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황대영 기자]  0%대 초(超)저금리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돈의 흐름’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 이러한 돈의 흐름은 자산을 증식하는 재테크의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돈의 흐름을 읽는 자가 효과적인 자산 증식을 바랄 수 있으며, 투자자들이 마다하지 않는 ‘익절’을 거머쥐게 된다.

이러한 돈의 흐름은 시대와 시장 상황에 따라 변한다. 개발도상국으로 높은 금리를 제공하던 과거와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닷컴버블, 국제금융위기 등을 거쳐 이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진입했다. 주식, 부동산, 채권, 예·적금 등 모든 투자활동은 범람하는 정보 속에서 보다 외적인 요소에 영향을 받고 있다. 과거 전문가의 범주에 속한 금융 투자 부문에도 이제 일반 투자자들이 쉽게 접근하고 있다.

연이율 ‘20%’ 이상… ‘은행’으로 몰린 돈

은행은 가장 기본적인 재테크의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가치 변동성이 적은 안전자산으로 보유하는 것보다 높은 예·적금 금리를 제공하는 은행을 찾았다. 우리나라가 본격적인 개발도상국 대열에 합류한 1970~80년대 시중은행 예금금리는 무려 18.6~22.8%에 달했다. 물론 1~2차 오일쇼크 때문에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금리도 일정 반영됐지만, 은행에 돈을 저축하는 것만으로도 자산이 늘어난 시기다.

▲ 예금은행 총예금(말잔). 출처=한국은행

대체 투자수단이 부족했던 시기에 돈의 흐름은 은행으로 집중됐다. 또 정부의 저축 장려 캠페인은 시중의 자금이 은행으로 흐르도록 유도했다. 금융상품과 정보가 부족했던 시절에는 돈을 집안에 꽁꽁 숨겨두는 것보다 은행에 맡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재테크 수단으로 작용했다. 특히 은행은 신뢰도가 쌓이면서 전문 투자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안전하고 기초적인 투자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예금은행 총예금(말잔)은 1962년 391억원, 1970년 7897억원, 1980년 12조4219억원, 1990년 84조541억원, 2000년 404조6609억원, 2010년 873조8906억원, 2020년 4월 1975조1207억원으로 급격하게 불어났다. 이 같은 예금은 다시 은행을 통해 기업·가계 대출로 이어져 새로운 돈의 흐름을 만들어냈다.

‘강남불패’… 돈의 흐름은 부동산으로

그러나 우리나라 경제의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돈의 흐름은 은행에서 다른 곳으로 향했다. 투자자들은 낮아지는 예금금리에 실질금리(명목금리에서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을 제외한 금리)가 사실상 마이너스로 돌아서자 부동산, 주식 등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가 부동산이다. 1987년부터 이어진 부동산 투자 열풍은 서울 강남 집값을 폭등시켰다. 1988년 15.2%, 1989년 18.1%, 1990년 29.0% 상승한 강남 집값은 ‘돈의 흐름’이 가져온 결과다. 다시 이어진 폭등은 투자자들에게 부동산이 확실한 재테크 수단으로 각인됐다.

▲ 강남 주택매매가격 동향. 출처=한국감정원

각 정권마다 널뛰는 부동산 가격에 각종 규제 대책을 쏟아냈다. 그러나 강남 집값은 떨어지지 않고 계속 상승한다고 하여 투자자들 사이에서 ‘강남불패’라는 신조어도 통용됐다. 실제 강남 집값은 1986년, 1991~93년, 1995년, 1998년, 2004년, 2010년, 2012~13년 구간에서 하락해 진정한 강남불패가 아니었지만, 전국 대비 하락 폭이 작고 상승 폭은 커 투자자들에게 체감상으로 느껴졌다.

3저(低) 호황을 탄 증권시장… 변동을 가진 양면성

우리나라 최초의 증권거래소는 1956년 3월 3일에 설립됐다. 당시 조흥은행(신한은행 전신)을 비롯해 12개 기업이 최초로 상장했으며, 주식분산이 돼 있지 않아 사실상 국공채 시장에 가까웠다. 우리나라 증권시장은 1970년까지 고금리가 지속되면서 유동성을 공급받기 어려워 시가총액이 1000억원에 미치지도 못했다. 증권시장은 1970년대 기업공개촉진법이 제정되고, 증권거래법이 활성화 목적으로 여러 차례 보강되면서 ‘투기가 아닌 투자’ 면모를 갖추게 됐다.

본격적으로 증권시장이 성장하게 된 계기는 저달러·저유가·저금리 등 1980년대 중반 이후 ‘3저 호황’을 타면서다. 유례없는 호황기를 맞은 국내 증시는 1985년 9월부터 1989년 3월까지 3년 6개월 간 상승 랠리를 지속했다. 그러나 1989년 4월 3일 장중 최고점인 1015.75를 찍은 코스피 지수는 1년 반 뒤인 1990년 9월 18일 559.98로 내려왔으며, 다시 1994년 11월 9일에 1145.66으로 올랐다. 이후 IMF 외환위기로 증권시장은 초토화 직전까지 내몰리며, 투자자들에게 ‘변동성이 높은 투자처’로 인식돼 왔다.

정보의 비대칭에서 ‘정보의 홍수’ 시대로

투자의 기초는 ‘정보’다. 성공적인 투자는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빠르게 얻고 행동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그러한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얻기 위해 직접 발품을 팔거나 특정한 채널을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극히 한정된 정보는 투자자들 사이에 비대칭성을 가져왔고, 정보의 빈부격차에 따라 투자의 성패도 극명하게 갈렸다.

그러나 다양한 채널을 통해 막대한 정보가 쏟아지는 현재는 필요한 정보를 어떻게 찾아내느냐가 관건이다. 6·17 부동산대책, 기준금리 인하, 주식 양도세 등 국내 정보부터 미·중 무역전쟁, 코로나19 팬데믹 등 해외 정보까지 정보의 홍수 속에서 투자에 필요한 정보를 찾기 위해 혈안이다. 돈의 흐름은 정보가 가리키는 곳으로 향한다. 이는 돈의 흐름이자 현재의 투자 트렌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