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강수지 기자] 우리나라의 금융 산업은 일본의 영향을 받으며 태동했다. 1878년 6월 최초의 근대적 은행점포인 ‘(일본)제일은행 부산지점’이 개설되면서부터다. 13년 뒤인 1891년 1월에는 일본의 보험회사인 ‘제국생명’이 우리나라에 최초의 보험회사 지점인 부산지점을 개설했다.

그로부터 5년이 흐른 1896년 우리나라는 드디어 최초의 근대적 민간은행 ‘조선은행’을 설립한다. 다음해인 1897년 2월에는 국내 민간자본을 중심으로 한 ‘한성은행’을 세운다. 한성은행은 현재 신한은행과 통합된 조흥은행의 전신이다. 2년 뒤인 1899년 1월에는 대한천일은행을 설립하는데, 그로부터 무려 121년이 지난 2020년 ‘우리은행’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살아있다. 대한천일은행은 한국상업은행이 된 뒤 한일은행과 합병해 한빛은행으로 출범했으며, 2002년 지금의 우리은행으로 재탄생했다.

그러나 1902년 6월 최초의 은행권을 (일본)제일은행이 발행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1905년 6월에는 (일본)제일은행이 ‘국고증권조례’를 공포하고 최초의 단기국채를 발행했다. 아직 우리나라의 금융 산업에 일본이 깊게 들어와 있던 때다.

이후 7년 뒤인 1909년 10월 우리나라는 (일본)제일은행 대신 중앙은행의 기능을 수행할 ‘한국은행’을 설립하게 된다. 이후 조선은행으로 명칭을 변경했다가, 1950년 6월 강력한 권한과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되는 중앙은행인 새로운 한국은행으로 재탄생시킨다. 이후 1918년 6월 산업은행의 전신인 ‘조선식산은행’을, 1921년 1월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손해보험회사인 ‘조선화재해상보험’을 설립한다. 이후 1932년 1월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공식적 증권시장인 ‘조선취인소’가 탄생한다.

현대적 금융제도 도입의 시작

이 같은 금융 산업의 태동기를 거쳐 우리나라는 1945년 6월 일본의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임박에 따라 일본인들의 자금인출 사태가 발생하자, 현대적 금융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한다. 1946년부터 1959년까지 국채법을 제정하고, 경제안정 15원칙을 결정한 것은 물론 IMF(국제통화기금)와 IBRD(국제부흥개발은행)에 가입하는 등 갖가지의 필요한 금융제도들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후 1960년부터 1979년까지 우리나라는 금융 산업의 기반을 조성하고, 1980년부터 1996년 사이 우리나라의 금융 산업은 눈부시게 발전한다. 1986년 6월에는 거래소 상장주식의 시가총액 10조원, 주식거래대금 5조원을 돌파하는가 하면, 1987년 8월에는 종합주가지수 500포인트를 돌파한다. 2년 뒤인 1989년 3월에는 상장주식 시가총액 70조원을, 주가지수 1000포인트를 돌파하게 된다.

IMF, 금융 산업의 구조조정

그러나 이 같은 기쁨도 잠시 1997년부터 2002년까지 우리나라의 금융 산업은 구조조정기를 갖게 된다. 1997년 1월 재계서열 14위인 한보그룹의 부도가 그 시작이다. 같은 해 7월에는 재계서열 7위인 기아그룹이 부도를 맞는다. 결국 정부는 같은 해 11월 IMF에 긴급구제금융 지원을 요청했다.

