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 위치한 J아파트 인근 자원회수시설(소각장). 서울시는 「폐기물처리시설 설치촉진 및 주변지역지원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소각장 반경 300m 내 간접 영향권에 주민지원기금(이하 소각장 기금)을 지급한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이소현 기자

[이코노믹리뷰=박민규·이소현 기자] 서울 노원구 중계동 소재 J아파트에서 '자동문 및 주차 차단기 설치' 문제를 계기로 입주민과 입주자대표회의(이하 입대위) 간 갈등이 본격화된 가운데, 입주민들은 해당 사업을 비롯한 다수 공사의 비용이 서울시 자원회수시설(소각장)에서 지급하는 주민지원기금(이하 소각장 기금)으로 충당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J아파트 내 공사들이 주로 수의계약으로 성사된 점 등 계약 내용의 법적 정당성을 쟁점으로 양쪽은 극명한 입장 차를 보이며 팽팽히 대립 중이다.


 수상한 공사 계약 내역서…"시공 업체와 짜고 친 판 아니냐"


▲ J아파트 입주민들이 노원 자원회수시설과 공동주택관리정보시스템(K-apt)에서 열람한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한 자료. 사진=이코노믹리뷰 박민규 기자

자동문 및 주차 차단기 설치 공사의 계약 시점인 지난 2018년 J아파트의 공사 계약 형태는 모두 '수의계약'이다. 경쟁계약이 가장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는 상대를 가릴 수 있는 방식인 반면, 수의계약은 임의로 상대를 선정해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따라서 잇따른 수의계약은 과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에 대한 의문은 물론, 업체와의 유착 의혹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다.

원칙대로라면 입대위가 주택관리업자나 공사 및 용역 사업자를 선정하는 경우 일반·제한 경쟁입찰 방식을 택해야 한다. 공동주택관리법의 행정규칙인 '주택관리업자 및 사업자 선정지침'과 J아파트의 관리규약 모두 이를 명시한다. 통상적으로 아파트 사업의 수의계약은 공산품 구입이거나 거래금액이 300만원 이하일 때, 경쟁입찰이 2회 이상 유찰된 경우 등에 한한다.

입주민들은 2018년 공사 계약 15건 가운데 300만원 이하 금액대의 공사 외에는 수의계약 대상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며 '불법성'을 제기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입대위가 수의계약을 취하기 위해 그동안 고의로 경쟁입찰의 유찰을 유도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나왔다. 이와 관련, 노원구 아파트 연합회장은 "실제로 다수 아파트들에서 관행처럼 벌어지는 꼼수"라고 귀띔했다.

한편, 계약일자가 의결일자보다 앞서는 몇몇 공사들에 논란은 더욱 가중됐다. J아파트 비상대책위원회는 이 대목을 공사 사업자 선정에 입대위와 업체 간 유착 비리가 있었던 증거로 꼽았다.

덩달아 자동문 및 주차 차단기 시공 업체인 T사와의 유착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T사는 J아파트로부터 자동문 및 주차 차단기 설치 포함 공사 3개를 2018년 10월부터 12월까지 한 달 간격으로 연달아 수주했다. 모두 수의계약으로 이뤄졌으며, 300만원 이하 규모의 케이블 선로 포설 공사를 제외해도 해당 업체가 벌어들인 수익은 7억7000만원이 넘는다. 주민 A씨는 "굳이 의정부에 있는 소규모 업체와 계약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며, 입대위에 수의계약 의결 및 업체 선정 내용이 담긴 회의록을 공개할 것을 요청했다. 


 입대위 "수의계약, 입주민 위한 것"…'선계약 후의결' 문제는?


공사 계약에 대한 논란에 입대위는 입주민들의 '착오'가 있다고 항변했다. 입대위 회장은 "지난해 '수의계약 해도 된다'는데 주민 83.5%의 동의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입대위는 자원회수시설 기금 미지급 문제로 주민들에게 '주민지원금 지급 요청 동의서'를 돌렸으며, 이때 수의계약 진행 사실을 공표했다는 것이다.

