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정진 셀트리온 그룹 회장이 지난달 23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넥스트라이즈 2020 행사에서 "7월 16일 코로나19 치료제 임상시험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이코노믹리뷰=최지웅 기자]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이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서 회장은 지난달 23일 국내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한 행사에서 셀트리온이 개발 중인 코로나19 항체치료제의 임상 1상을 7월 16일 개시한다고 말한 바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치료제 개발이 시급한 상황에서 서 회장의 호언장담은 시장에 반향을 일으키기 충분했다. 이날 서 회장의 발언으로 셀트리온의 주가는 전일 대비 7.2% 증가하며 31만원대에 진입했다. 애초 서 회장이 주가 부양을 노리고 내뱉은 발언이었다면 나쁘지 않은 전략이었다는 평가다.

그러나 임상 개시를 위해 꼭 필요한 절차인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승인을 약속한 날짜까지 받지 못하면서 서 회장은 체면을 구기고 말았다. 정제되지 않은 정보로 시장에 혼란만 야기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 회장의 말 한마디가 회사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경솔했다는 반응이다.

셀트리온은 이와 관련해 "식약처에서 임상 1상 계획을 승인받는 대로 임상에 들어갈 것"이라며 "승인만 떨어지면 즉각 돌입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제 와서 식약처를 탓하기에는 셀트리온이 그동안 쌓아올린 내공이 적지 않다. 한두 번 장사를 해본 회사가 아니라는 의미다.

셀트리온은 식약처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에서도 다수의 바이오시밀러 신약을 승인받으면서 세계적인 바이오시밀러 개발업체로 발돋움했다. 애초 임상시험에 필요한 신약 승인 절차를 그 어느 기업보다 잘 알고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차라리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고 지금이라도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 투자자와 시장을 설득했다면 역시 서정진답다는 소리라도 들었을 것이다. 평소 호탕하고 솔직 담백한 언사로 좌중을 휘어잡았던 서 회장이 아니었던가.

서 회장은 그동안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그 누구보다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앞서 그는 지난 3월 유튜브를 통해 열린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코로나19 치료제 및 신속진단키트 개발 계획 등을 담은 종합 대응 방안을 발표했다. 서 회장이 직접 유튜브에 출연해 "통상 치료제 개발에 18개월가량 소요되지만, 이르면 6개월 안에 코로나19 치료제 임상시험을 시작할 수 있도록 식약처와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다수의 기업들이 주가 부양을 목적으로 너도나도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을 선언하던 시기였다. 기업의 오너가 직접 공식 석상에 나와 구체적인 치료제 개발 계획을 밝힌 건 셀트리온이 유일했다. 역시 셀트리온이라는 찬사와 기대가 쏟아졌다. 하지만 작은 약속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기업이 치료제 개발이라는 더 큰 약속을 지켜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기업 오너가 연단에서 내뱉는 말 한마디는 중요한 의제가 되고 리더십을 평가하는 바로미터로 작용한다. 수많은 직원을 거느린 서 회장의 말은 강력한 힘을 갖지만 그만큼 무거운 책임이 뒤따른다. 경영의 품격을 결정짓는 말 한마디의 무게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