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정부·여당이 지난 20대 국회에서 야당의 반대로 통과시키지 못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21대 국회에서 재논의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기업들은 공정경쟁질서 확립을 표방하는 정부의 의도에 대해서는 공감했다. 그러나 개정안 세부 내용에 대해 기업들은 필요 이상의 규제 요소가 있음을 지적하며 해당 내용에 대한 재고(再考)를 정부에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는 현 정부 출범 이후 계속된 정부와 기업 간 갈등의 연장선으로 해석되며 논란이 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지난 국회에서부터 지속적으로 시행을 추구하고 있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주요 골자는 크게 3가지로 정리된다. 첫 번째는 지주회사 지분율에 대한 규제 강화와 사익편취 규제대상 확대 두 번째는 전속고발권의 폐지 그리고 세 번째는 과징금 상한의 상향이다.

‘지주회사 지분율에 대한 규제 강화’는 기업(주로 대기업)들이 총수가 중심에 있는 지주회사를 통해 계열사까지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는 지배구조를 구축한 것에 대한 견제의 성격이 강하다. 이러한 관점으로 정부는 이미 지주회사와 계열사로 묶인 기업들 간의 내부 거래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전문경영인 체계보다는 총수와 지주회사가 중심이 된 오너 경영이 보편화된 국내 대기업들은 대부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전속고발권 폐지’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 조치가 선행되지 않아도 개인이나 법인이 기업들을 고발할 수 있도록 절차를 간소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과징금 상한의 상향’은 기업의 공정거래법 위반 혹은 기업형 비리에 대한 과징금의 최대 한도를 높인 것이다. 개정안이 추구하는 방향성은 기업에 대한 현 정부의 관점이 잘 드러나 있다. 총수와 지주회사로 집중된 기업 경영의 권한을 가능한 축소시키는 것이다.    

▲ 출처=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등 국내 3대 경제단체는 20일 공정거래법 개정안 세부내용의 수정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경총은 “정부가 입법예고한 개정안에는 경제활동 전반을 위축시키는 규제가 포함돼있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자회사·손자회사에 대한 지주회사의 의무지분율을 높이는 것에 대해 경총 측은 “일반 기업집단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때 지분매입 비용 증가하기 때문에 신규 투자와 일자리 창출 여력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라면서 “이는 그간 정부의 지주회사 전환 유도 정책과도 배치돼 정부 정책의 신뢰성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밝혔다. 

덧붙여 경총은 계열사 간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의 확대에 대해 “수직계열화 구조가 이뤄져 있는 계열사들의 거래가 위축돼 거래효율성이 저하될 것이 우려된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대한상의도 “내부거래 규제대상을 획일적으로 확대하면 지주회사 소속기업들도 규제를 피하기 어렵다”라면서 “지주회사에 속한 계열사 간 거래에 대해서는 내부거래 규제의 예외로 인정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 출처= 대한상공회의소

경제단체들은 전속고발권 폐지로 예상되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지적했다. 경쟁 사업자에 의한 무분별한 고발, 공정위·검찰의 중복조사 등으로 인한 경영활동의 위축과 더불어 법적 대응 능력이 미흡한 중소기업에게 이번 개정은 더 위험할 수 있음을 지적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경총은 2018년 대검찰청 통계를 제시했다. 통계에 따르면 2018년 우리나라 고소·고발 건수는 48만8954건을 기록했는데 같은 기간 인구가 우리나라의 2배 이상인 일본의 고소·고발 건수는 연간 1만 건 수준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상의 김현수 기업정책팀장은 “국내 기업들은 정부가 이루고자 하는 공정경제질서 확립의 필요성을 충분히 공감하고,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라면서 기업계를 대변한 의견을 밝혔다. 

김 탐장은 “그러나 일부 기업의 문제를 마치 모든 기업의 문제로 여겨 일률적으로 규제하고자 하는 개정안의 내용은 가뜩이나 코로나19로 인해 위축된 기업들의 경영을 더욱 어렵게 할 수 있다”라면서 “경제계도 수용 가능한 제안은 수용할 방침을 세워두고 있으니 정부와 국회도 부작용 우려에 대해 경제계가 제안하는 대안 등을 검토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 측은 “아직까지는 입법 예고의 단계인 만큼 개정안의 세부적인 내용은 추후 기업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업계의 지속적인 의견과 대안 제안에도 정부와 여당은 발의한 법안 그대로 통과시키겠다는 의지를 표방하고 있어 이는 문제가 되고 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2018년부터 경제계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세부 내용의 방향성 조정을 꾸준히 요구해왔다”라면서 “2년이 지난 현재 똑같은 내용으로 다시 법안 발의를 한 것은 총선 압승으로 여당의 입지가 강해진 것에 힘입어 자신들의 관점이 담긴 법안을 그대로 통과시키겠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되는 부분이 있다”라고 말했다.   

2018년 정부 여당이 제안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입법 예고안 기준 15장 130조, 부칙 16조)의 골자는 ‘담합에 대한 전속고발권 폐지와 지주회사 및 사익 편취 규제 강화’였다. 야당의 반대로 지난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내용은 이번 국회에서 거의 그대로 다시 발의됐다. 경제계는 그간 수차례 공식 입장과 대안으로 정부에 제안한 의견들을 또 다시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공정거래법 개정 문제 외에도 현 정부와 기업은 같은 맥락에서 반목을 지속하고 있다. 이는 코로나19 정국이 지속되는 가운데서 한 뜻으로 뭉쳐야 할 경제 주체들의 불신(不信)이 확대될 수 있는 여지가 되고 있다.