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지웅 기자] 다국적 제약사 사노피의 갑작스러운 변심에 한미약품이 충격에 휩싸였다. 지난 14일 사노피가 한미약품에 당뇨병 신약 '에페글레나타이드'의 권리를 반환하겠다는 의향을 전달했기 때문이다.

양사는 계약에 따라 120일간의 협의를 거친 뒤 권리반환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그러나 사노피의 관리하에 글로벌 임상 3상을 진행 중인 '에페글레나타이드' 행보에 적신호가 켜졌다.

아울러 한미약품은 협의 결과에 따라 기술수출 강자라는 명성에 오점을 남길 공산이 크다. 이 회사는 지금까지 체결한 10건의 기술수출 계약 가운데 4건이 파기되는 불운을 겪었다. 추후 에페글레나타이드마저 권리 반환된다면 한미약품의 신약 개발에 대한 믿음이 크게 꺾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한미약품은 파트너사 사노피가 당뇨 신약 '에페글레나타이드'의 권리를 반환하겠다는 의향을 통보했다고 15일 밝혔다. 출처=한미약품

사노피는 왜 변심했나

에페글레나타이드는 한미약품이 자체 개발한 '랩스커버리' 플랫폼 기술을 적용해 투여 주기를 주 1회에서 최장 월 1회까지 늘린 GLP-1 계열의 당뇨치료제다.

한미약품은 지난 2015년 11월 사노피에 에페글레나타이드를 포함한 당뇨 신약 후보물질 3종을 39억 유로에 기술수출한 바 있다. 하지만 사노피는 2016년 주 1회 투여 제형으로 개발 중인 '지속형 인슐린(LAPSInsulin115)'과 '인슐린 콤보(LAPS-Insulin Combo)' 등 2종을 한미약품에 반환했다. 마지막으로 하나 남은 에페글레나타이드도 기술수출 이후 임상시험이 지연되고, 계약 내용이 수정되는 등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권리 반환에 대한 우려를 자아냈다.

결국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애초 임상 3상까지 완료하겠다던 사노피가 변심하면서 한미약품은 대응을 고심하고 있다.

한미약품은 일단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에페글레나타이드의 글로벌 임상 3상을 완료하는 방안을 사노피와 협의하고, 새로운 글로벌 파트너사를 물색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필요에 따라 손해배상 소송 등을 포함한 법적 절차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에페글레나이타드의 유효성, 안전성과 무관한 사노피의 일방적 결정일 뿐”이라면서 “라이선스 아웃 전략 기반의 신약개발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변수 중 하나이지만 사노피가 그동안 공언해 온 ‘글로벌 임상 3상 완료’에 대한 약속을 지키리라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한미약품이 120일간의 협의를 통해 사노피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사노피를 설득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분석했다. 사노피는 지난해 9월 최고경영자(CEO)를 폴 허드슨으로 교체하면서 전체 R&D 전략을 암, 희귀질환, 혈액질환, 심혈관질환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미 한미약품에 전달한 계약금 2억 유로(약 2643억원)와 투자한 R&D 비용을 모두 포기할 만큼 당뇨병 치료제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진 모습이다.

또 에페글레나타이드 경쟁 약물인 '리벨서스'의 등장도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리벨서스는 지난해 GLP-1 작용제 최초로 경구용 허가를 받은 당뇨병 치료제다. 사노피가 주사제인 에페글레나타이드 개발에 성공해도 리벨서스보다 시장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 경구용 GLP-1 Rybelsus 매출전망 출처=키움증권

랩스커버리 기반 바이오신약으로 위기 극복

하지만 쉽게 무너질 한미약품이 아니다. 이 회사는 이번 사노피의 권리반환 논란과 별개로 현재 진행 중인 랩스커버리 기반의 다양한 바이오신약 개발을 차질없이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한미약품은 현재 30여 개에 이르는 신약 파이프라인을 확보해 개발을 진행 중이다. 이중 약효를 늘려주는 플랫폼 기술인 ‘랩스커버리’ 기반 바이오신약 후보물질도 다수 보유하고 있다.

특히 랩스커버리가 적용된 호중구감소증치료 바이오신약 ‘롤론티스’는 지난해 말 미국 FDA에 시판허가를 신청했다. 올해 하반기쯤 미국에서 출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회사는 최근 롤론티스의 국내 허가도 진행했다.

한미약품이 비만치료제로 개발해온 ‘듀얼 아고니스트’는 약물 재창출을 통해 새로운 적응증 치료제로 개발되고 있다.

비알코올성지방간염(NASH) 치료제로 개발 중인 Glucagon/GIP/GLP-1 삼중작용제 ‘트리플  아고니스트’는 작년 FDA로부터 원발 경화성 담관염과 원발 담즙성 담관염 치료를 위한 희귀의약품으로 각각 지정됐다.

현재 임상 1상을 진행 중인 ‘글루카곤 아날로그’는 미국 FDA와 유럽 EMA로부터 선천성고인슐린증 희귀약으로 지정됐다. 또 지난달 말 EMA로부터 인슐린자가면역증후군 치료를 위한 희귀의약품 지정을 추가로 받았다.

▲ 한미약품이 개발중인 랩스커버리 기반 주요 혁신신약 파이프라인. 출처=한미약품

현재 랩스커버리가 적용된 바이오신약 중 FDA, EMA로부터 희귀약 지정을 받은 건수는 8건에 이른다. 한미약품은 해당 파이프라인에 대한 파트너링을 다수의 글로벌 제약사들과 협의 중이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랩스커버리 및 오라스커버리, 펜탐바디 등 자체개발 플랫폼 기술을 바탕으로 다양한 혁신신약 후보물질의 글로벌 임상을 진행 중”이라며 “여러 건의 반환 사례가 있었지만 한미약품은 여전히 로슈의 제넨텍, 스펙트럼, 아테넥스 등 경쟁력 있는 글로벌 기업들과 함께 신약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