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최근 벌어지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충돌은 경제 패권을 둘러싼 전쟁으로 볼 수 있다. 홍콩 국가보안법 이슈 등은 정치적 이슈로 분류되지만 미국의 제재가 금융 측면에서 가동되는 한편, 각 국의 경제 전력이 ‘무기화’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근대의 초강대국들은 군대라는 무력을 활용해 자국의 이익을 추구했다면, 이제는 ‘머니’가 총알이고 병사들이다.

문제는 기존의 논리와 전제가 전혀 통하지 않을 때 벌어진다. 당장 미국과 중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순수한 경제논리에 바탕을 둔 전쟁을 벌이는 게 아니라, 간혹 이해할 수 없는 정책을 남발하며 비이성적인 행동까지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비가 오면 우산을 써야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오히려 광신도들을 모아 기우제를 지내는 식이다.

코로나, 그리고 이합집산

미중 무역전쟁이 1월 휴전을 맞이하며 ‘데땅트’의 시대가 열리는 것 같았으나 코로나19는 모든 것을 바꿔버렸다. 각 국은 공격적인 양전완화를 불사하는 한편 국경 폐쇄라는 초강수까지 뒀으며 이 과정에서 코로나 책임론이 거세게 일었다. ‘누구의 책임인가?’ 미국은 중국을, 중국은 오히려 미국을 의심하는 가운데 세계는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정확하게 반으로 갈라졌다.

당초 유럽은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으로 강해진 보호 무역주의에 반감을 보이며 중국과의 연대를 강화한 바 있다. 실제로 1월 무역전쟁 휴전 후 유럽은 속속 화웨이 5G 통신장비 도입을 추구하며 미국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특히 미국과 오랜 연대를 통해 2차 세계대전 체제를 지켜왔던 영국이 돌아서 눈길을 끈다. BBC 및 가디언 등 영국 언론은 1월 28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국가안보회의(NSC)를 열어 5G 통신 네트워크 공급망에 관한 검토 결과를 확정했으며, 여기에 화웨이 장비가 들어간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심지어 영국의 선임 보안 책임자는 더 메일 온 선데이에 “국가 안보와 영국에 대한 경제적 이익 사이의 균형은 우리가 관리 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화웨이 백도어 논란을 지피며 유럽 동맹국을 대상으로 반 화웨이 진영에 들어오라 설득한 미국의 입장이 머쓱해지는 순간이다.

화웨이도 유럽과의 동맹을 강화했다. 2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신년회를 통해 유럽공장 설립 계획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에서 회원국이 5G 장비 구축에 돌입할 때 적용해야 하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직후라 눈길을 끌었다. 유럽연합은 회원국이 5G 장비 구축을 할 때 고위험 공급업체(high risk vendors)와 협력하지 말아야 한다고 발표했으나, 중국이나 화웨이를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 초반에도 유럽과 화웨이의 동맹은 이어졌다. 중국은 이른바 방역외교를 바탕으로 유럽과의 연대를 이어갔으며 일대일로 프로젝트도 일정정도 성과를 거뒀다. 특히 코로나19 초반 큰 타격을 받은 이탈리아와의 연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발생 초기 중국과 일대일로를 통해 밀접하게 연결된 이탈리아에서 확진자가 급증하던 시기, 일각에서는 이탈리아가 이를 기점으로 중국과 거리를 둘 것이라 예상했으나 이러한 전망은 빗나갔다. 이탈리아의 국가부채가 치솟는 가운데 유럽연합이 이탈리아에 대한 지원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에서, 오히려 중국이 의료진과 마스크를 지원하는 등 발 빠른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미국 외교전문 매체 포린폴리시(FP)는 “2015년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유입되던 난민의 수가 폭증했을 당시에도 유럽연합은 이탈리아를 버렸다”면서 “최근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이탈리아는 중국과의 연합을 더욱 공고히 할 것”이라 분석했다.

중국의 개입, 유럽의 분열은 교황도 우려할 정도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4월 22일 유럽연합 지도부를 향해 “지금은 우리 사이에, 그리고 국가 간 매우 긴밀한 단합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유럽 형제애의 화합을 달성할 수 있도록 모두 유럽을 위해 기도하자”는 메시지를 냈다. 남부 유럽 국가들이 코로나19 초기 심각한 재정난을 호소했으나 독일 등 유럽 북부 국가들이 유럽안정화기구(ESM) 틀 내에서의 지원을 고수한다는 방침을 낸 직후다.

