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자연 기자] 최근 백화점 업계가 화장품 사업에 본격 뛰어들면서 화장품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본래 운영하던 자사의 뷰티 편집숍과 패션사업에 그치지 않고 백화점 프리미엄 이미지를 앞세운 자체 브랜드(PB)로 시장공략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백화점, 프리미엄 ‘PB 화장품’의 반격

지난 5월 현대백화점그룹과 신세계백화점은 화장품 PB브랜드 론칭을 공식화하면서 화장품 시장에 본격 뛰어들었다.

가장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기업은 현대백화점이다. 현대백화점 패션 계열사 한섬은 기능성 화장품 기업 ‘클린젠 코스메슈티칼(이하 클린젠)’의 지분 51%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화장품 시장에 진출했다. 클린젠은 서울 강남구 청담동 ‘클린피부과’와 신약개발전문기업 ‘프로젠’이 공동 설립한 회사로, 고기능성 화장품 개발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다.

여성복 1위 업체인 한섬이 패션 이외에 다른 사업에 손을 대는 것은 1987년 창사 이래 처음이다. 한섬은 화장품 제조 특허기술 등을 활용해 내년 초에는 첫 스킨케어 브랜드를 출시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현대백화점그룹은 화장품 원료 국내 1위 회사인 SK바이오랜드 인수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SK바이오랜드는 1995년 설립된 화장품 원료 업체다. SK 계열사로 편입되면서 2016년 SK바이오랜드로 이름을 바꿨다. 현재 국내 천연화장품 원료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고, 화장품 및 건강식품 원료, 의료기기, 원료의약품 등이 주력 분야다. 최근엔 장과 피부의 마이크로바이옴(유전정보)과 관련한 기술특허를 확보했다.

한섬 관계자는 “한섬이 패션사업으로 쌓아온 고품격 이미지를 화장품 사업에 접목할 경우 브랜드 차별화가 가능하다”면서 “1조5000억원 규모 국내 고급 스킨케어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겠다”고 말했다.

▲ 신세계 에센셜 스킨케어 브랜드 ‘오노마’. 출처=신세계

신세계백화점도 스킨케어 브랜드 ‘오노마’를 론칭하며 화장품 시장에 진출했다. 오노마는 브랜드 기획부터 제조까지 신세계가 진행한 ‘100% 자체 브랜드(PB)’다. 한섬처럼 3만~5만원대 스킨케어 에센스 6종으로 기초 화장품 시장을 먼저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신세계백화점의 이러한 행보는 앞서 자사의 뷰티 편집숍 ‘시코르’가 선방하면서 자신감이 붙자 본격적으로 K-뷰티 시장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일제히 백화점들이 화장품 사업에 뛰어든 요인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꼽았다. 비교적 성장 폭이 둔한 패션사업에 비해 유사 업계이면서도 비교적 꾸준한 성장을 유지하고 있는 화장품 사업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는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고가 화장품 시장 규모는 약 2조6000억원으로 추정되며 2023년까지 매년 평균 5.8%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화장품 상품군은 원가가 낮아 인건비 비중이 높은 패션 품목보다 마진이 높다. ‘스몰 럭셔리’를 즐기는 소비자들에게 브랜드 입문 제품으로는 제격인 셈이다.

코로나19로 온라인 쇼핑 시장이 급성장하자 한계에 부딪힌 백화점들이 진입장벽이 낮은 화장품을 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한 업종 특성상 백화점과 면세점, 홈쇼핑 등 다양한 유통 채널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사업 확장이 더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시장에서 화장품 부문은 특히 상품 하나만 히트해도 매출이 급증한다”면서 “진입장벽이 낮은 만큼 온라인에도 노출되기 쉽기 때문에 이미 다양한 채널을 가진 백화점 업계가 유통을 적극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화장품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비디비치 퍼펙트 페이스 클리어 클렌징폼. 출처=신세계인터내셔날

패션기업 화장품… 효자 사업 등극?

백화점들이 화장품 사업에 뛰어든 것은 이미 성공적인 학습효과 영향도 있었다. 신세계인터내셔날(SI)는 패션업체였지만 지난 2012년 ‘비디비치’를 인수해 5년 만에 흑자 전환을 이뤘고, 중화권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면서 최근 2~3년 사이 급속도로 성장했다. 특히 지난해 매출액과 영업이익 각각 1조4250억원, 845억원을 기록하면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SI는 비디비치의 성공에 힘입어 2018년 한방 화장품 자체 브랜드 ‘연작’을, 2019년 말에는 프랑스 대표 더마코스메틱 ‘가란시아’를 론칭하면서 화장품 사업 포트폴리오를 강화해나갔다. 이외에도 바이레도, 산타마리아노벨라, 딥디크 등 해외 화장품 브랜드 국내 판권을 인수해 계속해서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나은채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신세계의 패션사업부인 SI가 비디비치, 연작 등 화장품 사업에서 성공한 것처럼, 현대백화점도 화장품을 하나의 사업 축으로 가져가려는 의지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LF 헤지스 맨 룰429 제품. 출처=LF

생활문화기업 LF도 지난 2018년 남성을 겨냥한 ‘헤지스 맨 스킨케어 룰429’를, 지난해 10월엔 여성 비건 화장품 브랜드 ‘아떼(ATHE)’를 론칭하며 화장품 시장에 본격 뛰어들었다. 론칭 당시에도 국내 대기업에서 보기 힘든 비건을 콘셉트로 잡아 시장 경쟁 우위를 가지고 출발했다. 비건 화장품시장은 아직 초기단계이기 때문에 시장 진출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 LF 아떼 어센틱 립 밤. 출처=LF

LF 관계자는 “국내 화장품시장에서 비건 화장품은 새로운 수요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면서 “향후 이슬람국가가 많은 동남아 등 글로벌 진출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화장품은 기업들이 패션이라는 본업에서 완전히 이탈하지는 않으면서도 새로운 돌파구로 삼기 좋은 분야”라면서 “관리만 잘 되면 브랜드 이미지 강화와 가치 상승까지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