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온디맨드 플랫폼 기업의 시작은 경기 불황이다. 간혹 공유경제라는 달콤한 패러다임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포장하려는 일각의 시도가 벌어지지만 핵심은 플랫폼의 수요와 공급, 그리고 조절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불황이 찾아오고 노동시장이 경직되는 순간 온디맨드 플랫폼으로 몰려드는 공급자의 숫자가 많아지고, 공유의 개념은 플랫폼의 비즈니스 전략 중 하나로만 작동할 뿐이다.

글로벌 온디맨드 플랫폼의 선두주자인 우버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세계에서 가장 경제적 불평등이 높았던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탄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셈이다.

다만 온디맨드의 태생과는 무관하게, 온디맨드의 비즈니스가 창출하는 경제적 효과는 다른 측면에서 분석되어야 한다. 불황을 먹고 탄생한 온디맨드를 무조건 '악마'로 묘사하기에는 그 기술적 진보와 새로운 직업 생태계의 가능성이 아깝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급자, 즉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처우 및 환경에 대한 분석은 이 두 가지 명제를 동일선상에 위치시킨 후에야 논의할 수 있다.

▲ 출처=갈무리

우버 드라이버를 노동자로...'다만'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9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공공사업위원회(The California Public Utilities Commission)는 AB5(Assembly Bill 5) 법안에 따라 우버를 대상으로 드라이버를 독립계약자에서 노동자로 재분류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AB5 법안은 올해 1월 시행됐다. 기업과 노동자의 관계에서 노동자의 지위가 소위 ABC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면 기업은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제공해야 하며, 이를 어기면 벌금과 영업 중단을 감수하는 법안이다. A, 즉 일하는 사람이 회사의 간섭에서 자유로운지 판단하며 B, 일하는 사람이 통상적인 비즈니스 외 업무를 수행해야 하고 C, 일하는 사람이 독립적인 고객층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ABC 테스트다.

우버 및 리프트 드라이버의 경우 ABC 테스트에 따르면 노동자로 분류된다. 그런 이유로 우버와 리프트도 자사 드라이버를 노동자로 분류해야 하지만, 이들 플랫폼 기업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헌법 소원을 내는 한편 지역민을 대상으로 하는 여론전까지 돌입하며 AB5 법안을 온 힘으로 저지하려 노력한다. 드라이버를 AB5 법안에 따라 노동자로 분류할 경우 엄청난 영업손실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공공사업위원회의 행정명령으로 우버와 리프트는 오는 7월 1일까지 드라이버를 대상으로 노동자의 처우를 제공해야 하며, 이를 이행하지 못할 경우 벌금을 내거나 최악의 경우 영업 중단을 당할 위기에 처했다.

▲ 출처=갈무리

다만 캘리포니아 공공사업위원회는 우버 및 리프트를 대상으로 AB5 법안 이행을 독촉하면서도 온디맨드 기업들의 반발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버 및 리프트 드라이버 중에서 상당수의 사람들이 본인을 노동자가 아닌 긱 이코노미 종사자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온디맨드 기업도 여기에 집중한다. 지난 1월 <이코노믹리뷰>가 미 샌프란시스코 피어70에서 만난 우버 관계자는 AB5 법안을 두고 "규제 당국이 우버의 비즈니스 모델을 바꾼다면 우버는 생존할 수 없다"면서 "많은 드라이버들이 노동자의 지위보다는 자유롭고 다양한 업무를 할 수 있는 긱 이코노미 종사자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양쪽의 이해관계가 접점을 보이는 가운데 규제 당국의 무리한 개입은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메시지다.

▲ 출처=갈무리

국내 상황은?
국내 온디맨드 시장에서 플랫폼 노동자와 관련된 현안은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을까.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최근 국내 O2O 시장 현황을 파악한 결과 관련 기업은 555개에 이르며 플랫폼 노동자는 52만1000여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 O2O 기업에서 플랫폼 노동자로 분류되는 외부 서비스 인력은 약 52만1000명으로 전체 인력의 97%며, 내부 고용 인력은 3%에 불과한 약 1만6000명에 불과하다. 지난해 나온 한국고용정보원의 ‘플랫폼 경제종사자 규모 추정과 특성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플랫폼 노동자는 46만9000명에서 53만8000명으로 추산됐다. 두 데이터를 비교분석하면 국내 플랫폼 노동자의 숫자가 50만명대 중반인 것으로 추정된다.

시장은 커지고 있으나 아직 국내에서 플랫폼 노동자와 관련된 논의와 연구는 초기 단계다. 지난 1월 사단법인 오픈넷이 주최하는 ‘타다 금지법을 금지하라’ 대담회에서 박경신 고려대학교 교수는 "우리도 AB5와 같은 법안이 통과되어야 한다고 본다"면서도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라 말한 바 있다.

이 지점에서 쏘카 VCNC 타다의 플랫폼 노동자 이슈가 불거지며 관련된 논의가 급물살을 탄 장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당시 타다 드라이버와 같은 플랫폼 노동자 처우 개선과 관련된 논란에서 VCNC는 "어차피 직원을 모두 고용할 수 없고(그럴 돈도 없고) 우리는 (예외조항을 통해) 정당한 자동차 대여업을 하고 있어서 현재의 근로상황에는 문제가 없다"면서 "많은 타다 드라이버들도 이러한 시스템에 안착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우버의 메시지와 동일하다.

그러나 실제 타다 드라이버로 일했던 사람들은 정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타다 드라이버도 타다의 구체적인 업무 지시를 받기 때문에 노동자로 분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조속히 AB5 법안이 통과되어 노동시장의 사각지대에 빠진 플랫폼 노동자들이 정당한 지위를 얻어야 한다고 봤다.

