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일본 작가 니노미야 도모코(二ノ宮知子)가 2001년 연재를 시작해 큰 인기를 끈 클래식 음악 소재의 만화 <노다메 칸타빌레>는, 현지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여세를 몰아 한국에서도 <내일도 칸타빌레>라는 드라마로 만들어져 호평을 받은 바 있다. 

다만 소소한 잡음도 있었다. 특히 원작자인 니노니야 도모코가 <내일도 칸타빌레>의 주인공인 설내일(심은경 분)의 극중 자취방 이미지를 본인 SNS에 공유하며 "집이 참 넓다"는 시큰둥한 평가를 내려 눈길을 끈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다는 설정의 주인공인 설내일의 방이 너무나 아름답고 예쁘게 잘 꾸며진 것에 일침을 놓으며 드라마의 리얼리티를 지적한 셈이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사실 <내일도 칸타빌레>는 물론 지금까지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과 그 주변 환경을 보면 대부분 비슷한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극 설정으로 보면 당장 굶어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주인공의 방이 마치 재벌 2세처럼 으리으리하거나, 혹은 궁핍한 삶을 살면서도 명품백으로 치장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극의 리얼리티를 살리고 싶은 원작자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현상을 마냥 비판하기도 어렵다. 영화나 드라마를 시청하는 사람들은 콘텐츠를 통해 본인의 환상을 투영하며 이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기 때문이다. 굳이 돈과 시간을 쓰면서 현실세계의 적나라한 풍경을 화려한 미디어에서 만나고 싶을 사람은 거의 없다. 그냥 거울보면 된다.

▲ 사진=임형택 기자

스스로 묶이다?
사람들은 일상의 피곤함과 무료함을 떨쳐내기 위해 가상의 세계에 접속한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현실에서는 평범한 일반인에 불과하지만 게임속에서는 세계를 마왕의 공포에서 구하는 영웅이 될 수 있고, 역으로 모든 이들을 공포에 떨게 만드는 대마법사로 변신할 수 있다. 현실에서는 벌어지지 않을, 그러나 누구나 꿈꾸는 화려하고 흥미로운 세상을 즐기는 것. 이는 모든 콘텐츠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 기이한 현상이 포착되고 있다. 환상속에서 헤엄쳐야 할 게이머들이 스스로 자본주의의 노예를 자임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닌텐도 스위치 동물의 숲의 선풍적인 인기에 주목할 핑요가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트렌드가 확산되며 인기가 높아졌다지만, 이러한 현상만으로는 어린이날을 맞아 아이들 핑계로 닌텐도 스위치를 구매해 동물의 숲을 즐기려는 이 땅의 많은 아버지들이 가진 음흉한 야망을 이해하기는 부족하다. 

실제로 동물의 숲은 이해하기 어려운 게임이다. 힐링을 전면에 걸었다지만 진짜 힐링을 하려면 템플스테이를 가야지, 왜 전자파가 득실거리는 전화기기를 붙잡고 있겠는가. 게임이 재미있다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것 투성이다. 기괴한 농담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고약한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무인도로 건너가 일을 하고 돈을 벌어 입에 풀칠하며 연명하는 게임이라니. 심지어 이 과정에서 현실에서도 지긋지긋하게 시달리는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다니.

▲ 사진=임형택 기자

이제는 전설로 남은 리니지의 바츠 해방전선 사건도 마찬가지다. 현실에서도 지긋지긋하게 싸우는 이들이, 왜 게임에서도 지긋지긋하게 싸우려 할까.

사실 동물의 숲과 비슷한 종류의 가상현실, 즉 굳이 가상세계에서도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는 평범한 플랫폼은 여러개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세컨드라이프다. 2003년에 출시된 세컨드라이프는 게임 내 사이버머니, 개인적 관계는 물론 사업까지 할 수 있는 자유도로 주목을 받았으며 말 그대로 또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에 성공했다. 사람들은 세컨드라이프에 접속해 일상의 생활을 기꺼이 재연했고, 심지어 IBM과 같은 현실의 대기업이 세컨드라이프에 분점을 내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세컨드라이프는 실패했다는 점이다. 물론 동물의 숲도 언젠가는 그 인기가 시들해질 수 있겠으나 세컨드라이프와 동물의 숲의 희비를 가른 결정적인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도대체 무엇이 달랐던 것일까? 기술적 완성도, 시대의 흐름 등 다양한 이유가 거론되는 가운데 특히 '고난의 강도'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쉽게 말해 세컨드라이프는 자유도가 높은 또 다른 세상을 펼쳤으나, 말 그대로 자유도만 높을 뿐 고객이 무언가를 하기에는 동기가 크게 부족했다. 세컨드라이프는 고객에게 처음부터 뚜렷한 목표를 던져주지 않고 사람을 만나라는 조언만 했고, 이는 곧 동기의 결핍을 불러와 플랫폼 지속도가 낮아졌다는 평가다. 그러나 동물의 숲은 다르다. 접속과 동시에 무인도로 날아가 당장 지긋지긋한 생존의 투쟁을 벌여야 하며 소위 '개처럼 일해야 한다' 동물의 숲이 현실세계의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는 것을 강조한 것이 오히려 게이머들의 동기를 강화했다는 뜻이다.

