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말을 쏘았다> 호레이스 맥코이 지음, 송예슬 옮김, 레인보우퍼블릭북스 펴냄.

이 소설은 1935년작이다. 1930년대 대공황 시기, 헐리웃에서 ‘변변치 않은’ 엑스트라 배우로 일하던 청년 로버트와 글로리아가 우연히 만난다. 가난한 로버트는 천재 영화감독을, 성적 학대와 굶주림을 피해 이곳 저곳 전전하던 글로리아는 헐리웃 스타를 꿈꾼다.

둘은 ‘댄스 마라톤’ 대회에 커플로 참가한다. 댄스 마라톤은 무도회장에 갇혀 최후의 커플이 남을 때까지 쉬지 않고 춤추는 대회다. 규칙은 1시간 50분간 댄스, 10분간 휴식이다. 식사와 세면, 용변은 물론 수면도 10분 내에 해결해야 한다. 우승 상금 1만달러도 탐나지만, 대회 기간 숙식 문제가 해결된다는 점 때문에 이 엽기적 대회에는 늘 참가자들이 몰린다.

주최측은 댄스의 극한을 보여주면 된다. 댄스시간에 졸거나 춤을 멈추면 교관들이 뺨을 때린다. 기절하면 코 밑에 암모니아병을 들이대고 얼음을 가득 채운 욕조에 처넣어 깨운다. 춤추다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장면은 “언제라도 재밌는 구경거리”다. 그때마다 관람객들은 “신이 나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칼에 꽂혀 마침내 무릎 꿇은 피투성이 투우를 보듯, ‘죽음의 댄스’ 탈락자에게는 환호가 쏟아진다.

오로지 생존을 위해 꿈을 접고 댄스 마라톤에 나선 로버트의 위안은 오후 한순간 창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커다란 삼각형 모양의 햇살이다. 그 10분간을 누리기 위해 그는 글로리아를 안고 삼각형 안에서만 조금씩 움직인다. ‘대회가 끝나면 햇빛을 실컷 보며 살아야지.’ 그러나 삼각형 햇살 조각은 점점 쪼그라든다. 다리에 달라붙고, 턱까지 올라온다. 발 뒤꿈치를 들어 눈을 부릅뜨고 창 밖 태양을 응시하지만 순식간에 햇빛은 자취를 감춘다.

춤을 시작한 지 879시간 만에, 20커플이 남은 상태에서 돌연 댄스마라톤이 중단된다. 관람객들 간 폭력사건으로 사망자가 나왔기 때문이다. 둘은 그날 밤 처음으로 무도회장을 나온다. 글로리아는 자신이 고래 뱃속에 갇혀 있던 요나(BC 8세기에 활동한 이스라엘 선지자) 같다고 느낀다.

“이 도돌이표에서 벗어나려고요. 이 놈의 고약한 것(인생)도 이제 끝이에요.” 말리부가 보이는 해변 벤치에서 글로리아가 가방에 숨겨온 작은 권총을 꺼낸다. “제발 쏴줘요. 이 고통을 끝낼 방법은 이것뿐이에요.” 로버트는 할아버지가 다리 부러진 말의 고통을 끝내 주려고 총 쏘던 것을 떠올리며 그녀의 관자놀이에 방아쇠를 당기는 호의를 베푼다.

경찰에 체포된 로버트가 묻는다. “사람들은 말을 쏘잖아요, 안 그래요?(They shoot horses, don’t they?)”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자 원제목이다. 로버트의 ‘호의’는 법정에서 살인죄로 판단된다. 캘리포니아주법은 그에게 극형(사형)에 선고한다.

저자는 미국 대공황기에 여러 편의 하드 보일드 소설을 쓴 작가다. 댄스 마라톤 대회는 실제로 1920~1940년대 미국 전역에서 유행한 이벤트 행사였다. <그들은 말을 쏘았다>는 저자가 샌타모니카에서 열렸던 댄스 마라톤 대회의 경비원으로 일한 실제 경험을 토대로 집필했다.

이 책이 1950년대 유럽에 소개되었을 때 시몬 드 보부아르는 “미국에서 탄생한 최초의 실존주의 소설”이라고 높게 평가했다고 한다. 1969년 같은 제목의 영화로도 제작됐다. 시드니 폴락 감독이 연출하고 제인 폰다가 여주인공을 맡았다.

‘햇살’같은 꿈은 사치, 멈추면 탈락이고 탈락하면 무도회장 바깥 헐벗고 굶주리는 현실 사회로 내동댕이쳐지는 85년전의 기이한 댄스 마라톤. 2020년 지금은 얼마나 다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