이와 관련된 당국의 첫 판단은 타다와 같은 플랫폼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지난해 5월 타다 드라이버로 일했던 곽 모씨가 감차 조치로 2개월만에 계약해지된 상태에서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제기했으나 각하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달 28일 중앙노동위원회의 판정은 달랐다.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인용하며 사실상 타다 드라이버가 노동자라는 쪽에 무게를 실었다. VCNC가 드라이버에 대한 강력한 제어를 시도했기 때문에, 타다 드라이버가 노동자라는 해석이다.

▲ 플랫폼 노동 대안 마련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 포럼. 사진=최진홍 기자

양측의 주장이 첨예하게 충돌하는 가운데 플랫폼 노동자의 지위를 명확하게 가리는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플랫폼 노동 대안 마련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 포럼이 지난 4월 출범했기 때문이다. 포럼은 이병훈 중앙대학교 교수를 위원장으로 삼아 권현지 서울대학교 교수, 박은정 인제대학교 교수가 공익 전문가로 참여한다. 여기에 김성혁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정책국장, 박정환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정책국장, 구교현 라이더유니온 기획팀장, 이영주 라이더유니온 정책국장이 힘을 더한다. 기업에서는 정미나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정책실장과 이현재 우아한형제들 이사, 이승훈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 대외협력팀장, 유현철 스파이더크래프트 대표가 머리를 맞대고 있다.

정부가 가이드 라인을 주는 방식이 아닌, 일종의 '노사'가 플랫폼 노동자의 지위를 두고 논의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최성진 코스포 대표는 “정부가 가만히 있는데 스타트업(기업)이 앞으로 나섰다”면서 “스타트업은 디지털 경제의 중심에 있으며, 문제를 해결하는 기업이다. 당장의 문제해결이 어려워도 사회적 공론화를 일으키려고 한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이어 “노동의 미래, 한국의 미래를 고민하면서 좋은 결과물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들은 올해 가을 경 플랫폼 노동자 지위와 관련된 1차 결과물을 발표할 예정이다.

▲ 사진=최진홍 기자

플랫폼 노동자의 딜레마
온디맨드 기업은 불황에서 탄생하며, 필연적으로 공급자인 플랫폼 노동자들은 플랫폼에 종속당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그 연장선에서 플랫폼은 플랫폼 노동자에게 높은 자유도를 보장하며 긱 이코노미를 가능하게 만들어 주고, 플랫폼 노동자는 자신의 상황에 맞게 일과 일상을 병립시키는 것이 '최고의 그림'이다.

문제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이 커질 때 시작된다. 무엇보다 온디맨드 기업이 존재감을 키우는 시기는 불황의 시기며, 이 순간 플랫폼에 종속되는 플랫폼 노동자는 높은 자유도를 보장받으며 일과 일상을 병립시키는 것은 일종의 사치가 되어 버린다. 특히 타다 드라이버는 물론 배달앱 라이더의 경우 이미 존재하던 사업군이 온디맨드의 영향을 받아 새롭게 재해석된 경우가 많다. 기존 업무가 난데없이 플랫폼 위로 올라와 긱 이코노미를 강요받으며 처우는 전과 달라질 것이 없다면, 당연히 분노가 커질 수 밖에 없다. 플랫폼 노동자의 딜레마다.

이 문제를 풀어가기 위한 민간, 아니 노사의 논의가 계속되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운신의 폭이 넓어져야 한다는 조언을 한다. 전업 플랫폼 노동자와 말 그대로 일과 일상을 병립시킬 수 있는 플랫폼 노동자를 분류하거나, 이런 작업이 의미가 없다면 최소한 플랫폼에서 플랫폼 노동자에게 진정한 의미의 긱 이코노미를 보장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버의 경우 AB5 법안이 시행되었으나 우버 드라이버 중 여전히 70% 이상은 플랫폼 노동자의 지위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 플랫폼 노동자와 관련된 논의를 전개하며 반드시 참고해야 하는, 또 최종 목표 중 하나로 삼아야 하는 시장의 변화다. 국내 플랫폼 노동자들도 '노동자 지위보다는 플랫폼 노동자가 더 좋다'는 여론이 우세해야 플랫폼도 존속하고 생태계도 유지된다.

플랫폼은 불황으로 어려워진 플랫폼 노동자들의 쏠림 현상을 이해하고, 연결 그 이상의 가치를 제공하는 작업에 나서야 한다. 타다 드라이버의 경우 VCNC는 타다 드라이버에게 과도한 규제 및 제약을 걸었으며 이 부분이 문제가 됐다. 그런데 이 문제는 역으로 생각하면, VCNC가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었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바로 '드라이버들을 강제해 안락하고 편리함을 제공하는 추상적인 서비스'에 불과했다는 뜻이다. 이런 부분에 대한 노력과 더불어 플랫폼과 긱 이코노미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이 타진되어야 한다.

플랫폼 노동자들도 긱 이코노미의 진정한 가치를 보장받기 위한 투쟁을 이어가며, 기존 사업과 디지털화된 사업의 차이점도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기존 오프라인에서만 벌어지던 사업과, 디지털로 더욱 편리해진 사업을 비교하며 과연 스스로의 처우가 나빠지기만 했는지 돌아보고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신의 한 수를 준비해야 한다. 긱 이코노미가 플랫폼 노동자들의 목줄을 조이고 있는지, 혹은 이미 목줄이 졸린 상태에서 별다른 반항도 하지 못하다 디지털 플랫폼 시대를 맞아 필요이상의 몽니를 부리는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고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