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황대영 기자] 은행 예·적금 실질금리 ‘0%’. 은행에 돈을 맡겨도 자산증가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행으로 돈이 몰리고 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경기 위축으로 각종 금융투자 사고가 끊이지 않으면서 ‘안전’을 도모하는 돈과 투자처를 찾으며 기다리는 ‘부동자금’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에 돈을 찾기 위한 ‘뱅크런’이 아닌, 맡기기 위한 ‘뱅크런’이 일어나고 있다.

‘안전’을 찾아 은행으로, 또 은행으로

은행으로 돈이 몰리는 가장 큰 이유는 ‘안전’이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로 시중 유동성은 크게 증가했지만 연이은 정부의 부동산 규제안, 잇따라 터진 사모펀드 사고 등으로 투자 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여기에 주식시장까지 코로나19로 강한 변동성을 띠면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을 때까지 은행에 맡기는 돈이 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6월 금융기관 수신 가운데 수시입출식 예금(말잔)은 791조2000억원으로 전월 대비 32조8000억원이 늘었다. 또 같은 기간 초단기 공사채형 금융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는 135조원으로 전월 대비 17조1000억원 줄었다. 올해 상반기(1~6월) 수시입출식 예금은 107조6000억원, MMF는 30조1000억원 늘어났다. 이 금융상품들은 투자자들이 곧바로 찾을 수 있어 새로운 투자처를 찾기 전까지 맡기는 ‘부동자금’ 성격이 강하다.

▲ 출처=한국은행

은행은 유입된 돈을 단지 예금이자만 지급하는 게 아니라, 다른 금융상품과 연결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실제 주요 금융지주들은 저금리 기조 속에서 예대마진 악화 부담에 수신금리를 높이기 보다 계열사 상품인 카드, 보험 등과 연결해 고금리 상품 이상의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고객과 부동자금을 붙들어두는 한편, 예대마진보다 계열사 금융상품을 통한 수익을 도모한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새로운 투자처를 찾기 전까지 안전하면서도 금융혜택을 누리게 된다.

또 금융자산이 5억~10억원 이상인 경우 은행의 프라이빗뱅킹(PB)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PB 서비스는 은행이 보유한 전문 인력을 통해 고객의 자산과 투자성향에 맞는 상품 선정, 조언을 들을 수 있는 VIP 혜택이다. 신한은행은 이 같은 PB 서비스를 지난해 12월부터 인베스트뱅킹(IB) 서비스와 결합해 기업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 하나은행은 지난 5월부터 도입한 비대면 PB 서비스를 통해 고객이 언제 어디서나 스마트폰으로 화상상담을 받을 수 있으며, 하반기에는 투자상담과 상품가입 등을 추가할 계획이다.

은행은 돈을 맡기고 이자를 받는 일차적인 목적 이외에도 투자상품, 금융서비스 등 다른 혜택을 위한 창구로 활용되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로 불거진 향후 경기 불확실성, 저금리 기조로 인한 유동성 증가, 정부의 부동산 규제안, 잇따른 사고에 의한 금융투자 시장의 불안정성 등 다양한 변수는 은행으로 돈이 몰리게 만들고 있다.

은행으로 돈이 몰리는 3가지 이유

홍춘욱 EAR리서치 대표는 시중의 부동자금이 넘쳐 은행으로 돈이 몰리는 게 경제에 이익만 가져다 주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홍 대표는 현재 은행으로 돈이 몰리는 이유에 대해 크게 3가지를 꼽았다. 이는 금리하락과 경상흑자, 사모펀드 사태, 주식과 부동산 가격 급등이다.

홍 대표는 “경상흑자는 저축 대비 투자로 해석된다. 지난 5월 우리나라는 수출액이 줄었지만, 수입액도 줄면서 흑자를 기록했다. 기업과 가계가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불황을 만나서 저축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라며 “향후 미래 전망마저 불확실성이 커 돈을 움켜쥐고 있는 것이다. 경상흑자로 유입된 돈을 다시 투자해 순환이 이뤄져야 하는데, 투자가 그것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홍 대표는 사모펀드 사태를 지목했다. 홍 대표는 “라임, 옵티머스 등 사모펀드 사태가 은행으로 돈을 몰리게 하는 트리거가 됐다. 해당 사모펀드들은 중위험, 중수익 상품인줄 알았는데, 사실 고위험, 중수익이었다”라며 “투자자들이 수익을 조금 더 바라다가 크게 손실을 입으니까 안전을 찾게 된다. 은행으로 돈이 몰리게 한 직접적인 요인으로 분석된다. 또 정부가 판매사에 책임을 물으면서 투자상품이 줄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저금리로 인한 풍부한 유동성 공급으로 실물 경제의 영향도 반영됐다. 홍 대표는 “최근 부동산과 주식 가격이 너무 빨리 반등해, 조정 받기를 기다리는 투자자들이 많다”라며 “시장의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조달(대출)한 자금으로 당장 투자를 하지 못하고 대기성으로 은행에 맡겨둔 돈이 꽤 많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