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비라

[이코노믹리뷰=김덕호 기자] 1990년대 초~2010년대 초반까지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거친 독자라면 한 번쯤은 가족들과 함께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하나로마트 등의 대형 마트를 거닐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주요 상권에 위치해 있고, 다양한 상품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가족들의 종합 쇼핑 공간이 이들 대형마트였다.

삼각 김밥, 컵라면, 도시락을 통해 생활 속 친근한 이미지를 쌓은 편의점 역시 그렇다. 짧지 않은 기간 우리 삶에 크게 자리 잡아 지금의 3040세대와 교감해왔다.

그러나 20년 넘게 국내 유통시장을 주도해온 오프라인 유통 시장이 급변하고 있다. 온라인 오픈마켓과 쇼핑몰들의 공세를 버티며 독보적인 지위를 만든 유통채널들이 최근 몇 년 사이 e커머스 기업들의 성장세에 크게 밀린 탓이다.

온라인 유통채널들의 ‘빠르고 간편한’ 소비자 대응전략은 최근 신선식품까지 접수하며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대형마트, 편의점의 전통 오프라인 채널들이 ‘각자도생’을 선택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메가트렌드의 변화…새 혁신 찾는 대형마트

유통업계에서는 한국 대형마트의 시작을 1993년 오픈한 이마트로 본다. 이후 킴스클럽(1995년), 까르푸(1996)가 등장하면서 시장이 본격적으로 확장됐다. 당시 대형 유통기업들은 대량구매, 대량진열, 저마진, 고회전, 셀프 구매를 앞세운 전략을 내놨고, 이러한 생산·유통·판매 구조는 ‘혁신’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같은 유통 혁신은 전국의 소매 시장 전반으로 퍼져나갔다. 이후 대형마트는 일상생활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으며 전통시장의 영역을 빠르게 대체해 나간다. 1998년 42개에 불과했던 대형마트(매장면적 합계 3000㎡ 이상)가 2019년에는 515개로 급격히 늘어난 배경이다.

▲ 2019년 롯데쇼핑 이마트 실적. 사진=이코노믹리뷰  DB

그러나 지난해 대형마트들의 실적은 그다지 좋지 않다. 업계 1위 이마트의 지난해 영업이익(연결기준)은 전년 대비 67.4% 급감한 1507억원으로 집계됐고, 롯데마트는 26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시장에서는 이들의 지난해 실적을 '예상된 결과'로 본다. 대형마트 3사(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의 평균 매출 신장률(전년비)이 2015년 -3.2%, 2016년 -1.4%, 2017년 -0.1%, 2018년 -2.3% 등 마이너스 성장률을 이어온 것이다.

본질적으로는 기업의 ‘역량’이 아닌 메가트렌드(Megatrends, 거대한 시대적 흐름)의 변화 속에서 이뤄진 것으로 본다.

IMF 경제위기 이후 소비자들의 구매 선호가 ‘시장→대형마트’로 변했고, 이 같은 변화가 일반·고착화되면서 대형마트의 성장이 이뤄졌다. 그러나 배송혁명을 앞세운 이커머스 기업들이 생겨나면서 이들은 새로운 활로를 찾는 상황이다.

이커머스의 성장으로 이마트, 롯데쇼핑,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빅3는 ‘성장’ 또는 ‘사업 축소’ 둘 중 하나의 길을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였다. 그리고 이마트와 롯데쇼핑은 같지만 다소 다른 전략을 내놓는다. 두 기업 모두 온라인사업부 강화 방침을 밝힌 가운데 이마트는 ‘창고형 매장’ 출점, ‘오프라인 매장 강화’로 방향을 잡았고, 롯데쇼핑은 매장 구조조정을 택했다.

▲ 2017~2019년 전년 대비 매출증가율(유통업). 사진=이코노믹리뷰  DB

활로찾는 대형마트, ‘공간’과 유통업 ‘본질’ 집중

유통시장의 변화를 소비자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이해는 쉽다. 온라인 마켓에서 구매할 수 있는 제품의 수가 많고, 가격 또한 합리적이다. 쿠팡에서 시작된 배송혁명을 마켓컬리가 따르고 있고, 잠들기 전 주문한 제품을 다음날 출근 전에 받아보는 것이 일상화됐다.

대기업이 일궈낸 유통혁신이 ‘배송 서비스 혁신’으로 진화한 것이다. 공산품은 물론 식료품 소비가 가능해지면서 대형마트의 의존도도 낮아졌다.

