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코로나19로 글로벌 경제가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차이나머니를 둘러싼 치열한 눈치게임이 전방위적으로 벌어져 눈길을 끈다. 한때 글로벌 경제를 강타하던 차이나머니의 기세가 다소 잦아들었으나, 코로나19 사태를 기점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는 가운데 특히 유럽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차이나머니를 적절하게 활용하면서도 견제해야 하는 한국 기업의 선택에도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 출처=갈무리

일대일로, 그리고 차이나머니
중국은 시진핑 주석의 등장과 동시에 대외팽창 정책에 적극 시동을 걸었다. 덩샤오핑 시절 도광양회(韬光养晦)의 시대를 넘어 대국굴기(大國崛起)의 깃발을 높이 치켜들었다.

핵심은 일대일로(一帶一路 , One belt, One road) 프로젝트다. 시 주석은 2013년 카자흐스탄의 나자르바예프대학 강연을 통해 내륙의 실크로드 경제벨트를 구축하자는 뜻을 밝혔고, 같은 해 10월 인도네시아 국회 연설을 통해 해양 실크로드 경제벨트 등장의 필요성을 적극 알리며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시동을 걸었다. 미국과 러시아가 대립하던 냉전시대의 제3지대 동맹과는 차원이 다른, 미국을 대체하는 강력한 경제연합구성의 청사진이다.

2013년 18회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에서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로드맵이 나온 가운데 시 주석은 2014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정상회의에서 실크로드기금을 설립, 400억 달러를 투자하며 본격적인 대외팽창 전략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아시아금융협력협회(AFCA)가 출범하며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거칠것 없이 가동됐다. 차이나머니의 동시다발적인 공습을 통해 각 나라의 거점을 연결하는 웅장한 중국몽의 시작이다.

2017년 일대일로 국제협력 고위급 포럼이 열리는 등 중국의 강력한 대외팽창 전략은 속속 성과를 거뒀으나, 2018년 미중 무역전쟁이 발발하며 스텝이 꼬였다.

당시까지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진행되며 일각에서는 각 나라의 부채가 지나치게 높고 사업성에 현실이 없다는 비판이 나왔으나 중국은 이러한 잡음을 차이나머니 공습으로 틀어 막은 바 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등장과 함께 미국이 '아메리카 퍼스트' 전략을 취하며 중국의 영향력을 사전 차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한편, 기어이 미중 무역전쟁이 시작되자 중국의 일대일로에도 커다란 차질이 생기고 말았다.

특히 막대한 차이나머니로 글로벌 기업을 쓸어담던 기존 전략에 문제가 생겼다. 실제로 시장조사업체인 머저마켓은 2017년 중국 업체의 미국 기업 인수합병 규모는 87억달러에 머물렀고 2018년에는 30억 달러에 그쳐 전년 동기 대비 95% 감소했다. 미국 외국인투자위원회(CFIUS)가 미국 국방 안보를 이유로 알리바바의 미국 머니그램 인수를 막는 한편, 트럼프 행정부의 화웨이에 대한 무자비한 압박이 시작된 시기와 동일하다.

코로나19, 치열한 공방전
미중 무역전쟁이 벌어지며 중국몽의 기세는 크게 꺾였으나, 차이나머니를 내세운 중국의 대외정책은 큰 틀에서 변함이 없었다. 중국은 예정대로 일대일로를 추진했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국지적인 반발을 차이나머니로 덮는 전략을 고수하며 이를 방해하려는 미국과 충돌을 감수했다.

올해 초 미중 무역전쟁이 1단계 합의를 끌어내며 사태는 새로운 변곡점을 맞는다. 두 나라의 무역분쟁은 일부 해소됐으나, 중국의 기술굴기를 꺾으려는 미국의 압박은 더욱 심해졌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화웨이에 대한 압박이다. 화웨이는 미중 무역전쟁 당시 트럼프 행정부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으며 이 과정에서 중국 정부의 백도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 쓴 바 있다. 그러나 최근 강력한 기술력으로 유럽과의 동맹을 강화하는 등 미국의 제재를 무력화시키는 중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이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재차 화웨이 논란을 재점화시키는 한편, 자국 기업과 화웨이의 거래를 차단해 전방위적인 압박에 나서기 시작했다. 현재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주의 딸인 멍완저우 화웨이 CFO는 이란 제재법 위반으로 미국 송환 위기에 처했다. 나아가 미국 정부는 자국 기업과 화웨이의 거래를 막았으며 최근에는 소프트웨어 거래도 중단됐다. 구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가 화웨이의 글로벌 스마트폰 공급망에서 사라진 이유다.