또 입대위 측은 수의계약이 '비용 절감'을 위한 방법이었다고 주장한다. J아파트 관리사무소장도 "수의계약이어도 여러 업체의 견적서를 받아서 그 중 가장 저렴한 가격을 제시한 업체를 고른다"며 "이후 (선정업체가 견적 낸) 가격을 2번 정도 더 깎는데, 입찰의 경우 당시 설정된 가격을 다시 못바꾸지 않느냐"고 설명했다. 결국 이러한 과정을 통해 형성된 가격이 경쟁입찰에서 도출된 금액보다 더 낮을 수 있다는 논리다. 그는 "(입대위) 회장님의 생각은 나쁜 돈, 검은 돈은 안 받고 입주민들을 위해 공사 비용을 줄이는 것"이라고 전했다.

수의계약을 두고 공동주택관리법을 위반한 불법 행위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전면 반박이 이어졌다. 공사 비용의 출처가 관리비, 즉 입주민의 주머니에서 나온 자금이 아니므로 이 경우 수의계약 형태로만 사업을 진행해도 문제 삼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서울시 자원순환과 관계자는 "현행법상 (소각장 기금으로 공사할 경우) 수의계약에 법적 제재를 가할 근거가 아직 없는 것으로 안다"면서 "소각장 기금은 시에서 나오지만 이를 활용한 사업 집행은 민간의 소관이라, 자금의 성격이 애매해졌다"고 언급했다. 다만 이러한 법적 모호성으로 인한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 소각장 기금 예산 심의·집행 기구인 주민지원협의체에 앞으로 기금을 100% 관리비 명목으로만 지급하도록 권고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수의계약의 불법 여부를 떠나 명백히 문제가 되는 부분이 남아있다. 바로 '선계약 후의결'이다. 입주민의 의견을 수집하는 민주적 절차를 누락했을 뿐만 아니라, 입대위의 정식 단계마저 무시한 정황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기자의 설명 요청에 입대위 회장은 거듭 "관리소장과 이야기하라"며 언급을 피했다. 관리소장은 "여러 사유가 있을 수 있다"면서 "기재된 의결일이 (공사 결정 의결이 아니라) 계약 확인 의결 날짜일 수 있다"고 해명하는 한편, "나는 (올해) 3월에 온 사람이라 당시 일은 회의록을 봐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각장 기금 혼선, 시울시 "주민협의체 따라야"···입대위 "사용처 변경 요구 수용해야"


이런 가운데 소각장 기금의 운용과 집행 주체가 엇갈려 혼란을 키우는 형국이다. 소각장 기금과 관련된 문제가 발생한 경우 아파트 입주민은 최소한 세 곳의 지자체 또는 단체를 거쳐야 한다.

우선 J아파트의 소각장 기금 문제는 노원구가 개입하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아파트 입대위와 입주민 간의 분쟁이 발생한 경우 자치구에서 해결한다. 다만 J아파트의 소각장 기금은 서울시 소관으로 노원구의 업무 영역에서 제외된다. 

그러나 서울시가 기금을 완전히 관리하는 것도 아니다. 서울시는 주민협의체와 함께 1년에 한 번 정기회의를 진행하는 '운용협의회'에 참여해 한해 기금 사용의 큰 틀을 결정하지만 이외의 세부적인 사용계획은 주민협의체의 의견을 반영한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자원순환과 관계자는 "(소각장 기금은) 주민지원협의체에서 결정해서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관여하지 않고 있다"면서 "자원순환과에서 (자세한 내역에 관해) 개입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다"고 말했다.

때문에 기금 집행에 혼선이 발생하고 있다. 시와 주민협의체가 참여하는 운용협의회를 통해 기금 사용계획을 확정하면, 추후 이를 변경하기 위해서는 운용협의회를 거쳐 서울시장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입대위는 소각장 기금의 집행 권한은 주민협의체가 아닌 입대위에 있다고 주장하며, 운용 계획 변경 신청을 수용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특히 수의계약 문제와 관련해 시에서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으며, 주민의 동의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입대위는 지난달 23일 회의결과 공고를 통해 “노원자원회수시설 주민지원기금(소각장 기금)의 사용권한은 입주자대표회의에 있다”면서 “1층에 샷시 설치 , 2020년 사업계획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 당 아파트에 피해를 주는 행위 및 변호사 자문을 받아 기 의결에 따라 진행하기로 전원 찬성한다”고 발표했다.