이런 분위기가 급반전을 맞은 것은 5월 초 부터다. 미국을 중심으로 코로나19 중국 책임론이 거세게 제기되는 가운데 캐나다를 비롯해 유럽에서도 중국을 배척하는 움직임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당장 유럽과 화웨이의 동맹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영국이 전격적으로 화웨이 장비 불가 원칙을 선언했고, 뒤를 이어 독일도 돌아섰다. 지난 2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독일의 3대 이동통신사 중 하나인 텔레포니카가 화웨이의 5G 장비를 배제하고 에릭슨으로 교체했다고 보도했다. 마쿠스 하스 텔레포니카 최고경영자(CEO)는 “우리는 안전한 네트워크를 제공할 특별한 사회적 책임을 가지고 있다”며 사실상 화웨이 백도어설을 주장하는 미국의 논리를 따라가는 분위기까지 연출했다.

캐나다도 화웨이와 거리를 뒀다.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의 미국 송환을 현지 법원이 사실상 결정한 직후 캐나다 1위 통신 사업자인 벨캐나다(BCE)는 5G 사업에서 화웨이를 배제하고 에릭슨을 택하기로 했다.

결국 유럽과 중국의 관계는 크게 틀어졌다. 당분간 이 관계가 회복될 가능성도 낮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독일 정부는 오는 9월 14일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릴 예정이던 유럽연합과 중국의 정상회의를 연기했다. 사실상 기약 없는 무기한 연기다.

중국은 이에 맞서 러시아와의 연대를 강화하는 한편 차이나 머니를 매개로 아프리카 일부 국가들과 연대하고 있다. 신냉전의 시대가 열리는 셈이다.

신냉전, 그리고 디커플링

미중 무역전쟁도 마찬가지지만, 코로나19 사태를 기점으로 전개되는 미국과 중국의 신경전을 조명하면 다소 이해가 되지 않는 구석들이 많다. 무엇보다 일반적인 경제논리로 정책이 가동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즉흥적으로, 혹은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의 극단적인 전략도 다수 보인다.

미국의 화웨이 압박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지속적으로 화웨이를 겨냥해 ‘백도어설’ ‘중국 정부 아바타설’을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아직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았다. 물론 화웨이라는 사명 자체가 중화유위(中華有爲)에서 나왔고 런정페이 창업주가 유명한 마오주의자지만, 화웨이가 중국 정부의 아바타라는 점은 이성적인 판단으로 볼 때 근거가 희박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화웨이는 심지어 지난 5일 세계 최초로 5G 기지국 장비에 대해 국제 보안 CC(Common Criteria) EAL4+인증을 최종 획득했다. CC인증은 정보기술의 보안 기능과 보안 보증에 대한 국제 평가 기준 ISO 15408이며 이는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 등도 인증을 받은 바 있다. 화웨이가 취득한 CC인증은 EAL4+이며 네트워크 장비로 취득할 수 있는 최고 레벨이다. 한국화웨이 이준호 CSO는 “CC인증은 정보 기술 보안 평가를 위한 국제 표준으로 제품의 안정성과 신뢰성을 검증하는 제도”라면서 “화웨이는 4G에 이어 5G 기지국 장비까지 CC인증을 취득한 유일한 제조사”라고 강조했다. 화웨이의 보안위협이 국가안보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미국의 입장이 정면으로 반박되는 셈이다.

▲ 출처=이코노믹리뷰DB

심지어 화웨이 압박의 실익도 낮다.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가 최근 ‘수출 통제: 미국의 다른 국가에 대한 안보 위협’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한 가운데 채드 브라운 선임연구원은 “미 행정부의 수출 통제 조치는 미국 기업과 중국 바이어 간의 단절이란 비용을 초래했다. 화웨이가 다른 OS를 선택하면 구글 안드로이드가 타격을 입을 수 있으며, ZTE가 미국 기술 구매를 중단할 수 있다고 시장에 알려지면서 퀄컴의 주가가 타격을 입었다”고 분석했다. 화웨이 압박이 이어질수록 미국의 피해만 더 커진다는 뜻이다.

지난 4월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 의뢰로 ‘중국과의 무역 제한이 반도체 시장에서 미국 리더십을 어떻게 종식시키는가’ 제목의 연구 보고서를 낸 보스턴컨설팅그룹도 미국이 수출 제한 기업 명단을 유지하며 화웨이를 압박한다면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향후 3~5년 내 8%포인트의 시장점유율 하락과 16%의 매출 감소를 겪게 될 것으로 분석했다.

