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LG

[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2년 전 LG그룹(이하 LG) 선대 회장인 故구본무 회장의 급작스러운 별세로 구광모 회장은 만 40세라는 젊은 나이에 그룹 총수 자리에 올랐다. LG 총수일가의 엄격한 장자(長子) 우선 승계 원칙에 맞춰 구본무 회장의 아들로 양자 입적해 회장의 자리에 오른 복잡한 사정과 젊은 나이 때문에 재계는 한동안 구 회장의 입지를 걱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구광모 회장은 서두르지 않고 경영에 자신의 색을 녹여냄으로 자신의 역량을 증명하기 시작했다.

구광모 회장은 잘 알려진 것처럼 구본무 회장의 동생인 희성그룹 구본능 회장의 아들이다. 총수의 큰 아들을 무조건 경영승계 1순위로 정하는 LG 총수일가의 원칙대로라면 사실 구 회장은 총수의 자리에는 오를 수 없다. 그러나 1994년 구본무 회장의 장남인 故구원모 씨가 불의의 사고로 운명을 달리하면서 아들이 없었던 구본무 회장은 2004년 동생의 장남인 구광모 회장을 양자로 입적시켜 그룹의 차세대 경영자로 선택한다. 그로 인해 LG는 명목상으로나마 총수 일가의 원칙을 지켰다. 현업에서의 다양한 경험들을 총수의 역량으로 생각하는 그룹의 전통에 따라 구 회장은 LG전자 등 계열사에서 실무 경험을 꾸준하게 쌓는다. 그리고 2018년 5월 구본무 회장이 뇌종양 투병 끝에 사망한 후 약 한 달이 지난 2018년 6월 구광모 회장은 LG의 대표이사 회장의 자리에 오른다. 

자신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다 

현업에서의 다양한 경험이 있다고는 하지만 구 회장의 경험은 재계순위 4위의 대기업인 LG의 모든 것을 통솔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아울러 본인보다 나이가 많은 임원들을 이끌 수 있을 정도의 그룹 내 입지 역시 완전하게 갖춰지지 않았기에 회장 취임 초기, 구 회장은 여느 기업 총수들과 같은 큰 행보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러다가 구 회장은 회장 취임 후 약 70일이 지난 2018년 9월, 구본무 선대회장이 ‘LG의 미래’라고 여기며 매우 아꼈던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사이언스파크’를 방문함으로 총수로서 공식적인 행보를 보여준다. 이후 구 회장은 본인의 스타일을 천천히 그룹의 경영에 반영하기 시작한다. 

구 회장은 LG유플러스의 CEO를 역임한 ‘재무담당’ 권영수 부회장을 그룹으로 부른 것을 시작으로 자신이 구상하는 경영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글로벌 기업 3M의 신학철 부회장을 LG화학 CEO로 영입하며 LG화학 역사상 최초의 외부 영입 CEO 기용, ‘책임경영’ 원칙을 표방하며 정호영 LG화학 사장을 LG디스플레이의 새로운 CEO로 정기인사 시즌이 아닌 9월에 임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해 8월 그룹 사장단 회의에서 “빨리 실행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는 각오로 변화의 속도를 높여 달라”고 당부한 한 마디는 자신을 통해 변화할 LG를 기대하는 구광모 회장의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   

구 회장은 ‘마케팅을 정말 못 하는 회사’라는 비아냥섞인 평가를 받아 온 LG의 마케팅 스타일도 공격적으로 바꾼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그 유명한 ‘삼성전자와의 디스(DIS)전’이다. LG전자와 삼성전자는 LG의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과 삼성의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이 재임하던 시기부터 전자·가전 분야에서 치열하게 다투고 있는 앙숙이다. 두 창업주는 먼 친척(사돈) 관계로 매우 친밀했는데, 금성사(현 LG전자)가 먼저 진출해 있던 전자산업에 삼성이 진출하면서 두 기업은 둘도 없는 앙숙이 됐다. 일설에 따르면, 당시 구인회 회장은 이병철 회장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라고 역정을 냈다고 전해진다. 

▲ LG전자가 '디스'한 삼성전자 QLED TV. 출처= 삼성전자

지난해 삼성전자는 QLED TV를 주력상품으로 정하고 적극적인 마케팅을 전개한다. 이에 TV에 대해서는 남다른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LG전자는 “LED 앞에 A·B·F·U·Q·K·S·T 등 뭘 붙여도 그것은 그냥 LED다. OLED가 아니다”라는 식으로 삼성전자를 정면으로 ‘디스’한다. 이러한 기조는 건조기, 스마트폰 등 각 사 주력제품의 치열한 경쟁과 디스 마케팅으로 계속되고 있다. 구광모 회장 취임 전 LG가 보여준 마케팅의 기조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일련의 사례들로 구 회장은 재계에서 ‘(보기와는 다르게) 의외로 독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가 증명해야 하는 것들 

구광모 회장이 취임 후 지금껏 보여준 행보는 철저하게 ‘실용’의 관점에서 냉철한 분석과 신속한 결단의 성격이 잘 묻어난다. 햇수로 2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구 회장은 자신의 스타일을 그룹의 경영에 반영하는 작업을 순조롭게 진행해 왔다. 분위기 쇄신 측면으로 분명 그는 나름 긍정적인 성과들을 내고 있다. 그러나 그의 앞에는 취임 후부터 지금까지 보여준 것보다 앞으로 보여주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LG는 다른 대기업들에 비해 이미지가 ‘비교적’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으로 LG역시 여느 대기업들과 마찬가지로 탈세·비자금 조성 의혹, 하청업체 착취 논란 그리고 최근 조사가 진행 중인 공채 비리 논란 등 경영윤리의 문제를 계속 지적받고 있다.  

아울러 소비자들에게 여전히 삼성에 비해 어딘가 ‘한 수 아래’라는 이미지가 각인돼 있는 LG의 스마트폰, 최근 화학부문에서 연속으로 일어난 안전사고 문제도 구광모 회장이 자신의 역량으로 직접 해결해야 할 사안들이다. 그가 보여준 행보를 감안하면 아마도 일련의 문제들을 회피하는 것 보다는 ‘정면돌파’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재계는 앞으로 구 회장이 직접 보여줄 경영의 역량과 그로 인해 변화될 LG의 모습에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