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조금씩 상승하던 국제유가가 다시 크게 하락했다. 최근 산유국들의 추가 감산 로드맵이 나오며 국제유가가 반등하기 시작했으나 코로나19 재확산 우려가 번지며 원유 수요 전망이 악화되자 다시 고개를 숙이는 분위기다.

실제로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11일(현지시간)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7월 인도분은 36.34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낙폭은 지난 4월27일 이래 최대며 6월 들어 최저치다. 런던 국제선물거래소(ICE)에서 북해산 기준유 브렌트유 8월 인도분도 38.55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지금도 횡보세를 보이며 상승여력은 보이지 않는 분위기다.

▲ 출처=갈무리

산유국 감산의지 강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 4월 코로나19에 따른 원유수요 하락을 예고하며 주요 산유국들에 감산을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러시아가 반대하며 스텝이 꼬였다. 미국 셰일가스 업계의 점유율 확보에 불만을 품은 러시아는 감산을 통해 국제유가를 떠받쳐도 그 혜택은 오로지 미국 셰일가스 업계로 돌아갈 뿐이라며 감산 제안을 전격 거부했다.

국제 원유시장의 패권을 가진 사우디는 러시아의 감산 반대에 오히려 공격적인 증산을 시사하며 치킨게임을 벌였다. 그 여파로 국제유가는 한 때 20달러까지 깨졌고, 결국 미국이 나섰다. 

비축유 카드와 함께 사우디에 대한 설득전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시리아 내전에서 미군이 철수한 가운데 이를 탐탁치않게 여기던 사우디는 초반 미국의 요청을 묵살했으나, 코로나 19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며 분위기가 일변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속출하며 국경폐쇄까지 이어지는 한편 원유 수요가 끝을 모르고 떨어지자 결국 감산으로 가닥을 잡았다.

OPEC+ 회의를 통해 주요 산유국들은 6월까지는 하루 970만 배럴, 7월부터 12월까지는 760만 배럴, 내년 1월부터 2022년 4월까지 580만 배럴를 감산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국제유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가운데 4월 20일(현지시간) 원유 수요부족 현상이 심해지며 국제유가가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기현상까지 벌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5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37.63달러라는 충격적인 수치를 기록하며 거래를 마감했다. 근원물(5월물)보다 원월물(6월물) 가격이 크게 벌어지는 콘탱고 현상이 벌어지는 가운데 투자자들이 WTI 만기일을 앞두고 롤오버를 택했고, 이 과정에서 WTI 가격이 크게 왜곡됐다는 분석도 나왔으나 국제유가가 마이너스를 기록할 정도로 곤두박질 친 현상은 말 그대로 충격적이다.

이후로는 롤러코스터다. 산유국들의 감산량이 코로나19 타격을 상쇄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말이 나오는 가운데 내전으로 피폐해진 이라크, 경제위기가 심한 멕시코 등에서 정해진 감산 로드맵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일도 속출했다.

5월 18일(현지시간) 선물 만기를 앞두고 롤오버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으나 당시는 무사히 넘어갔다. WTI와 브렌트유 모두 30달러 선에 안착하며 바닥을 다지는 분위기가 연출됐다. 그러나 국제유가는 상승과 하락을 반복했고, 이런 가운데 OPEC+ 소속 23개 산유국이 6일(현지시간) 기존의 감산 정책을 연장하기로 결정하면서 최근 국제유가는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OPEC+는 성명을 통해 30일까지 하루 970만배럴를 감산하는 것을 넘어 7월 말까지 감산을 이어가기로 했으며, 각 산유국에 감산량까지 할당했다. 당초 감산 계획에 따르면 6월까지만 총 970만배럴를 하루에 감산하는 것이었으나 이를 한 달 더 연장했다.

감산 로드맵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나라들의 반성문도 이어지는 등 모처럼 국제유가 흐름이 좋아질 기회였다. 사우디와 러시아에 이른 세계 3위 석유수출국이면서도 내전 후 경제부흥을 위해 감산 로드맵을 지킬 수 없었다는 이라크도 이번에는 정해진 감산량에 맞춰 로드맵을 이행하겠다고 약속했다. 

OPEC+는 미국과 캐나다의 감산 참여까지 독려하며 반드시 국제유가를 반등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심지어 사우디는 정해진 감산 로드맵에 추가적인 자체 감산에 돌입하며 국제유가 상승세를 지킨다는 각오까지 다졌다. 그러나 10일(현지시간) 조금씩 오르던 국제유가가 다시 폭락하며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꿈틀'
산유국들의 감산 의지에도 불구하고 국제유가가 폭락한 배경은 코로나19 재유행 가능성 때문이다.

최근 각 나라들은 코로나19가 진정세에 접어들었다 판단해 속속 경제재개를 시도하고 있다. 유럽의 관광지들은 조만간 재개장할 전망이며 미국도 경제활동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문제는 코로나19 재유행 가능성이 고개를 드는 지점이다. 당장 미국의 경우 전체 50개 주 중 21개 주에서 다시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고 11일(현지시간) 총 확진자 숫자가 200만명을 넘겼다. 봉쇄완화 조치를 취한 가운데 인종차별 항의시위까지 벌어지자 감염증세가 폭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다시 지역사회 감염자가 나오는 등 위기가 커지는 분위기다. 그 여파로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는 11일(현지시간) 전장보다 1861.82포인트(6.9%) 폭락한 2만5128.17에 거래를 마쳤다.

코로나19가 재유행 조짐을 보이며 국제유가가 다시 떨어지는 가운데, 결국 공급 조절 중심의 시장 조율의 상징인 OPEC의 위상도 하락하고 있다. 공급량을 조절하며 국제유가 시장을 좌우했던 OPEC의 시대가 끝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나아가 천연가스의 재조명도 눈길을 끈다. 가뜩이나 환경오염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각 국은 탈원전을 거쳐 천연가스에 속속 집중하는 분위기다. 환경오염 부담이 적고 신재생에너지로 각광받는 천연가스의 존재감이 커진다면,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존재감이 약해진 원유시장은 더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검은황금을 다루는 연금술사 OPEC+의 미래에 시선이 집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