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일제강점기가 끝난 후 지옥같은 한국전쟁이 종료된 1950년대 초반, 한국은 GDP(국내총생산)가 67달러에 그치는 초극빈국으로 전락해 미국의 원조가 끊기면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시절을 겪는다. 그러나 60년대와 70년대를 거치며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고도경제성장을 경험한 후 80년대 혼란의 시기를 넘어 1994년 GDP 1만달러 돌파, 1996년 OECD 가입이라는 황금기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가 덮치며 악몽은 다시 시작됐고, 기업이 줄도산하며 실업률이 폭등하는 등 엄혹한 시대를 맞는다.

그렇게 2000년이 왔다. 새로운 천년의 밀레니엄이 시작되던 2000년은 외환위기의 어수선함이 여진을 일으키면서도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감이 공존하던 야릇한 해였다. 여전히 외환위기의 폭풍 속에서 대기업들이 휘청이는 한편, IT 버블이 시작되며 벤처기업이 몰락하는 등 어려움이 이어졌으나 반대편에서는 외환위기 극복, 글로벌 투자 유치에 대한 기대감과 새로운 시대를 열기위한 경제계의 노력이 공존했다.

그렇게 또 20년이 흘러 2020년이 왔다. 2000년 공존의 시대를 넘어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하는 세월을 지난 지금, 우리는 어떤 세상을 살고 있을까. 또 어떤 시간을 약속하고 있을까.

▲ 출처=이코노믹리뷰DB

외환위기, 그리고 극복의 시간

“6·25 이후 최대의 국난이라고 할 수 있는 외환위기가 닥쳤다” 1998년 2월,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연설을 통해 외환위기를 한국전쟁에 비견될 만한 최대의 국난으로 정의했다. 그의 메시지는 명확했고, 또 사실이었다.

전조는 1996년 경제성장률이 전년 대비 9.2%에서 7.6%로 떨어지며 시작됐다. 이후 아시아 금융위기가 터지자 글로벌 자본이 급격하게 유출됐고, 1997년 다급해진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전격 요청한다. 그러나 사태는 더욱 심각해졌다. 80년대 초반부터 이어진 과잉투자가 시한폭탄이 되어 국내 기업들을 쓰나미처럼 몰아치기 시작했고 기업을 살리기 위해 공적자금만 168조원 이상이 투입됐으나 불씨가 꺼진 경제엔진에는 온기가 돌지 않았다. 당장 1997년 이후 2000개가 넘던 금융기관은 절반으로 줄었고 33개 은행 중 16개 은행이 영업을 중단했다. 30대 대기업 중 17개 기업이 해체되거나 매각됐고 공공기관 감축 인원만 10만 명 이상이었다. 온 거리에는 절망과 슬픔만 켜켜이 쌓여갔다.

밀레니엄의 시작인 2000년에도 외환위기의 상처는 깊었다. 한국경제의 견인차인 대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졌다. 당장 2000년 2월 기아자동차가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그해 4월 15일 김우중 회장이 이끌던 대우그룹이 해체된다. 10월 30일에는 현대건설의 1차 부도, 11월 10일에는 동아건설이 부도난다. 12월 4일 김대중 대통령이 국제통화기금의 모든 차관을 상환했음을 발표하지만 2001년 5월 11일 동아그룹이 해체되는 등 여파는 여전했다.

▲ 영화 국가부도의 날. 출처=갈무리

한국은행이 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 차입금 195억달러 전액을 상환해 소위 ‘관리체제’를 공식적으로 벗어난 것은 2001년 8월 23일의 일이다.

2000년의 한국경제는 1997년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인고의 시간으로 시작됐으나, 전혀 다른 상승의 기대를 보여주기도 했다. 위기는 여전했으나 그 어느 때보다 새로운 도약에 대한 기대감도 컸다는 평가도 나온다.

IT 버블을 거치며 벤처기업의 실체를 명확히 인지한 후 다양한 각도의 신사업 창출의 시도가 이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초고속인터넷으로 대표되는 IT 강국의 꿈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또 외환 위기에서 살아남은 기업들이 탄탄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강력한 체질개선에 나섰던 시기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2001년 9·11 테러 후 글로벌 질서가 재편되는 한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한국경제는 또 한 번 혹독한 검증의 시간을 맞이하게 된다. 2007년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여파는 온 지구촌을 떠들썩하게 만들었고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2008년 12월 소비자심리지수는 67.7로 떨어졌고 금융부터 실물경제가 전부 타격을 받는 최악의 시간을 버텨야만 했다.

2010년대에 이르러 한국경제는 빠르게 정상화 과정을 밟았으나, 여러 가지 중장기 쇼크로 롤러코스터를 타는 일이 많았다. 이런 가운데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등장으로 또 한 번 결정적인 부침을 겪는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며 강력한 보호 무역주의를 표방하는 한편 2018년 중국과 무역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두 슈퍼파워는 관세폭탄은 물론 홍콩 사태, 대만 문제, 남중국해 분쟁, 환율 조작국 논쟁 등을 거치며 치열하게 싸웠다. 이 과정에서 중국의 화웨이를 압박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이 날카롭게 펼쳐지기도 했으며, 수출 지향 경제모델을 가진 한국은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했다. 올해 초 두 나라가 극적인 합의에 이르렀으나 주요 교역국인 미국과 중국의 싸움은 한국 수출 전선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다는 것이 중론이다.

