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영의 역설> 클레이튼 M. 크리스텐슨·에포사 오조모·캐런 딜론 지음, 이경식 옮김, 부키 펴냄.

한국은 1961년 1인당 GDP 93.816달러의 극빈국이었다. 2019년에는 3만달러가 넘는 부유한 국가가 되었다. 그런데, 1960년대에 한국처럼 가난하던 대부분 국가들은 여전히 가난하다.

당시 한국은 강력한 리더십 하에 독창적인 ‘수출주도형 공업화 전략’을 펼쳐 성공을 일궜다. 국제분업을 통해 비교우위가 있는 산업부터 수출산업으로 키웠다. 1970년대에는 조선업, 자동차공업, 전자공업, 석유화학공업을 집중 육성하는 ‘중화학공업화’를 추진했다.

가난한 나라들도 한국과 같은 국제정치·경제적 환경 속에 있었다. 하지만 이들 국가는 시대 상황을 유리하게 활용하는 리더십도, 최적의 국가개발 전략도 부재했다. 수입품을 대체하는 수준의 경공업에 매달리거나 원조 경제에 안주했다.

세계 각국은 가난한 나라들을 돕겠다며 1960년 이후 4조3000억달러(약 5334조5800억원)의 공적 개발자금을 쏟아 부었다. 우물, 화장실, 학교를 지어줬다. 각종 제도 정비, 부패 척결, 열악한 인프라 개선을 돕기도 했다. 그렇지만 아프리카 전역에 고장난 채 방치된 우물이 5만 개나 될 정도로 외부지원은 일시적 효과에 그쳤다. 개발 위주의 ‘밀어붙이기 전략’은 가난 극복에 실패했다.

저자는 정치 리더십이나 국가 개발전략의 부재를 탓하지 않는다. 사실, 한국에서 성공한 박정희식 개발전략이 다른 국가에서도 유효하긴 힘들 것이다. 저자도 “‘한강의 기적’은 비전을 제시하는 리더십을 비롯하여 문화, 중공업, 대외 무역, 미국 원조, 지정학 등 많은 변수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국의 성공에서 추출될 수 있는 ‘일반화가 가능한’ 결정적인 변수로서 ‘혁신’을 들고 있다.

저자는 가난한 나라들이 ‘시장 창조 혁신(market-creating innovation)’에 나서면 번영을 이룰 것이라고 단언한다. 새로운 시장들이 창조되면, 이 시장들은 자체 생존을 위해 다른 요소들을 필요로 하게 되는데, 결과적으로 열악한 인프라, 교육, 제도, 문화 분야의 변화를 이끌어 낸다는 것이다. 이것이 ‘끌어당기기 전략’이다.

1998년 셀텔이 아프리카에서 휴대전화 사업을 시작했다. 사람들은 불가능한 일이라며 비웃었다. 하지만 셀텔은 ‘혁신’을 통해 불모지에서 시장을 창조했다. 먼저 선불통화 카드 방식을 도입했다. 매달 사용료를 받지 않았다. 신규 고객은 불과 미화 25센트만으로 선불통화 카드를 살 수 있었다. 6년 만에 고객이 530만 명으로 늘었다. 아프리카 13개국에 사업소가 생겼다. 이 회사가 창출한 일자리의 99%는 현지인에게 돌아갔다. 셀텔을 필두로 아프리카에 거대한 통신 산업이 조성되어 2020년까지 일자리 450만 개가 창출됐고, 세금 205억달러를 냈다.

이 책은 세상의 가난을 없애려는 개발산업 종사자, 빈국에서 시장을 창조하려는 혁신 기업가, 개발촉진 계획을 수립하려는 빈국의 정책입안자, 투자자들에게 왜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지, 진정한 번영의 길은 무엇인지 알려준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