화웨이는 '물러서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화웨이는 올해 1분기 31조500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전년 동기 대비 1.4% 성장하는 것에 그쳤다. 순이익률도 7.3%에 머물러 전년 동기 대비 0.7%p 떨어졌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압박이 심해지자 화웨이 대변인은 22일 미국의 수출 통제가 이어질 경우 삼성전자와 대만의 미디어텍, 중국의 스프레드트럼로부터 칩을 조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화웨이는 현재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을 통해 모바일 AP를 설계하고 대만 TSMC를 통해 제작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 정부가 자국 원산지 부품소재가 25% 이상 들어간 제품의 수출을 막는 가운데 그 비율을 10%로 내리는 방안을 검토하자, 화웨이가 아예 미국 기업과의 반도체 거래를 중단할 수 있다는 초강수를 내비친 셈이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19가 중국 우한에서 발생, 이어 세계에서 팬데믹을 일으키며 사태는 더욱 꼬이기 시작했다. 강력한 대외팽창 전략을 추구하던 중국이 전염병의 온상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며 크게 위축될 것이라 예상됐으나, 상황은 정반대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은 코로나19 사태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당장 코로나19 발생 초기 중국과 일대일로를 통해 밀접하게 연결된 이탈리에서 확진자가 급증하던 시기, 일각에서는 이탈리아가 이를 기점으로 중국과 거리를 둘 것이라 예상했으나 이러한 전망은 빗나갔다. 이탈리아의 국가부채가 치솟는 가운데 유럽연합이 이탈리아에 대한 지원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에서, 오히려 중국이 의료진과 마스크를 지원하는 등 발 빠른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2015년 지중해를 건너는 난민들이 이탈리아로 몰려올 당시에도 이탈리아의 고통을 외면한 전적이 있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19에 대한 위기상황을 맞아 유럽연합이 또 한 번 이탈리아를 외면하자, 이탈리아는 아예 중국의 손을 강하게 잡는 쪽으로 선회했다. 미국 외교전문 매체 포린폴리시(FP)는 이를 두고 유럽연합이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이탈리아를 외면하고 있으며, 이는 중국과의 연합을 더욱 공고히 할 것이라 분석했다.

중국은 방역 외교도 크게 강화하고 있다. 홍콩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최근 “서구는 마스크를 수출하고 있는 중국에 우려하고 있다”면서 “중국의 지원을 받기 위해선 각국이 중국의 체제를 칭찬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은 것이 서구의 우려”라고 보도했다. 특히 중국이 유럽연합 차원에서 마스크를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나라와 접촉해 마스크를 판매하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는 각개격파를 통해 상대방의 커다란 힘을 분산시키는 조치이자, 마스크라는 자원을 통한 간헐적 약탈전에 나서고 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의 일대일로가 코로나19 정국에서 커다란 성과를 거두기에 이르렀다. 로이터는 25일 헝가리가 발칸반도를 연결하는 고속철도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중국과 18억5500만달러의 차관협정을 체결했으며, 이는 헝가리가 본격적으로 중국과 손을 잡았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보도했다. 이에 앞서 세르비아가 중국의 일대일로에 편입됐으나, 세르비아는 유럽연합 소속국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첫 유럽연합 회원국이 중국의 일대일로에 편입된 셈이다.

사실상 코로나19라는 최악의 위기를 맞아 길을 잃은 유럽연합이 분열하는 모양새다. 전통적 우방국인 미국과의 관계도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으로 소원해진 가운데, 차이나머니를 바탕으로 융단폭격을 가하는 중국의 기세에 유럽연합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2일 유럽연합 지도부를 향해 "지금은 우리 사이에, 그리고 국가 간 매우 긴밀한 단합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유럽 형제애의 화합을 달성할 수 있도록 모두 유럽을 위해 기도하자"는 메시지를 낸 이유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코로나19로 타격이 큰 유럽 남부의 국가들이 유럽연합 차원의 공동채권 발행을 통해 자국의 고통을 다른 나라들도 분담해 달라 촉구했으나, 독일 등 유럽 북부 국가들이 유럽안정화기구(ESM) 틀 내에서의 지원을 고수한다는 입장을 밝힌 직후라 눈길을 끈다. 유럽 북부 국가들이 사실상 남부 국가들의 호소를 외면한 상태에서 나온 교황의 절절한 호소다.

