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코로나19 여파로 항공업계가 큰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대한항공은 자구안을 마련하는 한편 송현동 부지를 매각해 유동성 확보에 나서려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의 방침에 가로막혀 매각에 차질이 생기는 분위기다. 중앙 정부는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항공업계에 막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으나 서울시는 의도치 않았지만 중앙 정부의 분위기에 역행하고 있다는 비판마저 나온다.

이 문제는 서울시와 대한항공만의 문제가 아닌, 지자체의 민간시장에 대한 과도한 개입의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자체가 직접 나서 배달앱, 콜택시 앱, 간편결제 솔루션 사업을 주도해 주식회사가 되려는 야망이 이제는 부동산업 진출로 거대복합기업이 되려는 꿈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을 위한 정책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꼭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지만, 선을 넘었다는 지적이다.

'못 참겠다'
대한항공은 12일 "핵심 자구 대책인 송현동 부지 매각 추진이 서울시의 일방적 문화공원 지정 추진, 강제수용 의사 표명 등에 따라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다"면서 "한시가 급박한 상황에서 대한항공은 서울시 행정절차의 부당함을 알리고 시정권고를 구하고자 11일 국민권익위원회에 고충민원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현재 코로나19로 항공업계는 최악의 위기에 직면했다. 대항항공도 마찬가지다. 1분기 566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3분기 만에 적자로 돌아선 가운데 할 수 있는 모든 여력을 총동원하며 유동성 확보에 사활을 걸었다.

서울 송현동 48-9 일대 대지를 매각하려는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서울의 중심이자 경복궁 및 광화문과 가까워 유동인구도 많고 안국역 1번 출구가 인접해 있어 접근성도 뛰어난 금싸라기 땅이다. 대한항공은 이 곳에 호텔을 포함한 복합문화단지 신축을 추진했으나 학습권 침해 등 관련법에 가로막혀 무산된 바 있으며, 이번에는 유동성 확보를 위해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대한항공 입장에서 사활을 걸고 추진하는 송현동 매각 작업이 더디게 진행되는 수준을 넘어 아예 흥행참패에 이르는 점이다. 

대한항공은 지난 4월 13일 삼정KPMG-삼성증권 컨소시엄을 그룹 유휴자산 매각 주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11일 송현동 부지 매각 입찰 의향서(LOI)를 받았으나 이에 응한 곳은 '제로'였다. 당초 15개 기업이 부지 인수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아무도 참여하지 않은 충격적인 현상이다.

서울시의 개입이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송현동 부지는 경복궁 인근이라는 특성 때문에 건축물 높이는 12m 이하로 제한되며 1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용적률은 100~200%에 머무는 등 규제와 제약이 많다. 이런 가운데 서울시는 지난달 27일 올해 제7차 도시·건축공동위원회를 열어 해당 부지의 용도를 공원 조성으로 가닥을 잡았다. 현재 북촌 지구단위계획 내 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된 해당 부지를 문화공원으로 바꾸는 내용이 골자다. 

지난 5일에는 송현동 부지 보상비로 시세와 비교해 낮은 수준인 4670억원을 제시했고 이 마저도 부지 보상비는 2021년부터 2022년까지 나눠서 분할지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해당 부지에 대한 용도를 결정할 수 있는 서울시가 공원을 조성하겠다고 나서며 매각이 어려워졌고, 이 마저도 시세와 비교해 낮은 가격을 책정하는 한편 부지 보상비마저 분할지급한다는 뜻이다.

▲ 출처=대한항공

대한항공 입장에서는 실망스러운 과정과 결과다. 이에 대한항공은 권익위에 민원을 제기하며 "서울시가 송현동의 문화공원 지정 및 강제수용 의사를 발표하자 입찰 참가 희망을 표명했던 업체들이 유보적 입장으로 돌아섰으며, 결국 1차 예비입찰 마감 시한인 6월 10일 모든 업체가 불참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면서 "서울시가 산정한 보상금액(4670억원) 및 지급시기(2022년)도 적절한 매각가격과 매각금액 조기확보라는 대한항공의 입장을 감안할 때 충분치 못하다. 게다가 서울시가 재원 확보 등을 이유로 언제든 조건을 변경할 수 있다는 점도 큰 부담"이라고 강조했다.

