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리포리아 락세라타'는 참나무나 적송에서 자라는 구멍장이과 버섯에 기생하는 백색 부후균의 일종으로 알려졌다. 출처=퓨젠바이오

[이코노믹리뷰=최지웅 기자] 역사적으로 위대한 발명이나 발견은 우연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았다. 노벨상의 제창자인 알프레드 노벨은 실험 중 실수로 손을 베이면서 다이너마이트보다 3배 이상 강력한 '폭파 젤라틴'을 개발하게 됐다.

세균과의 싸움에서 인류를 구원한 항생제 '페니실린'도 우연히 탄생했다. 영국 세균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은 배양 실험 중 실수로 세균 배양액을 푸른곰팡이로 오염시켰는데 이를 관찰하다가 페니실린을 발견했다.

아직 폭파 젤라틴이나 페니실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바이오 기업인 퓨젠바이오의 '세리포리아 락세라타'도 우연히 발견한 자연의 산물이다.

2005년 설립된 퓨젠바이오는 항당뇨 효과가 있는 자연 유래 성분을 찾기 위해 다양한 미생물 균사체를 연구하던 중 세리포리아의 이차대사물질을 발견했다.

퓨젠바이오에 따르면 이 회사는 애초 재배가 불가능한 잔나비걸상버섯을 인공 배양해 우수한 종균을 확보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그러다 지난 2010년 연구과정에서 우연히 채취한 종균이 기존 종균보다 우수한 항당뇨 효능을 가진 것을 확인했다. 바로 '세리포리아 락세라타'였다. 잔나비걸상버섯과 공생하던 세리포리아가 산소 부족으로 생존하기 어려운 액체 배양 환경에서 꿋꿋하게 살아남아 증식한 것이었다.

세리포리아 락세라타는 참나무나 적송에서 자라는 구멍장이과 버섯에 기생하는 백색 부후균의 일종으로 알려졌다. 2002년 일본 원시림에서 처음 발견돼 학계에 보고됐으나 퓨젠바이오가 진가를 알아채고 지속적으로 연구 개발을 진행했다. 그 결과 퓨젠바이오는 해당 균주가 혈당 강하, 간기능 개선, 항암 등에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와 관련된 30여 개의 원천특허를 확보했다.

황성덕 퓨젠셀텍 연구소장은 "흰색의 세리포리아는 산소가 부족한 액체 속에서 배양할 경우 실과 같은 모양의 균사체 형태로 번식한다"며 "세리포리아가 생존을 위해 이차대사로 생성된 생리활성 물질을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균사체 자체보다 액체 배양을 통해 생성된 이차대사물질이 세리포리아의 실질적인 효능"이라고 강조했다.

▲ ‘세리포리아 락세라타 균사체 배양물’은 퓨젠바이오가 10여년간의 연구개발을 진행한 끝에 마침내 상용화에 진입할 예정이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지웅 기자

퓨젠바이오는 세리포리아의 이차대사물질을 활용해 기능성 식품과 화장품, 신약 등으로 연구개발 역량을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이미 지난 2018년 세리포리아 락세라타의 이차대사물질인 '클렙스'를 핵심 원료로 한 기능성 화장품 '세포랩'을 출시해 가능성을 타진했다. 천연 유래 화장품 원료인 클렙스는 세포 대사 활성화 작용으로 피부 탄력과 보습력, 회복력을 높여주고 피부 노화를 촉진하는 활성산소와 멜라닌, 최종당화산물을 감소시키는 것이 특징이다.

아울러 퓨젠바이오는 이달 중 세리포리아 락세라타를 주원료로 혈당조절용 건강기능식품인 '세포나'를 선보일 계획이다. 지난해 12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이 버섯균주를 활용한 제품에 대해 혈당조절용 기능성 원료 인증을 받았다. 

퓨젠바이오는 새로운 골격 구조를 공유하는 이차대사물질을 '세포노이드'로 명명하고 단일물질을 활용한 신약 후보물질 발굴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현재 화학 합성 연구를 진행 중이며, 연내 물질 특허 출원 및 신약 후보 물질 개발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평촌 연구센터나 외부 연구 기관과 협업해 당뇨뿐 아니라 다양한 적응증으로 세리포리아 락세라타의 추가 효능을 입증하는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퓨젠바이오 관계자는 "세리포리아의 이차대사로 생성된 생리활성 물질이 반투과성인 세포막을 통해  많은 양을 물속으로 배출하면 배양액은 점차 노란색으로 변하게 된다"며 "퓨젠바이오는 해당 이차대사물질이 세리포리아 효능의 비밀임을 15년의 연구를 통해 밝혀내고, 세계 최초로 식의약적 목적으로 상용화에 성공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