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진욱 부국장] 대기업 수난시대다. 정부와 지자체, 정치권은 물론이고 사법영역까지 ‘대기업 몰아세우기’가 한창이다. 

대한항공은 최근 서울시와 자사 소유의 송현동 땅(3만7000㎡) 매각을 놓고 충돌했다. 공원을 만들겠다며 서울시가 시세(업계 추산가) 6000억대 땅을 4670억원에 사겠다고한 때문이다. ‘헐값 인수’ 논란이 불거졌다. 그 사이 입찰의향서를 제출했던 15개 기업은 서울시의 공원화 발표 이후 모두 입찰을 포기했다. 가뜩이나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상황에서 송현동 부지 매각으로 경영난 타개를 꾀하던 대한항공으로선 충격이 컸다.

‘경제 검찰’ 공정거래위원회를 앞세운 대기업 규제 행보도 강도가 약하지는 않다. 공정위는 지난달 일감몰아주기 혐의로 한화그룹에 심사보고서(검찰의 기소장 격)를 발송했다. 2015년부터 한화 계열사들이 김승연 한화 회장의 아들 3형제(동관·동원·동선)가 지분 100%를 보유한 한화S&C에 부당하게 일감을 몰아줬다는 판단에서다. 한화그룹으로선 억울해하면서도 추후 공정위 전원회의를 통해 적극 해명하겠다는 입장이다. 

한화 외에 하림, 효성, 대림, LS, 아모레퍼시픽, 미래에셋, 하이트진로, SPC 등 다른 대기업들도 현재 부당 내부거래와 관련해 공정위 조사를 받고 있다.

지난 9일 경영승계 문제와 관련, 구속여부를 놓고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례에서도 '검찰의 대기업 길들이기’라는 평이 뒤따랐다. 특히 삼성 쪽에서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검찰수사심의위를 소집, “사법처리의 적정성을 판단해달라”고 요청한 지 이틀만에 검찰이 이 부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점은 다분히 의도적인 조치로밖에 해석이 안된다.   

지금 대기업을 향한 옥죄기는 입법과 행정, 사법 각 영역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이 지금까지 보여온 경제정책의 프레임을 냉정히 따져보면 현재의 대기업 대응방식은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를 인정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다. 

대선후보 때 낙수효과를 부정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신년사에서도 “이미 오래 전에 낙수효과는 끝났다”고 강조했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역시 공정거래위원장 재직당시 “한국경제 성장의 상징이던 낙수효과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고 단정한 바 있다.    

현 정부가 표방하는 소득주도성장 정책 자체가 대기업의 낙수효과를 긍정하지 않는데 기초를 둔다. 가계소득을 늘려야 소비가 증가하고 그에 따라 기업 투자와 고용이 늘어나 경제가 선순환한다는 ‘분수효과’ 논리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직수효과'의 개념에 더 가깝다. 이러다 보니 기업 중심의 ‘공급’ 보다는 가계 중심의 ‘수요’에 더 중점을 둔 경제정책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정말 대기업의 낙수효과는 없는 것일까. 올 초 한국경제연구원은 ‘대기업 매출이 10% 늘면 중견·중소기업의 매출은 2.7% 따라 오른다’는 연구결과를 공개해 이런 논리를 반박했다. 한경연에 따르면 자동차·트레일러 대기업의 매출이 2010년 107조1000억원에서 2018년 141조6000억원으로, 기업 수가 19개에서 25개로 각각 1.3배로 증가할 때 관련 분야 중견·중소기업의 매출도 49조1000억원에서 70조6000억원으로 1.4배로 늘었다.  

현재 대형마트는 월 2회 의무휴업을 시행 중이다. 지역상권과의 상생을 위해 법적테두리를 정해놓은 때문인데, 여기에도 낙수효과가 관여한다. 복합쇼핑몰이 많아지면 지역상인들이 피해를 본다는 게 당초 유통대기업 규제의 목적이이었지만 실제 복합쇼핑몰이 오히려 지역상권 활성화에 도움을 준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해 12월 한국유통학회는 "스타필드시티 위례가 문을 연지 1년 만에 반경 5㎞ 내 상권 매출이 이전보다 6.3% 가량 늘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소비자들이 복합쇼핑몰에 방문한 날 주변 상점들도 동시에 이용하면서 낙수효과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대기업의 성장은 중소기업의 성장과 절대 무관할 수 없다. 큰 기업이 이익을 남기면 그 만큼 작은 기업에 대한 투자와 관련 인력의 고용도 늘어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론적 접근이 아닌 현실적 접근, 즉 우리가 주변에서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이고 포괄적인 의미에서의 낙수효과는 '분명'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