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회장(會長)’은 주식회사 이사회의 우두머리로, 회사에서 가장 큰 권한을 행사함으로 경영 일선을 진두지휘하는 자리다. 

흥미로운 대목은, 국내 주요 대기업의 최고 경영자들 중에는 ‘회장’의 권한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른 직함으로 불리는 이들이 있다는 점이다. 흥미롭게도 이 직함들에는 각 기업 최고 경영자들의 성향 혹은 해당 기업의 역사나 분위기가 반영돼 있다. 국내 주요 대기업 최고 경영자들의 직함에 담긴 배경들에 대해 알아봤다. 

실질적 1인자, 명목상의 2인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와병 중인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경영전면에 나서고 있다. 총수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그는 왜 부회장일까.

삼성'그룹'이 해체된 후 삼성전자는 다른 기업의 ‘그룹’보다 규모가 크기에 이전의 삼성그룹과 같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렇기에 대중적인 의미에서 삼성전자의 총수는 곧 삼성 전체의 총수와 같은 의미로 여겨지고 있다.  

다만 현재 삼성전자의 총수가 ‘부회장’인 이유는 이재용 부회장의 부친인 이건희 회장이 병석에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부친에 대해 각별한 애정과 존경심이 있는 이재용 부회장이 부친이 생존하는 동안에는 회장의 직함을 쓰지 않으려고 한다는 해석도 있다.

이재용 부회장과 비슷한 맥락으로 회장이 아닌 다른 직함으로 불리는 이가 있으니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대표이사 수석부회장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본래 과거 현대그룹의 자동차사업부문이었다. 그러나 창업주인 정주영 회장이 작고한 후 총수 일가 형제의 경영권 분쟁이 일어났고 삼성전자와 마찬가지로 기업의 규모가 컸던 현대자동차는 별도의 기업으로 분리됐다. 

현대자동차는 분리 후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오히려 현대그룹보다 규모가 커졌고 이후 기아자동차, 현대건설 등 굵직한 기업들을 인수하면서 '현대자동차그룹'이 됐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현대자동차그룹의 회장인 정몽구 회장의 장남이다. 

80대 고령인 정몽구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사실상 물러나있게 되면서 정 수석부회장은 현재 현대-기아자동차를 총괄하는 최고 경영자를 역임하고 있다. 그 역시 아직 부친이 생존해 있기에 ‘회장’이라는 직함을 사용하지 않는다. 직함에 ‘수석’이라는 표현이 있는 것은 부회장이지만 회장과 같은 총괄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함이라는 해석이 있다. 

아직은 다소 무거운 ‘회장’의 이름

LG그룹 구광모 회장은 공식적으로 회장이라는 표현보다 LG의 '대표'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와 달리 LG는 선대 회장이 생존해 있지 않기에 그가 회장의 직함을 쓰는 것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러나 선대 회장인 구본무 회장이 다소 갑작스럽게 작고함에 따라 구 회장은 40대 초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총수의 자리에 올랐다.

대표이사라는 표현은 LG 이사회에서 그의 역할을 말하는 것이기에 이 역시 큰 문제가 없어 LG는 대외적으로 이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구 회장 스스로가 ‘아직은 배울 것이 많다’는 태도로 경영에 임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은 20대(29세), SK그룹 최태원 회장이 30대(38세)에 회장의 자리에 오른 것과 비교하면 구 회장의 총수 역임이 특별하게 빠른 것은 아니다. 

논란 제로, 명실상부 ‘회장’

SK그룹 최태원 회장,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그리고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은 명실상부한 각 그룹의 정점이다. 물론 이들 모두 이 정점에 오르는 과정이 순탄치 못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최태원 회장은 SK 창업주 최종건 회장의 직계가 아닌 조카다. 최종건 회장 작고 후 그의 동생이자 최종현 회장이 경영을 이어받았고 그의 장남인 최태원 회장으로 경영권이 이어졌다. 창업주의 직계 자손들은 다수의 SK 계열사의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김승연 회장은 한화그룹의 창업주인 김종희 회장의 장남이다. 김종희 회장이 후임을 정하지 못하고 1981년 작고하면서 당시 20대였던 김승연, 김호연 형제의 경영권 분쟁이 있었다. 결국 장남인 김승연 회장이 창업주의 의지를 이어받는 것으로 결론이 났고 차남은 한화에서 분리된 식품사업 계열사 ‘빙그레’의 경영을 맡게 됐다. 

롯데 신동빈 회장은 경영권 분쟁으로 따지면 국내에서 가장 심한 갈등을 겪은 총수다. 창업주인 신격호 회장은 일찍이 일본 사업(롯데홀딩스)은 장남인 신동주 전 부회장에게 한국 사업은 신동빈 회장에게 맡겨왔다. 그러나 신동주 전 부회장이 경영의 실각으로 일본 롯데 이사회의 신망을 잃으면서 양국 롯데 경영의 중심은 자연스럽게 신동빈 회장으로 옮겨갔다. 이에 두 형제는 한국과 일본 롯데의 경영권을 두고 지난 수 년간의 공방전을 이어갔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신격호 회장의 지지 의사, 롯데 지배구조의 정점인 광윤사 지분의 보유 등 입지로 신동빈 회장에게 맞섰다. 그러나 양국 롯데의 경영진들을 설득하지 못했고 결국 롯데의 경영권을 신동빈 회장에게 돌아갔다. 신 회장은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회에서도 대표이사로 추대되면서 한국과 일본 롯데를 통합하는 '원 탑' 회장의 자리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