이미지. 출처=IBS

세포 내 나노입자의 움직임은 암시야현미경을 통해서도 입증됐다. 현미경 분석을 주도한 조윤경 그룹리더는 “나노입자는 크기가 단백질 분자 수준으로 작아 관찰이 까다로운 연구”라면서 “관찰을 위한 꼬리표를 붙이면 양이온과 음이온의 황금비율인 8:2를 해칠 우려가 있어 특수한 관찰법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또 거대한 나노입자 결정을 품은 암세포의 리소좀 내부에서 세포 성장을 담당하는 신호 단백질(mTORC1)의 작용이 억제되는 현상을 발견했다. 이 단백질은 정상세포에서 더 활성화된다. 따라서 해당 단백질이 리소좀 벽의 파괴와 암세포 사멸에 영향을 줬다고 추측할 수 있었다.

바르토슈 그쥐보프스키 그룹리더는 “고장난 암세포의 특징 즉, 세포 주변이 산성이고 이물질 배출도 어렵다는 점을 역으로 활용해 암세포를 죽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면서 “앞으로 동물실험을 진행해 항암치료제로서 가능성을 추가로 살필 것”이라고 말했다.

바르토슈 리더는 또 “나노입자에 리간드를 붙여 선택적으로 입자의 뭉침을 유도하는 방법은 금속 나노입자뿐 아니라 고분자 나노입자 등에도 적용할 수 있다”면서 “이번 연구는 나노입자 과학의 관점에서도 큰 의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 성과는 세계적인 과학 학술지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Nature Nanotechnology, IF 33.407)’에 3월 16일 게재됐다.

전립선 암 치료 관련 AI 모델 개발

딥러닝을 통해 각종 질병을 예측하는 인공지능(AI) 모델이 속속 개발되고 있는 가운데 전립선암의 치료반응과 생존율을 예측해 최적의 치료법을 찾을 수 있는 AI 모델이 개발됐다. 

연세대학교 강남세브란스병원 비뇨의학과 구교철, 이광석, 정병하 교수 연구팀과 인공지능 전문기업 셀바스는 AI 분석을 통해 개인맞춤형 생존 예측 및 최적 치료법 제시 모델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개발된 AI 예측 모델은 전립선암 환자 7267명의 임상, 병리 자료를 학습 및 분석해 치료반응과 생존율을 예측한다. 연구팀 관게자는 “예측 정확도가 높게는 91%로 나타나 80% 수준인 기존의 통계분석법을 이용한 모델보다 정확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해당 AI가 진단부터 치료과정의 단계별 병태생리를 반영하는 자료를 수집해 질환의 상태가 암의 진행에 미치는 영향까지 분석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서는 전립선암이 진단된 시점의 상태에 맞춰 병의 진행을 예측하고 최적의 치료법을 제시할 수 있다.

▲ 강남세브란스 비뇨의학과 구교철 교수. 출처=강남세브란스

구교철 교수는 “기존의 예측모델이 시계열을 반영하지 못한 것에 비해 이번에 개발된 모델은 병의 진행 과정 전체를 분석해 진단 시점에서 최적의 치료법을 찾을 수 있다”라면서 “이를 토대로 환자 개인의 특성에 따라 가장 우수한 치료법을 제시해 주는 맞춤형 치료 선택 시스템을 온라인 플랫폼으로 구축했다. 이 플랫폼은 실제로 강남세브란스병원 전립선암센터에서 환자 상담 및 치료방침 수립에 널리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병하 교수는 “표준치료지침이 서양의 임상지표를 기반으로 한 것인데, 이번 연구는 한국인의 30년 치료 데이터를 기반으로 알고리즘을 개발했으므로 한국의 현실을 가장 잘 반영했다고 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는 과기정통부 한국연구재단 개인기초연구사업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연구 성과는 ‘세계비뇨기과학술지(World Journal of Urology)’ 최근호에 게재됐다.

눈만 봐도 나이ㆍ성별 아는 딥러닝 알고리즘 개발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안과 박상준 교수 연구팀은 망막안저사진을 보고 나이와 성별을 정확히 예측하는 딥러닝 알고리즘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망막안저사진은 동공을 통해 안구 내의 구조물을 촬영한 사진으로, 안과 전문의가 육안으로 관찰하고 질환을 파악하는 목적으로 사용된다. 기존 활용 방식은 의사의 눈에 의존하는 만큼 병변의 유무, 크기 및 위치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 외엔 용도가 제한적이라는 한계가 있다.

박상준 교수 연구팀은 딥러닝 알고리즘으로 망막안저사진에 담긴 정보를 분석해 대표적 신체정보인 나이, 성별을 예측함으로써 새로운 활용 가능성을 제시했다.

연구팀은 분당서울대병원 건강검진센터에 축적된 41만 2026장의 망막안저사진을 이용해 알고리즘이 사진만 보고도 연령과 성별을 분석할 수 있도록 학습시켰다. 연구팀은 또 표본에는 일반인뿐만 아니라 안구의 병증을 유발하는 대표인자인 당뇨 및 고혈압이 있는 환자, 흡연자도 포함해 기저질환에 상관없이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 분당서울대병원 안과 박상준 교수. 출처=분당서울대병원

연구 결과 개발된 딥러닝 알고리즘은 정상인을 대상으로 성별에 상관없이 평균 3.1세의 오차로 실제 연령을 파악했을 뿐만 아니라, 당뇨나 고혈압이 있는 경우에도 평균오차가 3.6세를 넘지 않는 높은 예측성능을 보였다.

알고리즘은 연령증가에 따른 안구의 변화가 두드러지는 60세 이전에서 더욱 높은 정확도를 보여 모든 집단에서 평균오차가 2.9세를 넘지 않았으며, 성별은 기저질환에 상관없이 96% 이상의 확률로 정확히 구분했다.

기저질환이 있는 경우에도 나이 예측의 오차가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이는 당뇨, 고혈압과 같은 기저질환에 의해 생긴 안구의 변화와 나이가 들면서 발생하는 안구의 노화가 육안 상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서로 구분되는 고유의 양상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개발된 딥러닝 알고리즘이 둘의 미세한 차이를 구별해 나이를 예측하는데 성공한 만큼, 후속 연구에서는 망막안저사진의 정보들을 더욱 세부적으로 분석해 눈의 병변뿐만 아니라 전신의 질환 및 건강상태를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연구를 주도한 박상준 교수는 “망막안저검사는 빠르고 비용이 저렴한데다 방사선 노출이 없는 간단한 검사”라면서 “이번 연구에서 개발한 알고리즘을 더욱 발전시켜 망막안저사진을 통해 전신의 건강상태까지 진단할 수 있다면 환자들의 경제적, 신체적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 성과는 ‘네이처(Nature)’의 자매지인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 온라인판에 3월 12일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