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미국과 중국이 코로나19 책임 소재를 두고 격돌하는 가운데, 미국의 화웨이에 대한 압박이 극에 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두 슈퍼파워의 사이에서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1위, 파운드리 2위 업체인 삼성전자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 켄 후 화웨이 순환회장. 출처=화웨이

화웨이 ‘초비상’

미국은 중국의 기술굴기를 상징하는 화웨이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는 한편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수급까지 차단하려 노력하는 중이다. 코로나19를 통해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되는 상황에서 아시아 반도체 의존도를 낮추면서도 화웨이의 손발을 묶는 전략이다. 지난 미중 무역전쟁 기간 발동된 자국 기업과 화웨이의 거래 제한을 연장하는 한편, 15일(현지시간) 미 상무부는 미국의 기술이 들어간 제3국의 반도체가 화웨이에 수급되는 것을 사실상 막아버렸다.

화웨이와 밀접한 관련을 맺던 대만의 TSMC도 미국 공장 건설에 나서는 한편 최근 화웨이와의 신규 거래를 중단하고 있다는 보도가 외신을 통해 나오고 있다. 화웨이 입장에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화웨이는 미국의 조치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화웨이는 지난 4월 1분기 실적 발표 당시 지금과 같은 미국의 압박이 이어질 경우 반도체 수급에 있어 플랜B를 택할 수 밖에 없다는 주장했으며, 켄후 화웨이 순환회장은 18일 화웨이 글로벌 애널리스트 서밋 2020 행사를 통해 미국에 대한 화웨이의 압박을 비판하며 "(미국의 행보가) 과연 세계에 어떤 이점을 가져다 줄 수 있을지 이해할 수 없다"는 강경한 메시지를 내놨다.

▲ 삼성번자 반도체 클린룸. 출처=삼성

삼성전자로부터 반도체 수급?

화웨이는 미국의 압박이 이어지며 자체 AP인 기린 시리즈의 프리미엄 라인업 양산이 사실상 불가능할 전망이다. 대만의 TSMC를 통해 대부분의 기린 시리즈를 위탁생산하는 입장에서 미국의 압박에 TSMC가 화웨이와의 거래를 중단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화웨이의 파운드리 자회사 SMIC가 모바일 AP를 제작할 수 있지만 기술력은 14나노 공정에 머물러 있어 프리미엄 라인업은 손대기도 어려운 실정이며, 극자외선(EUV) 독점 공급 업체인 네덜란드 ASML과의 협력도 지지부진하다. ASML의 핵심 광원 기술이 미국 업체 싸이머 인수를 통해 확보됐고, 최근 ASML의 중국 직원들이 별도의 EUV 공급 업체를 설립하며 기술 유출 논란을 일으켰다는 점을 고려하면 화웨이와 ASML의 밀접한 협력은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화웨이가 모바일 AP를 수급받기 위해 엑시노스의 삼성전자와 협력을 타진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25일 업계와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화웨이는 삼성전자의 엑시노스를 자사 스마트폰에 탑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화웨이의 팹리스인 하이실리콘이 칭화유니그룹의 유니SOC와 협력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지만, 삼성전자의 엑시노스 시리즈가 검증된 프리미엄 모바일 AP라는 점에서 화웨이가 당장 택할 수 있는 선택지에 가장 가깝다는 말이 나온다.

화웨이 입장에서는 1년 만의 대굴욕이다.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주는 지난해 애플과 퀄컴이 라이선스 분쟁을 일으킬 당시, 애플이 5G 칩 수급에 어려움을 겪자 “기린 모바일 AP를 제공할 수 있다”는 여유를 부린 바 있다. 그러나 단 1년만에 상황이 변했다. 지금은 어떻게든 프리미엄 모바일 AP를 수급받아야 할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문제는 실현 가능성이다. 당장 삼성전자가 화웨이에 엑시노스를 공급할 가능성인 낮다는 것에 무게가 실린다. 미국의 화웨이에 대한 압박이 강해지는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화웨이의 협력하는 모양새를 취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화웨이가 프리미엄 모바일 AP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삼성전자에 반사이익을 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삼성전자가 화웨이에 엑시노스를 제공하면 당장의 모바일 AP 매출은 올라가지만, 화웨이의 스마트폰 점유율이 지켜질 수 있다는 점에 시선이 집중된다. 현재 엑시노스는 프리미엄 시장보다는 준 프리미엄 시장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삼성전자는 최근 갤럭시S20에 최신 엑시노스를 탑재하지 않는 등 선택의 집중 전략까지 보여주고 있다.

엑시노스의 화웨이 수급보다는 화웨이의 모바일 AP 수급난이 이어지며 삼성전자의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이 올라가는 쪽이 삼성에 유리하다는 말이 나온다. 다만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수급에 있어 화웨이와 협력하고 있기 때문에 노골적으로 엑시노스 수급 요청을 거절하지 않는 선에서 엑시노스 제공에 대해서는 ‘적당한 거절’에 나설 전망이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중국 시안반도체 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출처=삼성

눈치게임 ‘시작’

현재 미국과 중국은 전방위적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은 중국을 “독재국가”라 비판하는 한편 화웨이에 대한 강도 높은 압박을 이어가고 있으며 중국은 양회를 통해 천문학적인 양적완화를 추진하며 미국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두 슈퍼파워는 대만과 홍콩 등에서 첨예한 외교군사적 충돌까지 불사할 방침이다.

진영은 극명하게 나눠졌다. 올해 초까지 화웨이와 5G 동맹을 유지하던 유럽도 코로나19 책임론을 기점으로 중국에 날을 세우고 있으며, 그 반대급부로 중국과 러시아의 밀월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반도체를 매개로 하는 최악의 전투가 벌어지는 셈이다.

문제는 한국이다. 특히 삼성전자의 경우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경우 전통의 우방국이지만,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만의 TSMC를 압박해 자국 공장 유치에 나서도록 하는 등 외국기업에 대한 압박이 높아지는 점이 눈길을 끈다. 삼성전자도 비슷한 액션플랜을 통해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가운데 삼성전자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미국의 화웨이 압박 전략이 벌어지는 가운데 여기에 일정정도 동참해야 한다는 분석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업계 3위 기업인 마이크론이 미국 기업이기에, 트럼프 행정부가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업계 전반에 압박을 가할 가능성은 낮지만 방심할 수 없다.

그렇다고 중국과의 협력을 차단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화웨이에 대한 엑시노스 공급까지는 어렵더라도 메모리와 파운드리 전반에 대한 협력은 필수적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해 리커창 중국 총리가 다녀간 삼성 시안반도체 공장에 최근 다녀오는 등 중국과의 반도체 연결고리를 강화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심지어 중국 언론들은 이 부회장 출장이 종료된 후 사설을 통해 “삼성이 중국과의 협력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메시지까지 내기도 했다. 결국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필요하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