이에 오프라인 기업들은 이커머스 기업들의 부각에 맞서기 위한 방안을 찾고 있다. 그리고 차별화 전략의 핵심을 ‘공간’의 활용으로 잡았다. 기존의 매장을 물류기지로 이용함으로써 신규 투자비용을 크게 줄이겠다 ‘효용 극대화’와 매장에서만 체감할 수 있는 ‘감성의 전달’ ‘체험’ ‘쇼핑의 기회’ 제공에 초점이 맞춰졌다.

▲ 홈플러스 창고형 매장. 사진=이코노믹리뷰  DB

창고형 매장의 부활

이마트의 대응 전략에서 눈 여겨 볼 것은 ‘창고형 마트’의 부활이다. 대규모 부지에 대단위 판매, 대형마트의 태동기에 이뤄진 움직임이 고급·전문화돼 재현된 것으로 봐도 좋다.

지난 1995년 뉴코아그룹은 미국의 창고형 할인마트 모델을 들여와 ‘한국판 코스트코’인 ‘킴스클럽’을 론칭했다. ‘완전 창고형’ ‘24시간 운영’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영업 전략을 내세우며 영역 넓히기에 나섰다.

신세계그룹은 회원제 창고형 할인점 ‘프라이스클럽’을 통해 맞섰고, 롯데백화점 역시 부산 ‘L마트’를 개설하며 시장에 진입했다. 네덜란드의 ‘마크로’, 프랑스 ‘까르푸’, 미국 ‘월마트’ 역시 창고형 매장으로 한국에 진출했다.

이들의 시장 확대는 경기침체와 관련이 컸다. 1997년 IMF를 전후해 생겨났고, 공통적으로 ‘소품종 대량구매’ ‘박리다매’ 전략을 펼쳤다. 불황과 맞물려 ‘가성비’를 찾는 고객이 많았던 시기다. 동네마다 유행하던 ‘천냥백화점’도 이 시기 등장했다.

이후 경기가 호전되며 창고형 매장은 소매 유통매장으로 변했지만, 최근 저성장 기조가 이어지면서 다시 저가 제품을 선호하는 소비 패턴이 생겨났다. 경기침체와 소비 양극화가 맞물리며 명품 소비로 대표되는 ‘백화점’과 낮은 가격에도 쓸만한 제품을 찾는 ‘가성비’ 시장이 성장하는 추세다.

이마트가 창고형 매장 ‘트레이더스’를 확장하고, 롯데마트와 홈플러스가 창고형 할인점 ‘빅마켓’과 ‘홈플러스 스페셜’에 집중하는 이유다. 15개 매장을 보유한 코스트코 이외에는 이렇다 할 경쟁자도 없다. 2012년 2조9000억원(업계 추정치)에 불과하던 시장 규모는 지난해 5조원대로 성장했다.

실적도 좋다. 공격적인 출점을 이어오고 있는 이마트 트레이더스는 매년 20% 가까운 매출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2015년 9534억원을 기록했던 매출액은 2016년 1조원을 넘겼고, 2017년 1조5214억원, 2018년 1조910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2조원을 훌쩍 넘는 매출을 올렸다. 연도별 매출 성장률은 ▲2017년 27.2% ▲2018년 25.5% ▲2019년 22.4%에 달한다.

▲ 체험형 오프라인 매장(게임). 사진=이코노믹리뷰  DB

오프라인 매장의 변화는 ‘체험형 매장’ 확대에서도 보여진다. 이마트는 ‘남자들의 놀이터’를 콘셉트로 하는 ‘일렉트로마트’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고, 아이들을 위한 체험형 완구매장 ‘토이킹덤’도 늘려나가는 중이다. 롯데마트의 ‘토이저러스’는 가장 경쟁력 높은 완구 매장이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체험형 매장이 아직은 키즈, 어덜트 영역에 한정되어 있지만 향후에는 보다 다양한 부문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 롯데마트 언택트 계산대. 사진=이코노믹리뷰  DB

오프라인 유통, 이커머스를 배우다

올해 유통기업 투자의 가장 큰 화두는 ‘온라인 몰 강화’다. 이는 대형마트들이 지난해의 ‘실적쇼크’를 경험한 이후 업계의 움직임이 보다 빨라졌다.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기업은 ‘롯데쇼핑’이다. 통합 온라인 쇼핑몰 ‘롯데ON’을 통해 그룹사의 역량을 한데 모으고, 이커머스 기업들과 경쟁하겠다는 전략이다.

