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슬라가 한국 시장에 출시한 뒤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는 전기차 제품들. 출처= 테슬라코리아

[이코노믹리뷰=최동훈 기자] 국내 자동차 업계 일각에서 비싼 전기차에 대한 구매 보조금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비교적 높은 액수의 구매 보조금을 소비자에게 지급하는 한국에서 고가·고성능 전기차 제품으로 인기를 구가하는 가운데 제기된 주장이다. 정황상 테슬라를 지목해 펼친 견해에 다름없다. 하지만 고가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을 폐지하는 결정에는, 테슬라 같은 ‘메기’를 잡으려다 개울물을 진흙탕으로 만들어버릴 소지가 다분하다.

고가 차량에 대한 보조금 폐지를 주장하는 측은, 테슬라가 국내 생산시설 하나 가동하지 않은 채 제도의 수혜를 누리고 있는 점을 지적한다. 테슬라가 국내 경제 활성화에 특별히 기여하지 않으면서도 높은 판매고로 실적을 창출하고 있는 것에 따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

테슬라는 지난 상반기 한국에서 전기차 6839대를 판매했다. 현대자동차 코나 4139대, 한국지엠 볼트EV 1285대 등 국산차 실적을 훨씬 상회했다. 반면 테슬라가 국내 구축한 사업관련 시설 현황은 미미한 수준이다. 테슬라의 국내 서비스센터는 현재 서울 강서구 1곳, 경기 성남시 1곳 등 총 2곳에 불과하다.

테슬라는 일부 수입차 업체의 공식 서비스센터와 제휴해 고객 차량을 정비하는 바디숍을 소수 지역에 외주를 맡겨 운영하고 있다. 다만 직영 서비스센터와 달리 부품 공급이 원활히 이뤄지지 못하면서 일부 소비자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테슬라가 고객 서비스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더딘 것에 비해 높은 판매 실적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전기차 보조금 당초 취지는 ‘전기차 확산’

테슬라가 한국에서 각종 시설을 구축함으로써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지역 경제 활성화엔 비교적 미미한 결과물을 내놓는 모양새지만, 이를 구매 보조금 제도로 ‘개선’하려 해선 안된다는 지적이 거세다. 보조금 제도는 전기차 보급을 촉진하기 위해 존재할 뿐 사업자 간 형평성을 저해하려는 취지가 담기진 않았기 때문이다.

보조금 제도의 법적 근거가 되는 ‘환경친화적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약칭 친환경자동차법)의 세부 조항에 이 같은 취지가 반영됐다. 친환경자동차법 제1조(목적)에는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을 촉진하기 위한 종합적인 계획 및 시책을 수립하여 추진하도록 함으로써 자동차산업의 지속적인 발전과 국민 생활환경의 향상을 도모하며 국가경제에 이바지함’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테슬라는 전기차 판매실적을 끌어올림으로써 오히려 보조금 제도의 취지를 달성하고 있는 셈이다.

일부 누리꾼들이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글이나 기사 댓글을 통해 “비싼 전기차를 살 수 있는 사람은 보조금 없이도 잘 산다”고 주장한다. 돈 있는 사람은 나라에서 지원 안해도 비싼 차를 잘 살 거라는 추측이 담긴 발언이다.

제도 개편 따른 역차별 유의해야

하지만 고가 전기차여도 무조건 고객 수요를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고가 전기차 고객에 대한 보조금 배제가 역차별을 조장할 공산이 있다.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가 작년 1월 출시한 고성능 중형 SUV 전기차 아이-페이스(I-PACE)는 누적으로 27대 팔린데 불과했다. I-PACE는 국내 당국의 전기차 성능 인증을 통과함으로써 1대당 625만원의 국고 보조금을 확보했지만, 성능만으로 상쇄할 수 없는 1억원대의 높은 가격 진입장벽에 수요가 막혔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가 작년 10월 출시한 중형 SUV 전기차 EQC도 브랜드 첫 전기차로서 시장 관심을 모았지만 지난 상반기 115대 팔리는데 그쳤다. 국내 주행거리 인증을 획득하는데 실패함으로써 9550만~1억140만원에 달하는 최종 소비자가로 출시하는 등 가격 경쟁력에서 타사 모델에 밀렸다.

고가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을 지속 지급하더라도 테슬라의 서비스 인프라 부족 건은 과제로 남는다. 다만 테슬라가 해당 인프라를 앞으로도 개선하지 않을 경우 소비자들의 ‘화폐 투표’에 의해 자연 도태될 수 있다. 따라서 테슬라가 이 같은 한국시장의 생리를 이해한다면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을 게 뻔하다.  

비싼 전기차에 보조금을 덜 지급하는 것은, 비싼 명품일수록 더 많은 개별소비세를 매기는 제도와 마찬가지로 소비를 억제하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 글로벌 자동차 기업을 이끄는 현대차그룹의 정의선 수석부회장도 전기차 등 미래차 사업에 사활을 건 상황에서, 전기차를 가격에 따라 사치재로 분류하는 정책적 ‘역주행’은 위험부담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