1997년 12월 정부와 IMF는 총 570억달러 규모의 자금지원안에 합의한다. 이후 경남·경일·고려·삼삼·신세계·쌍용·청솔·항도·항솔·나라·대한·신한·한화·중앙종금 등의 14개 종금사는 영업이 정지된다. 고려·동서증권과 신세기투자신탁도 마찬가지다. 1998년 2월에는 6개의 은행이 경영개선조치를 요구받고, 다른 6개의 은행은 경영개선권고를 받았다. 심지어 10개의 종합금융회사는 영업인가가 취소되기도 했다. 이후 6월에는 동화·동남·대동·충청·경기은행 등 5개의 부실은행이 퇴출됐다. 고려·동서증권의 경우는 증권업 허가가 취소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8월에는 생명보험회사 4개가 퇴출되기도 했다. 이후 한동안 증권업 허가가 취소되는 증권사들이 속출했고 2000년 4월 주식시장 사상 첫 서킷브레이커(매매거래일시중단)가 발동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 산업의 국제화

우리나라의 금융 산업은 이렇게 뼈아픈 구조조정의 시기를 지나 2002년부터 2008년까지 국제화 추진작업에 들어간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가 찾아왔다.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뱅크하우스 서울지점 등은 일부 영업정지되기도 했다. 같은 해 10월 한국은행과 FRB(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중추적 기관) 간에는 30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왑계약이 체결된다. 우리나라는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고자 은행의 원화유동성비율제도를 개선하는가 하면 예금자보호법시행령을 개정하면서 외화예금을 예금자보호대상에 추가하기도 했다. 이렇게 글로벌 금융위기는 점차 해결됐다. 2012년 9월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은 피치(세계적인 신용평가회사)의 경우 A+에서 AA-로 떨어졌지만, S&P는 A를 A+로 상향 조정했다.

 

동양사태‧카드사 개인정보 유출의 아픔

이후 2013년 우리나라는 동양사태와 카드사 정보유출 사건 등을 겪으며 또 다시 아픔을 겪는다. 이 때문에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우리나라 금융 산업은 소비자중심의 금융 패러다임을 확립하게 된다. 2013년 발생한 동양사태는 동양증권의 무분별한 후순위채권(CP) 판매로 일반 투자자들이 큰 손실은 입어 사회적으로 문제가 컸었다. 2014년 발생한 카드사들의 고객정보유출 사건 또한 금융 시장과 함께 금융 소비자들을 뒤흔들어 놓으며 개인 정보의 중요성을 일깨워줬다. 당시 KB국민카드와 NH농협카드, 롯데카드 등은 업무정지 처분을 받았다.

이 같은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우리나라의 금융 산업은 금융교육의 중요성을 실감한다. 2015년 금융감독원은 ‘1사(社)1교(校) 금융교육’ 전개에 나서며, ‘가계부채 종합 관리방안’도 마련한다. 당시 1사1교 금융교육 신청 학교는 4000개교를 돌파했다. 또 같은 해 우리나라 금융 산업에서는 최초의 인터넷 전문은행 ‘한국카카오은행’과 ‘케이뱅크은행’에 대한 예비인가가 떨어지고, 이후 제1호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 은행이 은행업 인가를 받는다. 이밖에 당시에는 소비자들을 위한 갖가지 정책들이 마련됐다.

함께 고민해야 할 금융 산업의 질적 성장

2018년부터 2020년인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금융 산업은 질적 성장을 추진하고 있다. 금융권의 블록체인 기술 활성화 지원방안을 마련하는가 하면, AI(인공지능)를 활용한 전자금융 사기 방지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등 질적인 성장을 고민 중이다.

우리의 실생활과 밀접한 금융. 이젠 밀접하다 못해 손 안에서 모든 게 해결되는 시대다. 늘 손에 쥐고 다니는 휴대폰에 손가락만 까딱하면 지문을 통해 돈이 왔다 갔다 한다. 금융 산업이 질적으로 달라졌다. 소비자들에게 더 가깝고 편리해진 금융 시스템만큼 소비자들을 보호할 만한 장치들도 계속 더 마련돼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금융 산업이 이렇게 발전해가는 만큼 예상치 못한 부작용도 나타나기 마련이다. 우리나라 금융 산업의 발전은 물론 이를 잘 이용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적응해나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