롯데쇼핑의 전략을 정리하면 오프라인 경쟁력이 있는 롯데마트와 전체 기업형 슈퍼마켓 시장의 45%를 차지하는 롯데슈퍼의 매장을 온라인 물류 기지로 활용하고, 점포 효율을 극대화 한다는 것이다.

오프라인 매장을 유통 물류기지로 활용하는 한편 700여개의 오프라인 매장 중 수익성이 떨어지는 매장 200개를 줄이는 구조조정도 동시에 이뤄진다.

온·오프라인 통합 매장인 ‘디지털 풀필먼트 스토어’ 서비스도 시범 운용한다. 서울 중계점, 경기 광교점 등 2개 매장에서 이뤄지는 이 서비스는 고객이 물품을 주문하고, 원하는 시간대를 선택하면 제품을 ‘바로배송’ 해주는 시스템을 갖췄다.

최근에는 기존 롯데마트의 배송 차량 20% 증차, 물류센터의 작업인력 13% 증대 등 배송 강화에도 신경쓰고 있다.

이마트는 통합 온라인몰 SSG닷컴의 배송(쓱배송) 처리 물량의 능력을 늘리는 한편 20%까지 확대했고, 서울과 경기 일부 지역에서 시범운영중인 ‘새벽배송’ 서비스 능력을 150%(1만→1만5000건)로 늘렸다.

특히 이마트의 경우 일평균 온라인 주문건 처리 물량 약 13만 건 중 5만 건을 지역 점포에서 담당할 정도로 오프라인 매장의 비중이 크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신세계 그룹 O2O(온·오프라인 통합) 시스템 적용은 물론 오프라인 매장의 배송확대 확장의 발판도 마련됐다.

홈플러스 역시 배송 처리물량을 늘렸다. 배송 물량을 평소보다 50% 확대했고, 창고형 매장 ‘홈플러스 스페셜‘의 온라인몰 ‘홈플러스 더 클럽’은 무료배송 기준 금액을 40%을 하향 조정했다.

▲ 코로나19 이후 채널별 구매액 신장률. 사진=이코노믹리뷰  DB

의외의 변수 ‘코로나19’

다행스러운 점은 올해 1분기에는 코로나19 이슈로 깜짝 매출 선방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질병 확산에 맞서 외식 자제, 재택근무 등이 늘어나면서 ‘집밥’ 수요가 늘었고, 사회적 거리두기 문화가 조성되며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자리를 피해 동네슈퍼를 이용하게 된 것이 주 요인이다.

다만 지금의 이슈가 시장 전체의 전망을 밝힐 것이라는 기대를 품는 기업은 없다. 사회가 정상화되는 사이 오프라인매장을 이용하던 5060(이하 오팔 OPAL, Old People with Active Lives) 세대들의 이커머스 이용률은 크게 늘어서다. 눈으로 보고 제품을 사야 만족했던 이들이 온라인 쇼핑에 맛을 들였고, 구매 품목도 공산품에서 신선식품으로 확장됐다.

이커머스 업체 티몬이 분석한 품목별 매출 증가율 자료에 따르면 지난 2월 23일~3월 23일까지 50대 이상 소비자의 돼지고기·채소·과일 구매 증가율은 각각 458%, 214%, 99%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 식료품 업체 마켓컬리의 50대 이상 신규 가입자 수는 전년 동기 대비 54% 가량 늘었고(2월 19일~3월 22일 기준), 이들의 주문 건수도 90% 이상 많아졌다. 오픈마켓 11번가의 지난 2월 50대 이상 신규 가입자 증가율도 높았다. 연령별 증가율은 ▲50대 16% ▲60대 17% ▲70대 10%였다.

오린아 이베스트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코로나 시대의 쇼핑(재난은 소비를 바꾼다)’ 보고서에서 미래를 이렇게 분석했다.

“2003년 사스(SARS) 발병으로 인한 사회재난, 2011년 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자연재해 재난은 발생 이후 소비 패턴과 주도 유통 채널의 변화를 불러왔다. 이번 코로나 19 발병 또한 한국 및 주요 국가에 사회적 재난을 일으키면서, 비대면을 뜻하는 언택트(Untact) 소비를 확산시킬 것으로 판단한다. 온라인 쇼핑에 익숙지 않은 세대들까지 유입되면서, 생필품·식료품의 온라인 쇼핑과 배달앱 사용이 고착화할 것으로 전망한다.”

코로나19 이슈에 따른 매출 급증은 시점상의 호재였을 뿐, 유통 패러다임의 변화에 영향을 줄 요인은 아니라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