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미국과 중국이 코로나19 책임론, 홍콩 국가보안법 정국에서 정면충돌하는 가운데 전 세계의 합종연횡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공통의 적에 대항해 손을 잡거나, 다소 씁쓸한 충돌이 벌어져도 느슨한 연대를 시도하는 장면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은 트럼프 보호 무역주의 여파로 관계가 소원해진 유럽과의 관계 개선에 신경쓰는 분위기다. 당장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미국 주요 관리들은 13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를 전격 방문해 중국 화웨이 및 코로나19 사태 등을 논의할 전망이다. 여기에 독일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감축에 대한 다양한 논의도 진행될 예정이다.

최근 영국이 2025년까지 자국 5G 사업에서 화웨이 장비를 전면 퇴출하기로 결정하는 등, 영국은 물론 유럽과 중국의 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닫는 중이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조심스럽게 미국과 유럽의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체제 복원'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다만 미국과 유럽이 아직 예전의 관계로 돌아가기는 어렵다는 말도 나온다. 당장 유럽연합이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에 디지털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한 후 미국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으며 최근 해당 협상은 결렬된 바 있다. 직후 미국은 유럽에 대한 관세보복을 선언하며 으르렁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주독 미군 감축을 시사하며 나토(NATO) 체제의 근간까지 흔드는 중이다. 나토 회원국들이 미국과의 약속대로 각국 국내총생산(GDP) 2% 수준으로 방위비를 올리고 있으나 아직 트럼프 대통령의 만족을 끌어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최근 유럽연합은 타 지역 외국인에게 문호를 개방하며 미국은 여전히 입국 금지국에 올리기도 했다.

미국과 유럽이 여전히 애증의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가운데, 중국은 인도와의 국경 분쟁으로 전전긍긍하고 있다. 거대 내수시장을 가진 인도와의 국경분쟁으로 중국 기업들의 현지 시장 진출이 막히는 한편 인기 서비스인 틱톡까지 차단되는 등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의 신경전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인도와의 분쟁은 최대한 원만히 해결하고 싶어하지만 아직 뜻대로 풀리지 않는 분위기다. 설상가상으로 캐나다와 호주 등 최근 반중국 대열에 이름을 올린 국가들의 포위망도 탄탄해지고 있다. 중국은 홍콩에 이어 대만과의 군사적 긴장까지 감수하며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는 중이다.

중국의 고립이 심해지는 가운데, 최근 중국과 이란이 포괄적 협력에 관한 협정을 조만간 체결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와 눈길을 끈다. 실제로 뉴욕타임즈는 12일(현지시간) 중국이 향후 25년간 이란에 약 480조원의 투자를 단행하는 대신 이란은 중국에 저렴한 가격으로 원유를 공급하는 협정을 체결할 계획이다.

최근 국제유가가 코로나19 사태로 폭락하는 가운데, 중국이 미국의 제재로 수출길이 차단된 이란의 원유를 저렴하게 받는 것은 큰 가치가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결국 중국이 자국처럼 미국의 강한 압박을 받는 이란과 연대를 강화해 새로운 친구를 사귀려는 전략적 포석을 쌓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 켄 후 화웨이 순환회장. 출처=화웨이

유럽과 중국의 관계도 미묘하다. 현 상황에서는 홍콩 국가보안법 사태 및 유럽의 화웨이 장비 배제를 계기로 대립하는 분위기지만 일각에서는 여전한 협력의 분위기도 감지된다.

영국이 화웨이 5G 장비 배제를 결정했으나, 현지 통신사들이 우려를 표한 대목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영국 정부의 화웨이 5G에 대한 공식 지침에 따르면 보다폰 등 영국 통신사는 2023년까지 네트워크 인프라의 비핵심 부분에서 화웨이 장비의 사용 비중을 35%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 이런 가운데 영국 의회 과학기술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한 BT, 보다폰 등 현지 통신사 임원들은 이번 조치로 인한 통신 블랙아웃 가능성을 시사했다.

당장 안드레아 도나(Andrea Dona) 영국 보다폰의 네트워크 총괄은 화웨이 통신 장비를 다른 업체의 것으로 대체하는데 수십억 파운드를 쏟아 부어야 한다고 밝혔으며 하워드 왓슨(Howard Watson) BT 최고기술책임자(CTO)도 "3년 내 제로(0)를 달성하는 것 (화웨이 장비를 완전히 배제한다는 의미)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며 “5G 전국망뿐만 아니라 4G와 2G 고객들에게 블랙아웃을 불러올 뿐이다"고 했다.

중국 화웨이와의 선을 그으려는 영국 정부의 방침은 확고하지만, 현업인들의 반발이 지속적으로 나오는 지점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유럽과 중국의 협력이 완전한 파탄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중국에 대한 유럽 기업의 투자도 당분간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QIMA가 지난달 글로벌 공급망을 가진 세계 각국의 기업 200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미국 기업 중 95%가 중국 외 지역에 공장을 이전하고 싶어하는 반면 유럽의 기업들은 절반 이하만 중국 외 지역에 공장을 이전하기는 원한다고 밝혔다.

코로나19로 글로벌 경제가 타격을 받았으나 미국 경제의 전망이 우울한 반면 중국 및 유럽 경제전망이 상대적으로 밝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국은행 조사국 국제경제부가 12일 발간한 ‘해외경제포커스, 최근 해외경제 동향 및 주요이슈’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지난달 공급관리협회(ISM) 제조업 지수는 52.6로 집계됐으며 비제조업 지수는 57.1로 기준치인 50을 상회하고 있으나, 2차 팬데믹을 연상하게 만드는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로 전반적인 경제 전망은 비관적이다. 

다만 유럽은 6월 기준 전 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8.5를 기록해 전월 31.9와 비교해 크게 상승했고 일부 지역은 확진자 숫자가 크게 줄어들고 있다. 또 중국은 대형 제조기업을 중심으로 평균 영업이익이 5월 기준으로 상승, 처음으로 코로나19 이전의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중국의 코로나19 확진자 숫자가 줄어들고 있고, 중국 외 공장 건설이 가능한 동남아시아 지역은 아직 기간 인프라가 열악하다는 점도 꼽힌다. 나아가 이미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단단한 공급망을 구축했기 때문에, 특별히 직접적인 국가 간 신경전이 없는 유럽 기업의 경우 중국과의 협력을 완전히 배제할 이유는 느끼지 않는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