물론 화웨이를 압박하면 단기적 측면에서 중국 기술굴기의 예봉을 꺾을 수 있고, 미국의 심각한 반도체 아시아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 나아가 국가안보적 측면에서도 '일말의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을 전망이다. 그러나 기회비용을 따져본다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및 미국 기업의 타격도 만만치 않다. 최소한의 조율을 통해 정책적 유연함을 보여야 한다는 기본적인 논리는 사라지고, 오로지 목표만을 위한 강공모드만 보일 뿐이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압박에 맞대응하는 수준으로 사태의 확장 추이를 조절하고 있으나 양회를 통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내놓지 않은 것은 극단적인 처방이라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비록 코로나19로 불투명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지만, 업계에서는 중국의 이러한 행보를 두고 ‘아시아 시장에 충격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국의 존재감을 보이기 위함’이라는 말이 나온다. 실제로 중국 양회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발표하지 않자 주요 아시아 증시는 곤두박질쳤다.

홍콩 국가보안법도 비슷한 맥락이다. 전 세계가 지난해 홍콩 민주와 시위를 목격한 가운데, 체제 수호를 위해 모든 이해관계를 파탄내고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을 강행한 것은 그 자체로 위협적인 발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대만에 대한 필요이상의 강경책도 외교가에서는 큰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각자의 상황과 환경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건강한 길’을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충돌의 길’을 적극적으로 찾으며 주변 이해 관계자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함께 어우러져 영향을 받으며 동조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정책적 고집에 따라 순리를 따르지 않는 디커플링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국제정치의 비정함이 디커플링 현상을 일으키는 것은 당연하다는 의견이 있으나, 지금의 미중 충돌은 그 규모나 파급력에 있어 선을 넘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압도하며 비이성적인 상황을 조성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 시진핑 주석의 시대를 맞아 더욱 노골적으로 보인다.

그들은 왜?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압도하는 디커플링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의 대국굴기를 저지하려는 미국의 압박, 나아가 각 국의 이해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혀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동력은 각 국 지도자의 ‘불완전한’ 내부사정에서 찾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중국은 집단지도체제 국가로 알려졌으나, 시진핑 주석의 중국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주목해야 할 점은 2018년 양회다. 당시 전인대에서 헌법을 개정하며 시진핑 사상을 명기하는 한편 사실상 국가주석의 장기집권을 공식 추인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역사학자인 장리판은 당시 양회가 종료된 후 언론 인터뷰에서 “시 주석은 오랫동안 권력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는 아무도 모르게 됐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 출처=이코노믹리뷰DB

흥미로운 대목은 올해 양회다. 리커창 총리가 양회에서 시진핑 주석을 앞에 두고 “지금 중국에는 한 달 수입이 1000위안(약 17만원) 이하인 사람이 무려 6억명”이라 일갈했기 때문이다.

시 주석은 절대권력을 위해 돌진하며 샤오캉(인민의 민생이 해결되고 기초 복지가 작동하는 시대)을 약속한 바 있다. 2012년 11월 총서기에 오른 직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것이 근대 중화민족의 가장 위대한 꿈’이라는 ‘중국몽(中國夢)’의 일부며 절대빈곤을 퇴치하겠다는 정책이다. 이런 상황에서 리커창 총리가 올해 양회에서 초극빈층이 6억명 이상이라 주장한 것은 말 그대로 충격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절대권력 시황제’의 정책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 출처=이코노믹리뷰DB

현재 중국에서도 엄청난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노점경제도 마찬가지다. 리 총리가 6억명 극빈층 발언을 하기 직전 중국 공산당 중앙정신문명건설판공실이 사실상 초극빈층의 호구지책인 길거리 노점을 허락하겠다 밝힌 가운데, 지난 6일 베이징시 당기관지인 ‘베이징일보(北京日報)’가 정면으로 이를 반박하는 일이 벌어졌다. 리 총리가 길거리 노점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고 중국 공산당 중앙정신문명건설판공실이 관련 지침까지 발표했으나 베이징시가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차이치 베이징 당서기도 노점을 단속해야 한다는 방침인 가운데, 그는 시 주석의 최측근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현상은 아직 시 주석의 내부권력이 완전히 안정화된 것은 아니라는 분석에 힘을 싣는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재선을 노리고 있으나 러시아 및 우크라이나 게이트에 이어 최근에는 저유가 및 코로나19 경제정책 실패 등으로 뭇매를 맞고 있다. 지금은 평화적인 시위로 진행되며 주 방위군도 철수하는 수순을 밟고 있으나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을 기점으로 한 때 미 전역에서는 내란을 방불케하는 극렬시위도 벌어진 바 있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은 탄핵 대상이 되기도 했다.

지금의 디커플링 시대를 읽을 수 있는 극적인 단서들이다. 미국과 중국은 국가적 차원에서의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격돌하면서도, 각국 지도자들이 불안한 입지를 타개하기 위해 외부와의 전쟁을 시도하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내부 결속을 위해 외부를 때리는 지도자의 모습은 동서고금 역사에서도 비일비재하다. 비가 하염없이 오는데도 기우제를 지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