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한일 경제전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홍콩 국가보안법 논란으로 미국과 중국이 정면충돌 양상을 보여주며 불확실성이 높아진 가운데 일본 리스크까지 터지며 산업계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WTO 절차 가동"
나승식 산업통상자원부 무역투자실장은 2일 브리핑을 통해 "지난해 11월 22일 잠정 정지했던 일본의 3개 품목 수출제한조치에 대한 WTO 분쟁해결절차를 재개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관련 절차를 밟았으나 한일 핫라인이 가동되며 중단된 WTO 분쟁해결 패널설치를 재개한다는 뜻이다. 일본이 수출규제와 관련해 해결 의지가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정부는 일본의 '묵묵부답'을 문제삼고 있다.

일본은 지난해 G20 정상회의가 끝난 후 그 해 7월부터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한편 포토레지스트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불화수소 등 3대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수출에 제동을 걸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지난 5월 12일 일본을 향해 수출 규제가 걸린 3개 품목과 화이트리스트에 대한 문제 해결방안과 관련한 구체적인 입장을 밝혀줄 것을 요구했다. WTO 여론전 직전까지 갔으나 일종의 핫라인이 개설된 상태에서 '일본이 문제삼은 문제를 해결했으니 수출규제를 풀어라'는 메시지다.

정부는 당시 일본이 수출규제의 이유로 지목한 재래식무기 캐치올 통제와 관련해 현재 정상적으로 가동되고 있으며, 일본이 요구하던 수출관리 조직 및 인력 보강은 산업부 내에 무역안보 전담조직을 기존 과단위(무역안보과)에서 국단위 조직인 '무역안보정책관'으로 확대 개편했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포괄허가에서 개별허가체제로 전환된 3개 품목의 경우 건전한 수출거래 실적이 충분히 축적됐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발표가 나오자 일본도 반응했다. 실제로 요미우리신문은 "일본 정부의 방향성, 재검토의 방향성은 모두 ‘한국이 (일본의 요구사항을) 진행하고 있다는 인식 하에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확답을 내놓지 않으면서 사태는 다시 표류하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25일 일본은 한국인 무비자 입국 효력정지 조치를 연장한다고 기습 발표했다. '일본이 문제삼던 부분을 해결했으니 수출규제를 풀어라'는 정부의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강대강 대치'를 선언한 셈이다. 이어 정부에서 WTO 절차를 재개하겠다는 선언까지 나오며 한일 경제전쟁의 2막이 오르고 있다.

산업계 정중동
정부의 WTO 분쟁해결 절차 재개 소식이 알려지자 일본은 즉각 유감의 입장을 표명했다.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상은 "대화가 계속됐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측이 일방적으로 (WTO 절차 재개를) 발표한 건 유감"이라면서 "(일본의 조치는) 수출관리 제도의 상황과 운용실태에 맞춰 실시되는 것"이라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코로나19로 아베 내각의 지지도가 크게 하락하는 가운데, 일본이 당분간 한국 때리기를 통해 대결국면을 장기화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소재를 수출하는 일본의 타격이 상당하다는 기업의 비명소리가 커지고 있으나 당분간은 '한국과 싸우겠다'는 의지인 셈이다.

산업계는 정중동이다.

일단 일본과의 경제전쟁이 벌어져도 버틸 수 있는 체력은 마련됐다는 낙관론이 감지된다. 실제로 포토레지스트는 지난해 7월 기준 일본 의존도가 81%에 이르렀으나 현재 일본의 수출 완화 및 미국 듀폰의 국내 생산시설 투자, 나아가 유럽 등 공급선 다변화로 위기를 넘겼다. 불화수소의 경우도 같은 기간 일본 의존도가 43%를 넘겼으나 LG디스플레이가 소재 국산화 100%에 성공하고 삼성디스플레이도 국산품 전면 대체에 나서며 분위기를 바꿨다. 폴리이미드도 일본 의존도가 90%가 넘었으나 코오롱인더스트리와 SKC가 자체기술 확보에 성공하는 쾌거를 이뤘다.

정부도 이른바 소부장 중심의 로드맵을 발표하고 있다. 결국 일본의 수출제재가 심해지며 일본 기업의 고통은 커지지만 한국은 충분히 버틸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감지된다.

다만 사태가 길어지면 문제가 커질 수 있다. 산업계 관계자는 "미중 충돌로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너무 커졌다"면서 "정부가 냉정함을 가지고 일본과의 끈질긴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