반면 비대위는 주민협의체의 결정을 입대위가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비대위 공동위원 B씨는 “올해 소각장 기금은 100% 관리비로 사용한다고 (주민협의체가) 결정했다”면서 “그러나 입대위는 시종일관 70%만 관리비로 사용하고 30%는 공사비로 사용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올해 사용하지 않아 다음해로 이월되는 기금 30%는 차후 공사비로 사용될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아파트 주민 의견 묵살? 입대위 "입주민 위해 일해, 당혹스럽다"


▲ 사진=비대위

소각장 기금을 둘러싸고 논란이 가중되는 가운데, 본지가 앞서 보도한 [출동! 이슈팀] 입주민은 호구(虎口)가 아니다①편에서 입주민들이 제기한 문제점들에 대해 입대위 측은 "오해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해명했다.  

현재 비대위는 입대위 회장의 해임을 추진하기 위해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지난 6일 발족식을 가진 비대위는 “주민들의 알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면서 “그간의 무관심을 돌아본다”고 밝혔다. 비대위는 소각장 기금 문제와 더불어 ▲ 아파트 공동현관·주자차차딘기 설치의 문제점 ▲ 입주자대표회의의 방청거부 ▲ 회의 자료 등 열람(복사)를 거부한 점 등으로 입대위에 항의하기 위해 주민 동의를 받는 중이다.

그러나 입대위 회장은 "관리사무소에 오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면서 "알 권리에 관해서도 관리규약을 지키며 요구도 따랐다"고 밝혔다. 

우선 입대위 회장은 입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주차차단기를 양방향으로 설치할 경우 안전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도로의 폭이 무척 좁아 입출차를 모두 허용하면 추돌한다"면서 "차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후진 공간도 부족하다"고 전했다. 아파트 내 어린이 놀이터를 주차장으로 만들어 주차 공간을 확보하려 했으나, 주민 반발이 있었다고도 덧붙였다.

그는 또 공동현관과 관련해서도 시공사의 착오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입대위가 접촉한 시공사 직원마다 설명이 제각기 달랐다는 것이다. 시공사가 물품을 분실한 것과 관련해서는 “보관하고 있는지도 몰랐던 물품들이 분실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입대위는 입주자들의 알 권리를 최대한 보장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4월말 입주민의 방청 신청을 거듭 거부한 까닭은 "코로나19로 인해 노원구에서 입대위 회의를 자제하라는 권고가 내려와서였다"고 말했다. 입대위 회의록을 전달받지 못했다는 비대위의 입장에 대해서는 "관리 규약상 (요약된) 회의록을 모두 제출했다"고 주장했다. J아파트 관리규약에 따라 회의 안건과 의결 결과를 요약한 회의록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소각장 기금이란?

J아파트는 올해 노원구 소각장 기금 약 140억원 가운데 30억원 남짓을 지급받는다. 해마다 2000톤이 넘는 생활 쓰레기를 소각하는 서울시는 주민 보상금 성격으로 소각장 기금을 운용한다. 소각장 기금은 폐기물처리시설 설치촉진 및 주변지역 지원 등에 관한 법령, 서울특별시 자원회수관련시설 주변지역 지원기금 조례와 시행규칙에 따라 조성된다.

입대위는 아파트 환경개선을 위해 소각장 기금 일부를 위탁받아 집적 집행한다. 아파트에 지급되는 소각장 기금을 사용해 시공사 등과 계약을 맺고 이를 확인하는 역할을 맡는다. 다만 입대위는 기금을 직접 운용하지 않으며, 매달 주민협의체를 통해 이를 지급 받는다.  

주민협의체는 각 아파트의 전반적인 의견을 모으고, 기금을 지급하는 역할을 한다. 노원구 소각장 기금을 받는 공동주택은 총 5곳으로, 이곳의 입대위는 한해 예산안을 주민협의체에 제출한다. 주민협의체는 이를 바탕으로 기금 운용협의회에 참여한다.

시와 구, 주민협의체가 모두 참여하는 운용협의회는 매년 10월 정기회의를 1회 갖는다. 이를 통해 한해 기금 사용을 결산하고, 운용계획서를 결정한다. 주민협의체는 이를 위해 사업계획서와 회의록을 제출해야 한다. 

한편, 기금 운용계획을 추후 변경하려면 시장의 승인이 필요하다. 또한 주민협의체의 요청에 따라 기금이 지급되고 집행됐다고 하더라도, 기금이 부적합하게 사용된 때에는 서울시장이 지급을 취소하고 회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