한일 경제전쟁도 터졌다. 일본이 지난해 8월 각의를 통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기로 결정한 후 당장 일본에 크게 위존하던 부품 및 소재 수급에 빨간불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 대법원의 징용공 판결 및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존폐 등 정치적 논란을 겪으며 지금까지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2000년이 시작된 후 20년이 지났으나, 한국경제는 체감상 200년의 세월을 보낸 것처럼 격렬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 출처=이코노믹리뷰DB
▲ 출처=이코노믹리뷰DB

 

코로나19, 그리고 한국경제

외환위기의 여파가 이어지던 2000년 밀레니엄의 우려와 기대 속에서 시작된 한국경제 20년은, 올해 또 한 번 최악의 실험대에 섰다. 바로 코로나19 변수다.

중국 우한에서 처음 발병된 코로나19는 글로벌 경제위기의 신호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각 국은 전염병 우려에 문을 걷어 닫았으며, 글로벌 교역망은 사실상 마비됐다. 경제학자들은 지금의 시대를 초불확실성(Hyper uncertainty)의 ‘뉴 앱노멀(Newabnormal)’의 시대로 정의하기 시작했다. 제조 현장은 속속 셧다운 됐고 유통도 마비됐다. 고객은 지갑을 닫았으며 돈의 흐름 자체가 막혀버렸다. 한국은 물론 각 국이 공격적인 양적완화를 통해 위기에 대응하고 있으나 경제의 성장엔진은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는 분위기다.

물론 한국경제의 기초체력은 2000년과는 몰라보게 강해졌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실제 1인당 실질 국민소득은 2000년 1만4989달러에서 2018년 2만6324달러로 늘어났고 경제 규모는 2000년 820조8000억원에서 2019년 기준1597조5000억원 2배 커졌다.

그러나 코로나19라는 복병이 나타나며 한국경제의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이 커지는 장면이 우려스럽다. 실제로 국회 정책예산처 경제분석국에 따르면 지난 2월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3%에서 2.1%로 하향했으며 국회정책예산처는 3월 1.6%의 경제성장 전망을 예상한 바 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국내는 물론 세계 전역으로 확장되자 이제는 마이너스 성장이 당연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국경제의 경우 노무라증권은 -6.7%, 모건스탠리는 -1%, 피티는 -0.2%의 전망치를 내놨으며 최근에는 그 하락전망폭이 더 커지고 있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경제위기를 거치며 한국경제의 면역력이 이미 취약해진 대목도 눈길을 끈다. 실제로 한경연에 따르면 명목 GDP에서 민간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54.5%에서 지난해 48.0%로 6.5%포인트 감소했으며 정부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10.9%에서 지난해 16.1%로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민간소비가 줄어드는 가운데 정부소비가 전체 경기를 떠받치는 기현상이다.

국내 GDP 10억원 당 취업자 수는 2000년 25.8명에서 2018년 16.8명으로 감소하기도 했다. 이러한 기형적 경제구조가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아 크게 휘청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이는 2분기, 상황은 더 암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수출 전선에 이상기류가 감돌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코로나19가 본격화함에 따라 글로벌 수요 위축, 조업일수 감소, 역기저효과 등의 요인으로 4월 수출이 지난해 같은 달보다 24.3% 감소한 369억2000만달러에 그쳤다고 발표했다. 반도체, 석유제품, 자동차, 선박 등 주력 수출품목들이 모두 마이너스 실적을 기록했고, 주요 9개 지역으로의 수출도 모두 감소했다. 2012년 1월 이후 8년 2개월 동안 이어지던 무역수지 흑자도 행진을 멈추고 적자로 돌아서는 충격적인 성적표다.

수출액으로는 2016년 2월 359억3000만달러 이후 4년 3개월 만에 최소치이고, 감소폭으로는 역대 3위 규모다. 조업일수를 고려한 하루 평균 수출은 17.4% 감소했다.

출렁이는 국제유가도 변수로 부각되고 있다. 코로나19로 원유 수요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국제유가는 한때 마이너스를 기록할 정도로 최악의 면모를 보여주는 중이다. 이러한 현상이 미국 셰일가스 업계를 강타할 경우 새로운 금융위기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까지 국제유가는 롤러코스터를 타며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20년 한국경제의 상황이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신음하던 2000년의 상황에 뒤지지 않는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경기부양과 체질개선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평가다. 당장 기업투자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규제개혁 콘트롤 타워를 신설하고 SOC 투자 확대를 위한 다양한 가능성 타진이 이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른바 한국판 뉴딜 정책이다. 여기에 강력한 구조조정 및 공공 부문 개혁, 기업의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한 결단이 필요하다는 평가다. 항공 및 중공업 등 휘청이는 기간산업의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한 정부의 지원과 기업의 자구책 마련도 필요하다는 주장도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실장은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의 성공적 극복사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면서 “코로나 경제위기의 조기 극복을 위해서는 정부의 경기부양책과 경제 체질 개선을 위한 대책이 적시에 추진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시, 출발선

2000년부터 2020년에 이르기까지 한국경제는 20년의 세월을 지나며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다. 한강의 기적으로 대표되는 산업화 시대의 시련이 일종의 성장통이라면, 2020년의 한국경제는 불확실성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우주선의 운명과 닮았다. 덩치는 커지고 존재감은 강력해졌으나, 아직은 증명해야 할 것들이 더 많다.

2020년, 한국경제가 다시 출발선에 선 이유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말과 올해 초 한국경제의 찬란한 장면을 수놓던 창업 1세대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금, 한국경제는 새로운 도약을 꿈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