이러한 동기는 피곤한 일상을 게임에서도 반복해야 한다는 점에서 얼핏 게임 지속성의 약점으로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어차피 게이머들은 안다. 게임에 접속한 것도 본인의 의지며 게임을 유지하는 것도 본인의 의지기에 동물의 숲이라는 세계와의 연결고리는 언제든 끊을 수 있다는 것을. 이런 상황에서 현실세계의 지긋지긋함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이를 놀이의 대상으로 삼아버리는 현상이 주목을 받고 있다. '섬에 갇혀 죽어라 일하다 쫒겨난 썰' '섬에 갇혀 명령에 맞춰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한 후 특정 정치인을 찬양한 후 탈출한 썰'들은 일종의 유희 콘텐츠, 2차 콘텐츠가 되어 씁쓸한 카타르시스를 던져준다. 사람들은 일상의 지긋지긋함을 굳이 게임에서 만나고 싶어하지 않지만, 특정 상황에서는 오히려 이를 즐기며 게임을 진행시킬 동기로 받아들인다.

▲ 출처=젠리

젠리, 그리고 제페토
이러한 현상은 비단 게임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10대들의 인싸템인 젠리의 경우도 대다수의 성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10대 특유의 문화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는 스스로를 묶어두는 구속의 플랫폼이 오히려 플랫폼의 지속성을 담보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직장인들은 본인의 위치가 주변에 공유된다면 질겁하겠지만, 10대들은 몰려다니며 위치를 인증하고 친목을 스스로 증명한다. 여기에 '인싸'가 되고싶은 열망이 덧대어진다는 설명이다. 

결론적으로 젠리는 특별한 생산성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고 딱히 정의내리기도 어려운 플랫폼이다. 서비스도 기존의 SNS 등 다양한 앱 서비스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다른 플랫폼의 서비스에서 기성세대는 쉽게 선택하지 않는, 대신 10대들이 원하는 서비스만 쏙쏙 빼와 하나로 뭉쳐놓은 분위기다.

제페토도 마찬가지다. 네이버제트의 글로벌 증강현실 서비스 제페토가 공개한 제페토 스튜디오가 지난 3월 오픈된 가운데, 제페토는 일종의 크리에이터 플랫폼으로 발전했다. 이들이 직접 판매 등록한 아이템만 약 2만 여 종 이상이며 이는 그동안 제페토 자체적으로 제공하고 있었던 아이템 수량을 상회한다는 설명이다. 최고 월 300만 원의 이상의 순수익을 올린 창작자가 나타나기도 했다. 크리에이터 ‘lenge렌지’가 인어, 날개, 거북이 등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든 자신만의 패션 아이템은 팬들로부터 호평과 기대를 동시에 받고 있다.

재미있는 장면은 제페토의 방식이다. 굳이 가상의 세계에서, 그것도 10대들이 용돈을 쪼개어 아이템을 구입하고 이를 자랑하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싸이월드 아바타를 기억하는 지금의 3040 세대는 나름 이해할 수 있는 인식이지만, 제페토의 방식은 가상의 나에 과감한 투자를 하는 10대의 동기와, 이를 통해 비즈니스를 하려는 크리에이터의 공존이 어우러지는 기묘한 공간인 것은 분명하다.

▲ 출처=제페토

메타버스, 지긋지긋함과 만나다
최근 5G와 함께 가상현실 및 증강현실 기술이 등장하며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포스트 코로나19를 대비하기 위한 다양한 플랫폼이 등장하는 가운데 메타버스는 새로운 플랫폼 전략으로 각광받는 중이다. 이제 BTS와 SM엔터테인먼트의 가수들이 온라인 공연을 진행하고, 게임 포트나이트가 콘서트를 여는 시대다.

이 지점에서 메타버스에 임하는 전략 중 하나로 일상과의 긴밀한 연결고리가 돋보이고 있다. 이는 단순한 온오프라인의 만남이 아니라, 일상세계를 가상의 세계에 투영하며 이를 플랫폼 지속성의 무기로 삼는 한편 일종의 유희화시키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제 가상의 현실도 마냥 자유로움과 상상력을 전제할 필요가 없어지고 있다. 현실의 지긋지긋함을 무기로 삼아 플랫폼의 지속성의 동기로 삼고, 이를 갖고 노는 흥미로운 문화현상이 선명해지고 있다. 사람들은 기꺼이 현실과 가상을 동일선상에 두고, 마음껏 즐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