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정부가 21대 국회의 출범과 함께 한동안 의견개진을 잠시 미뤄뒀던 대기업 규제강화 방안들을 다시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정부는 법안의 개정 등을 통해 대기업의 총수일가 혹은 주요 경영진으로 집중되는 그룹 내 권한을 견제할 수 있는 여러 법적 장치들의 마련을 준비하고 있다. 이에 대기업들은 “코로나 피해를 복구하느라 안간힘을 쓰는 기업들의 목을 조르려 한다”면서 격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 상법·공정거래법 동시 개정 추진 

11일 정부는 법무부와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를 통한 법안 개정을 예고했다. 법무부에서는 상법 개정안을, 공정위에서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법무부는 대기업 총수(혹은 최고 경영진)들이 다량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가 불법행위 혹은 잘못된 경영판단으로 모회사에게 손해를 미치는 경우 일반 주주들이 경영진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하는 안의 입법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와 함께 법무부가 추진하는 개정안에는 감사위원 분리선임, 감사 선임 시 주주총회 결의요건의 완화 등의 내용도 포함됐다. 개정안의 의도는 경영자의 준법정신과 책임 있는 경영을 강조하는 것이 골자이기에 재계는 특별히 이 내용에 대해큰 불만을 표하지는 않는다. 
  
개정안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내용은 바로 ‘전속고발제’의 폐지다. 전속고발제는 담합이나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에 대해서는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 검찰이 수사와 기소를 할 수 있게 한 제도다. 이 제도는 고발의 남용으로 기업의 정당한 경영 활동이 위축되는 것을 막기 위해 1980년부터 도입됐다. 정부와 여당은 2018년 이 내용을 골자로 한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당시에는 야당과 기업계의 반대로 지난 국회에서는 통과되지 못했다. 

현 제21대 국회는 여당(민주당)이 절대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어 ‘큰 이변이 없는 한’ 정부가 지난 국회에서 추진하지 못한 여러 법안들은 이번 국회에서 그대로 통과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재계 "지금이 규제를 강화할 때인가"

재계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입법에 대해 특히 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재계 측은 “전속고발제는 각 기업들의 원활한 경영활동을 지원하고자 하는 의도로 도입돼 지난 1980년부터 약 40여년 이상 동안 그 효과를 입증해 온 제도”라면서 “전속고발제가 폐지되면 기업에 대한 소송권이 남용돼 기업들의 경영 활동이 매우 위축될 것”이라면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재계는 코로나19로 국내 대기업·중소기업들이 입은 피해를 연일 강조하며 대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 줄 것을 정부에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경제단체협의회 소속 30개 경제단체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영위기 극복과 경제활력 제고를 위한 국가경제정책 기조에 대한 경제단체 건의>에서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경제활동이 봉쇄·교란됨에 따라 글로벌 경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도 전통 기간산업을 중심으로 막대한 타격을 입고 있다”라면서 “소비·수출·생산·투자 등 실물경제의 침체가 지속되고 재고누적까지 겹치면서 기업의 매출이 격감하고 이익감소와 적자규모도 커지고 있으며 24분기에는 그 피해규모가 본격적으로 현실화 될 것으로 보인다”라면서 현재 기업들이 감당하고 있는 어려움을 호소했다.  

▲ 출처= 전국경제인연합회

30개 경제단체는 “국내 대부분의 기업들이 유사한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에 산업별 생태계 자체가 흔들리게 되고 전·후방 산업 연관효과로 인해 우리나라의 제조 강국기반도 약화될 수 있다”라면서 “우리 기업들이 코로나19에 따른 경영위기를 극복하고 최대한 고용을 유지해 나갈 수 있도록 총체적인 정부의 정책지원과 국회의 입법 지원이 절실하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정부는 최근 삼성, LG, 한화, LS 등 대기업에 대한 견제의 수위를 점점 높임으로 기업들을 대하는 확고한 기조를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에 한국경영자총협회,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국내 주요 경제단체들은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한 반대 의견서를 내고 이를 정부에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정부의 기조에 대해 국민 여론에서는 찬, 반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정부의 대기업 규제 강화를 찬성하는 진영에서는 “그간 대기업들은 부당한 방법들로 이 사회의 부를 독식해 왔고, 그로 인해 총수 일가들의 배만 불리는 전례들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규제 강화를 반대하는 진영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기업의 규모를 막론하고 거의 모든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국내 대기업들은 현재의 대내외적 위기에 맞서 안간힘을 쓰고 있음에도 정부는 대기업을 ‘잡으려고만’ 한다”라면서 대기업들의 입장을 옹호하고 있다.

같은 현실을 대하는 정부와 대기업의 극명한 의견 차이로 인해 갈등의 골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