대한항공은 나아가 "대한항공은 당초 계획대로 송현동 부지에 대한 2차 입찰을 진행할 계획이나, 현 상황을 감안할 때 녹록치 않은 것이 사실"이라면서 "절박한 심정을 담아 국민권익위원회에 고충 민원을 제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대한항공 노동조합도 11일 서울시 중구 소재 서울시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시는 이 부지를 공원화하겠다고 발표하고 시세에 미치지 못하는 가격을 제시하며 대금조차 2년을 나눠 지불하겠다고 한다"면서 "대한항공 2만 노동자가 뼈를 깎는 고통으로 생존권을 사수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가"라고 비판했다.

논란이 커지자 서울시는 11일 대한항공에 부지 매입협의 재개 요청에 나섰다. 나아가 서울시는 "부지를 시세대로 매입하지 않거나 인수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니다"면서 "대한항공의 상황을 고려해 부지의 조기 매입 및 일시지급을 위한 다각적인 검토를 예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서울시 산하기관, 공공기관, 금융기관 등과 협의를 통해 서울시 예산외의 재원조달 방안 등도 강구중이며 추가 지원방안도 검토중"이라면서 "대한항공의 구체적인 조건 및 요구사항을 듣고 상호협력해 적합한 지원책을 마련하기 위한 협의 재개를 공식적으로 요청한다"고 말했다.

부지 매입 및 보상비 지급 방식에 있어 전향적인 입장을 취하며 대한항공의 주장을 일정정도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특히 "서울시 산하기관, 공공기관, 금융기관 등과 협의를 통해 서울시 예산외의 재원조달 방안 등도 강구 중"이라는 표현이 눈길을 끈다. 지원금이 시세보다 낮다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판 가능성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11일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를 통해 캠코를 중심으로 기업의 자산을 매입하는 프로그램을 가동하기로 결정했다. 기업의 자구 노력이 이어지는 곳을 우선적으로 지원한다는 방침이며 내달 자산 매입 신청을 받을 계획인 가운데, 대한항공이 해당 프로그램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유동성 확보 필요성이 큰 대한항공 입장에서 지금의 서울시 제안은 여러모로 납득하기 어렵지만, 서울시가 '일시 지급'을 검토하는 한편 캠코가 합류해 '제값'을 받을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은 거래가 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대한항공은 이와 별도로 권익위에 고충민원을 제기하면서도 "송현동 부지 매각 진행과는 별도로 서울시와는 지속적인 협력 관계를 유지하면서 성실히 협의토록 하겠다"며 나름의 여지를 남겼다.

▲ 출처=대한항공

일단 살리고 보자
지자체는 지역행정의 최전선이다. 시민의 복지와 안전을 위해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할 의무가 있고, 이에 맞춰 합리적인 정책을 추진할 동력을 보여줘야 한다.

다만 서울시는 지금까지 과도한 민간시장 진입을 통해 무리한 간섭에 나선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심판이 되어야 할 지자체가 직접 필드에 나와 민간시장을 지나치게 위축시키고, 또 실패사례도 많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실제로 따릉이는 시민의 발로 큰 성공을 거두고 있으나 일반 퍼스널 모빌리티 기업과 데이터를 공유하지 않으며, 일각에서는 민간과의 협력이 더 필요한 것 아니냐는 불만도 감지된다. 여기에 카카오 모빌리티로 촉발된 콜택시 시장에 자체 플랫폼인 S-택시를 무리하게 가동시켜 결국 실패했고, 재난지원금 정책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서울시 제로페이는 희대의 망작이 될 뻔 했다.

물론 송현동 부지 매각과 관련된 논란에 있어서도 서울시의 의도는 충분히 존중받을 만 하다. 특히 시민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겠다는 정책은 서울시의 시정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선의도 과하면 독이 된다. 가뜩이나 코로나19로 생사의 기로를 오가는 환자가 당장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집문서를 누군가에게 팔려는 순간 "이 집은 마을 사람들을 위한 집이 되어야 하니까 조금만 기다려"라고 말하는 것은 잔인한 처사다. 과도한 개입이다. 유연한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