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정부의 아마추어적인 경제정책이 극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하나의 정책을 추진하며 일부의 문제점을 발견할 경우 유연한 대응을 통해 ‘핀셋조정’에 나서도 될 것을, 아예 판을 뒤집어버리는 독특한 접근방식을 보여줘 눈길을 끈다. 초가집에 빈대가 나왔는데, 빈대를 잡겠다고 초가집은 물론 마을 전체를 태워버리는 격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긴급재난지원금 정책이다. 막대한 재원이 투입되는 실험적인 정책이라 조심스럽게 경우의 수를 따지는 것은 맞지만, 발생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의 취지를 뒤엎는 괴이한 전략을 보이는 점은 빈축을 사고 있다.

실제로 정부는 국민 100%에게 지원금을 제공해 경기부양에 나서기로 결정했으면서, 소득 상위 30%를 대상으로 지원금 신청을 하지 말아줄 것을 ‘간곡히’ 요청하고 있다. 나라살림의 부담을 덜어내야 한다는 의지는 이해되지만 정부 정책에 기부라는 형태의 선의를 기대하는 것은 그 자체로 아마추어리즘의 극치라는 말이 나온다. 나아가 그 선의를 보여주지 않은 이들에게 은근한 압박을 주는 것은 할 말을 잃게 만드는, 형편없는 정책 감수성이다.

더 큰 문제는 지원금의 취지를 아예 비틀어버리는 장면이다.

11일 현재 지원금 신청이 시작된 가운데, 카드사들의 마케팅을 자제시키는 금융당국의 행보가 눈길을 끈다. 당초 카드사들은 지원금 신청에 맞춰 기프티콘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마케팅을 준비했으나, 금융위원회가 직접 나서 마케팅 및 판촉행사를 자제시키며 논란이 커지고 있다. 카드사들의 과당경쟁이 우려스럽다는 설명이지만, 당초 재난금의 취지가 단순히 돈을 푸는 것이 아니라 돈이 돌도록 하는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당혹스럽다.

실제로 카드사가 지원금 신청을 기점으로 자사의 자본으로 많은 판촉행사를 하면 지원금의 원래 취지인 ‘돈이 도는 현상’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정부는 단순히 과당경쟁이 우려스럽다는 이유로 지원금의 원래 취지인 ‘돈이 도는 현상’을 스스로 막아버리고 있다. 정부가 거룩한 ‘시혜’를 했으니 나머지는 온전히 따라가기만 하라는 것인가.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국가 미래 비전인 ICT 사업도 마찬가지다. 'n번방 방지법'으로 불리는 전기통신사업법 및 정보통신망법 일부개정법률안이 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해 법제사법위원회 심사와 본회의를 남겨둔 가운데, 이 법이 당초 취지인 끔찍한 디지털 성범죄를 막는 것을 떠나 국내 인터넷 시장 전체를 파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해당 개정안은 국민적 공분을 자아낸 n번방 사건과 같은 비극을 막기위해 정부의 감시의무를 강화한 것이 골자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해당 개정안이 당초 n번방 사건을 막자는 취지와는 달리, 부가통신사업자 대상의 불법촬영물등 유통방지 의무 조항의 경우 텔레그램과 같은 해외 사업자에 대한 규제집행력이 전혀 없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나아가 다크웹의 패킷 전달 경로인 통신사의 책무는 전혀 규정하고 있지 않는 등 허점도 많다.

즉, n번방과 같은 비극을 막고자 발의된 개정안이 졸속 입법과정을 거치면서 막상 n번방 사고 재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국내 인터넷 사업자만 ‘잡아 족치는 법’이 됐다는 뜻이다.

음지에서 암약하는 'n번방 빈대'를 잡으려, 정부는 국내 인터넷 사업 전체에 불을 지르려고 한다는 비판이 쇄도하고 있다. 이에 사단법인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체감규제포럼,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벤처기업협회는 “전기통신사업법, 정보통신망법, 방송통신발전기본법 등 쟁점 법안의 졸속처리를 당장 중단하라”면서 “이해관계자, 전문가, 산업계, 이용자 등의 의견을 적극 청취하고 사회적, 경제적 영향평가 등을 충분히 거친 후 법안이 처리될 수 있도록 쟁점법안의 처리를 21대 국회로 넘겨라”고 주장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정부의 정책을 두고 ‘큰 그림’을 봐야 한다는 조언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최소한 경제정책에 있어 세밀한 핸들링을 보여주지 못했고, 또 큰 그림을 그리는 것에 불안한 모습을 보인 것이 사실이다. 이대로 가다 태워먹을 마을도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최소한의 정책적 고려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