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n번방 방지법'이라 불리는 전기통신사업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카카오가 이를 선제적으로 도입해 눈길을 끈다. 실제로 카카오는 26일 운영정책에 타인의 성착취 행위 금지, 아동·청소년 성보호 관련 조항을 신설했으며 오는 7월 2일부터 조항이 적용된다는 설명이다. 국내 인터넷 기업 중 처음이다.

카카오는 2014년 소위 감청 논란에 휘말린 트라우마가 있다. 카카오톡의 정보를 수사당국이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이 알려지며 이용자들이 일시적으로 카카오톡을 떠나 텔레그램 등으로 대거 망명하기도 했다. 최근 코로나19 정국을 맞아 카카오톡에 전자출입 QR코드를 접목하는 과정에서 카카오의 참여가 늦었던 것도 당시의 트라우마 때문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런 가운데 텔레그램에서 벌어진 잔혹한 성범죄를 계기로 n번방 방지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아이러니하게도 카카오톡 사찰 논란을 겪으며 이용자들을 텔레그램에 빼앗겼던 카카오가 이제는 텔레그램에서 벌어진 범죄를 이유로 시행을 앞두고 있는 n번방 방지법 적용에 선제적으로 나서는 분위기다. 여기에는 또 다른 카카오의 트라우마가 있다.

텔레그램, 그리고 n번방

n번방 방지법은 최근 국민적 공분을 자아낸 조주빈 일당의 잔혹한 성범죄를 막기위해 탄생했다. 조주빈 일당은 익명성이 보장되는 텔레그램을 통해 피해자를 착취하고 암호화폐 등으로 수익을 올렸으며, 현재 재판중이다.

n번방 방지법이 지난 20대 국회에서 재적 177인 중 찬성 174인, 기권 3인으로 통과된 가운데 이를 둘러싼 논란도 크다. 법의 취지대로 SNS에서 벌어지는 성범죄를 막는 시도는 고무적이지만 그 실효성에 있어서는 의문부호가 달리기 때문이다. 특히 텔레그램과 같은 외국계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국내 사업자에게 과도한 검열 의무를 지운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그런 이유로 오픈넷은 지난 5월 13일 당시 n번방 방지법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하자 “입법 취지와 필요성에는 공감한다”면서도 “부가통신사업자에게 불법촬영물 유통 방지를 위한 기술적·관리적 조치 의무를 지우는 내용은 이러한 유통 방지 의무가 텔레그램이나 카카오톡처럼 비공개 대화방 서비스에도 적용된다면 이용자의 통신비밀, 프라이버시, 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법 통과 당시 국회에서도 n번방 방지법의 실효성을 두고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실제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금태섭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n번방 방지법을 두고 “불법 촬영물을 막기 위해 어느정도까지 검색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문제제기를 했다.

▲ 출처=카카오

n번방 방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후에는 코리아스타트업포럼,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벤처기업협회가 성명을 내어 “국회와 정부는 일방적으로 부가통신사업자들을 규제하고 이용자의 편익을 실질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 법률을 통과시켰다”면서 “n번방 사건과 같은 범죄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분석하고 해결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이 법안들의 시행으로 동종·유사 범죄가 근절될지에 대한 의문은 해소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트라우마 큰 카카오

논란의 여지가 큰 n번방 방지법이 시행을 앞 둔 가운데 카카오가 선제적으로 법 적용에 나선 배경에 시선이 집중된다.

카카오는 지난 2016년 카카오톡 사찰 논란으로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수사당국이 이용자들의 카카오톡을 자유롭게 들여다볼 수 있다는 말이 퍼지며 카카오의 핵심 플랫폼인 카카오톡을 둘러싼 위기가 커졌기 때문이다. 이들은 텔레그램 망명을 택하며 카카오를 잔뜩 긴장시켰다.

물론 수사당국이 카카오톡을 들여다 보려면 영장이 존재해야 하며, 카카오도 이용자들의 콘텐츠를 영원히 보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시 논란은 지나치게 뻥튀기된 면이 크다. 그러나 이용자들은 본인의 개인정보가 너무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공포에 질려 카카오톡을 강하게 비판했으며, 당시 이석우 다음카카오(카카오)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까지 열어 고개까지 숙이는 한편 카카오톡 감청 영장을 거부하겠다는 입장까지 밝힌 바 있다.

