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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학의 직장에서 살아남기] 자아성찰 하지 마세요

직장인 또는 사회인, 처음 시작할 때도 그 이후도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는다. 하면 할수록 점점 한 번도 답하지 못한 ‘고 난이도의 질문’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방황을 예고하듯,
누구도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스스럼 없이 남 또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지금 하는 일이 원래부터 내가 바라던 일이었는지, 이걸 더욱 잘하면 다음에는 어떤 단계로 진입하고, 그 다음에는 어떤 목표 및 조건 등을 달성해야 하고, 꾸준히 유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하는지 말이다.

그리고, 그런 류의 ‘정답이 없는 질문’은 어김없이 나에게도 찾아 온다.
“코치님, 방황 하신 적 없으세요? 저는 지금 제가 누구이고, 무엇을 잘하고, 무엇이 되고 싶은지 등과 같은 질문을 제 스스로에게 하고 있어요. 그 답을 찾아야만, 제 삶이 지금 보다 안정화 될 것 같아서 말이에요.”

그런 이들에게 꼭 해준다. “답이 없는 질문에 대하여 스스로에게 묻지 마세요. 그것도 자아성찰 류의 질문들 말이죠.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는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등의 말입니다.”

하지 말라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게 내가 꼭 풀어야 하거나, 해결하고 싶은 문제로부터 오히려 ‘피해가는’ 질문이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되묻는 나 자신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왜 지금 시점에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할까?”

만약 위 질문에 대하여 적절한 답을 내지 못하면, 답은 ‘그냥’이다. 그럼 어느 날 문득 머리 속을 스쳐간 답이 없는 허무한 질문에 대하여 ‘꼭’ 답을 찾아서, 이를 입증하고 증명해야 할까? 마치 죽을 때까지 꼭 이뤄야 하는 ‘소명’처럼 말이다 .그럴 필요 없다. 세상에는 특별한 소명 없이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는 이들이 차고 넘친다. 어쩌면 그런 분들 덕분에 지금의 세상이 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가끔은 ‘그냥’ 일하기도 한다.그게 뭐 어때서.

이를 각자가 하는 일(Job)에 빗대어 보면, ‘그냥 잘하고 싶어서, 재미있어서, 그 일을 하는 내 모습이 멋져 보여서,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서 등등의 개인적 이유, 또는 경제적 풍요로움, 더 높아지는 나의 명성과 명예 등등 다양한 이유가 복합적으로 얽혀서 일을 하는 경우가 오히려 훨씬 많다.

그만큼 특별한 계기가 없어도 된다. 가령 ‘지원동기’ 같은 것을 쓸 때에는 고민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경험 해보지 않은 일을 하고 싶다고 할 때에는, 자신의 의지가 더욱 많이 담길 수밖에 없다. 일정한 경험이 쌓여, 겉을 통해 속을 볼 수 있는 인사이트를 갖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럼 내 의지가 얼마나 강력한 지를 표현할만한 노력과 조치가 무엇인지를 말하면 된다. 그것이 설령 설득적이지 못하다고 해도, 세상 어딘가에는 나를 예쁘게 봐주고 기회를 줄 수 있는 곳이 있지 않을까? 따라서, 포기만 하지 않으면 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하는 시도 말이다.

물론 현실과의 타협은 필요하다. 때에 따라서는 최선 보다는 차선을 택하거나 최악을 피하기 위해 차악을 택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면 최소한 ‘누구도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을 통해 스스로를 당황하게 만들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그런 질문이 그동안 어렵게 노력해왔던 ‘공든 탑’을 한 순간에 무너뜨리는 계기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인생을 길게 보면 자아 성찰을 위한 질문은 개인적으로도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거기에 너무 깊게 심취하여 ‘허무주의’에 빠지면 제자리로 돌아오기 어렵기 때문에 가급적 주의하라는 뜻이다.

오히려 눈 앞의 어떤 일에 심취하여, 최대한 좋은 결과를 위해 매진하는 것이 더욱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도 높이는 조치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양분과 양립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을 한다.

일을 잘하는 사람이 대게는 ‘초점’을 잘 맞추듯이, 자신의 인생을 비교적 잘 꾸려가는 이들도 대부분 불필요한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 집중할 것과,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것을 철저히 구분하여, 인생에 초점을 맞춰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다.

최근에 선택에 대해 다시 탐구하면서, 사람들이 선택을 위한 과정에서 ‘양분과 양립’에 의해 자신의 행동을 결정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양분은 한 쪽을 선택하여, 남은 한 쪽을 버리기 위한 조치이다. 반대로, 양립은 두 가지를 함께 해야한다는 것을 위해 그 너머의 것들에 대한 우선순위의 재배치를 말한다.

재미있게도 직장(일)과 관련된 것에 대해서는 ‘양분에 의한 선택’이 훨씬 더 많다. 더 많은 일을 해도 어차피 같은 대우를 받을 테니, 굳이 ‘저렇게까지’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선택의 연속성이 오히려 더 큰 허무함을 몰고오는 것을 알고 있는가.

분명 ‘노력했다고 생각했지만’, 그 노력의 범위를 양분하여 한 쪽으로 치우친 선택을 통해 할 수 있는 경험치를 반으로 줄인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양립하는 새로운 성격의 시도를 통해 같은 시간과 조건 대비 내 스스로에게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하여, 더 많은 일을 하려는 의지를 고취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한다고 해도 바라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 다만,스스로 얻는 것은 더 많지 않을까? 적어도 지금 하는 일에 대하여 허무함을 느낄 세도 없을 수 있다. 또한, 일을 둘러싼 여러 요소 들에 대하여 깊게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다. 자연스럽게 일에 대한 전문성의 폭과 깊이가 넓어져 더 많은 새로운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 그 와중에 자연스럽게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인생은 원래 허무하다. 허무하지 않기 위해서 다들 노력하는 것이다. 그 노력은 덜 허무하기 위함이다. 그게 성장하려는 다양한 시도이고, 그 속에서 생각지도 못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그 가능성이 곧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더해주는 주요 계기가 된다. 사실 내가 시도했던 새로운 노력의 물리적, 화학적 결합이라고 봐도 좋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허무함’으로부터 나를 지켜줄 것이다. 아무리 남들이 이야기하는 좋은 직장과 직업을 가져도 이는 마찬가지다. 결국 선택에 의해 결정되는 삶이 우리 인생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질문도 적절히 해보자. 가급적 자신이 바라는 인생을 위해 말이다.

김영학 이직스쿨 대표  |  careerstyling@gmail.com  |  승인 2020.06.17  07:3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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