차이나머니, 쉬운 길은 아니다...우리는?
코로나19를 통해 중국이 이를 전화위복으로 삼아 일대일로에서 성과를 거두는 등 기민한 팽창정책을 추구하고 있으나, 아직은 리스크가 많다는 말도 나온다. 유럽연합이 분열하고 유럽과 미국의 연대까지 느슨해진 상태에서 중국이 막대한 차이나머니를 중심으로 강력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으나 이에 따른 반발도 크기 때문이다.

당장 기세등등한 차이나머니의 행보에 속속 위기감을 느끼는 나라들이 많아지고 있다. 인도 상무부가 18일 인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에 근거지가 있거나 연계된 해외 기업들의 인도 기업 인수합병을 통제하겠다고 선언한 지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조치며, 코로나19로 인도 기업의 체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중국 기업의 자국 기업 사냥을 막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호주와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 회원국들도 이와 비슷한 정책전 선언을 한 상태다.

실제로 독일도 지난 8일 외국인이 자국의 IT 기업에 10% 이상 투자할 경우 정부의 심사에 협조해야 한다는 방침을 내놨고 유럽연합은 12일 중국이 유럽연합 회원국의 기업 인수를 시도할 경우 회원국의 지분을 매입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EU 경쟁담당 집행위위원이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를 통해 "오는 10월 이와 관련된 강화된 체계가 발동될 예정이지만, 그 일정을 앞 당길 것"이라 말했다.

글로벌 제조업의 공장인 중국의 힘을 빼려는 시도도 보인다. 미국에 이어 일본은 최근 중국에 진출한 자국 기업을 향해 "본국으로 돌아올 경우 지원금을 제공하겠다"는 당근을 제시하기도 했다. 나아가 코로나19에 대한 중국 책임론을 지피는 분위기도 보인다. 실제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7일 백악관에서 열린 코로나19 TF 브리핑에서 "나는 중국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우리는 들어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 중국이 코로나19와 관련된 책임을 져야하며, 중국이 합당한 정보공개를 하지 않고 대책을 포기했기 때문에 코로나19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비판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14일 친중국 입장만 고수한다는 비판을 받는 WHO에 대한 자금 지원 결정을 중단하기로 결정한 상태다. 캐나다, 독일도 최근 코로나19의 발병지를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며 코로나19의 중국 책임론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미국은 한 발 더 나아가 중국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미국이 3월 대만지원법의 정식 발효를 승인한 장면이 중요하다. 대만 지원법은 중국이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총력전을 벌이는 사이 미국이 중국의 '아픈 손가락'인 대만을 겨냥한 압박 전술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대만 지원법은 미국이 대만의 안전과 번영에 부적절한 영향을 주는 국가에 대해 경제, 외교 관계 등을 고려할 수 있도록 하는 길을 열어주는 법안이며 이는 '하나의 중국'을 표방하는 중국에 대한 압박으로 여겨진다.

나아가 화웨이에 대한 압박을 고수하며 맹공을 퍼붓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17일 폭스비즈니스네트워크 인터뷰에서 화웨이를 거론하며 "많은 국가가 통신 구성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밖에 없다"면서 "화웨이가 그들(장비 판매국)에게 장비와 하드웨어를 팔러 올 때 그들(장비 판매국)은 많은 생각을 할 것"이라 직격탄을 날렸다. 중국 정부가 코로나19에 대해 불투명한 자세로 일관한 이상, 중국의 화웨이도 불투명한 '무언가'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논리다. 최근에는 유럽에서도 화웨이와의 5G 협력에 있어 회의론이 나오는 중이다.

코로나19를 둘러싼 차이나머니의 흐름이 심상치않게 요동치는 가운데, 한국 기업들은 이를 적절하게 활용하면서 유연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평가다. 신우인 한국ICT전략연구소 부소장은 "신남방정책, 나아가 러시아를 기점으로 하는 물류 북방정책을 추진하는 한편 이 과정에서 차이나머니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동맹국의 리쇼어링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실용주의적 전략을 통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