이러한 트라우마는 카카오가 코로나19 정국에서 정부의 QR 출입증 시스템에 늦게 참여한 배경이 되기도 했다. 실제로 QR 출입증 시스템 참여를 두고 카카오 내부에서 개인정보유용에 대한 트라우마가 발현됐고 이에 카카오는 카카오톡이 아닌 카카오페이를 대안으로 제시했으나 정부가 이를 거절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자 카카오는 뒤늦게 카카오톡을 통한 시스템 참여를 선언하며 상대적으로 네이버와 비교해 늦게 정부의 정책에 공조하게 됐다.

또 다른 트라우마

카카오는 정부의 QR 출입증 시스템 정국에서도 전격적인 참여를 내리지 못할 정도로 개인정보 트라우마가 강하다. 그런 이유로 논란이 많은 n번방 방지법 정국에서 카카오가 국내 인터넷 기업 중 처음으로, 그 누구보다 카카오가 이례적으로 선제적인 적용을 결정한 배경에 시선이 집중된다.

여기서 카카오의 또 다른 트라우마를 만날 수 있다. 바로 아청법 트라우마다.

카카오톡 감청 논란이 불거지고 6개월이 흐른 후 경찰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청소년성보호법), 즉 아청법 위반 혐의로 당시 이석우 공동대표를 소환했다. 다음과 카카오의 합병 전 카카오그룹의 음란물 유포를 방조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이 대표는 2015년 8월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조사까지 받았다.

업계에서는 다음카카오(카카오)가 괘씸죄에 걸린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카카오톡 감청 논란을 거치며 다음카카오(카카오)가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검찰조사에 불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직후 수사당국이 이석우 당시 대표를 아청법 위반혐의로 소환했고, 2015년 6월 전격적인 세무조사가 벌어진 후 이 대표가 검찰에까지 소환됐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의 세무조사는 이례적이라 부를 정도로 강력했다. 광우병 사태 당시였던 2008년, 세월호 사태 직후인 2014년에 이어 카카오톡 감청논란 직후인 메르스 사태 후에도 세무조사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재웅 쏘카 대표(당시는 쏘카 대표를 맡기 전)는 당시 트위터를 통해 “뭔가 잘못한 게 있으면 당연히 세무조사를 받고 세금을 내야겠지만 다음과 다음카카오 세무조사는 왜 광우병 파동 3개월 뒤, 세월호 사건 두 달 뒤, 그리고 그게 마무리된 지 1년도 안 돼 메르스 발병후 세무조사를 실시할까”라는 말로 정부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여러 가지 의문이 남는 가운데 카카오의 수난은 이어졌다. 결국 이석우 대표는 사임했으나 수원지검 성남지청은 아동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아청법 위반 혐의로 2015년 11월 4일 이석우 대표를 불구속 기소하는 일도 벌어졌다.

카카오는 “서비스내 음란물 유통을 막기 위해 사업자로서 가능한 모든 기술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며 “카카오 그룹의 경우 성인 키워드를 금칙어로 설정, 해당 단어를 포함한 그룹방 이름이나 파일을 공유할 수 없도록 사전적 조치를 취하고 있으며 이용자 신고시 해당 이용자의 서비스 이용제한, 중지와 같은 후속조치를 통해 유해정보 노출을 차단하고 있다”고 강조했으나 소용없었다.

이 대표는 최종 판결에서 풀려났으나, 카카오 입장에서는 이 역시 트라우마가 남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국 카카오는 감청논란의 트라우마, 성범죄 트라우마를 동시에 가진 상태에서 n번방 방지법 정국에서는 후자에 더 집중한 것으로 분석된다. 

아동 청소년 성범죄에 대한 무관용 원칙이 필요하다는 경영진의 단호한 결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이번 현안을 다른 각도에서 곰곰이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모든 일에는 정작 n번방 방지법에는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는, 텔레그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